Élisabeth II, 1926~2022, 재위1952~2022
출생
1926년 런던에서 아버지 조지6세(George VI, 1895~1952, 재위1936~1952)와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Élisabeth Bowes-Lyon, 1900~2002)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남.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Élisabeth alexandra mary, 알렉산드라는 증조모 알렉산드라 왕비(1844~1925), 메리는 할머니 메리 왕비(1867~1953)에서 따온 것)로 어릴적엔 '릴리벳'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음. 손녀바보 조지5세(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의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나이가들어 중병에걸려도 릴리벳이 방문하면 언제 아팠냐는듯 했다고 함.
왕이될 운명은 아니였다
아버지 조지6세가 차남으로서 바로위 형 에드워드8세(Édouard VIII, 1894~1972, 재위1936)가 있었기 때문에 왕이될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않고 평범하게 잘 지내고있다가, 두번의 이혼경력이 있는 심프슨부인(Wallis Simpson, 1896~1986)과의 결혼을 위해 형의 돌연 퇴위결정으로 아버지가 즉위하게 되면서 엘리자베스 또한 바로 왕위계승서열1위로 오르게되면서 갑작스럽게 바뀐 상황에 제왕교육을 받고, 업무를 이어나가는 행보를 보일 수 밖에 없었음.
2차 세계대전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면서 영국또한 9월 3일에 나치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게되면서 참전하게 됨. 어린 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가렛 공주를 캐나다로 대피시킬 것을 더글러스 호그(Douglas Hogg, 1872~1950)가 제안하는데, 엘리자베스 왕비는 거부하면서, 우리들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왕 또한 결코 런던을 떠나지 않을것입니다 라고 말함.
이후 아버지 조지6세를 설득해서 전쟁에 참전하게되는데, 1945년 초에 육군(여자 국방군)으로 입대를 하면서 운전, 기계등을 다루는 보급수송장교로서 복무를하며 후방에서 지원장교로서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됨(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이후 3달뒤 5월에 나치가 항복하게 되면서 엘리자베스 공주또한 전역(대위)을 하고 왕실로 다시 복귀하게 됨.
필립(필리프)과의 만남
1934년, 미래의 남편이 될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립(Philippe, 1921~2021)을 왕궁에서 처음 만나고 이후, 1939년 다트머스 왕립 해군대학에서 18세의 필립과 13세의 엘리자베스 공주가 재회하는데 사실상 첫눈(?)에 반한 엘리자베스 공주의 편지를 시작으로 서로 교환을 하며 마음을 쌓다가 1947년 공식적으로 약혼, 결혼을 하게 됨.
물론 이 결혼자체가 쉽진 않았는데, 체급이 맞지않는 왕실의 규모와 더욱이 필립의 누나들이 전부 나치와 가까운 독일 귀족과 결혼하게되면서 여론이 상당히 좋지 않았음. 결혼할때도 누나들은 나치부역자라는 낙인으로 필립의 결혼식때 참석도 하지 못함.
결혼을 하는 조건으로, 필립은 그리스와 덴마크왕자의 직위를 포기, 그리스 정교회에서 성공회로 종교를 바꾸고, 어머니 앨리스 공녀(Alice de Battenberg, 1885~1969)의 성씨 바텐베르크를 영국식 성 마운트배튼으로 바꾸고 그리니치 남작, 메리오네트 백작, 에든버러 공작의 작위를 받으며 영국으로의 완전 귀화를 하게 됨.
갑작스런 즉위
아버지 조지6세가 2차대전동안의 스트레스와 흡연등으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게되면서 1951년에는 폐 종양 제거목적으로 일부 제거하는 수술을 진행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아버지를 대신해서 엘리자베스 공주가 공개행사에 주로 나가서 아버지의 업무를 보게되는 상황이 많아지게 됨.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의 개인비서이자 부관 마틴 차트리스(Martin Charteris, 1913~1999)와 함께 미국 워싱턴에서 트루먼 대통령(Harry S. Truman, 1884~1972, 재임1945~1953)을 접견하면서 조지6세가 혹여나 서거할 경우르 대비해서 왕위계승 선언서 초안을 받게 되는데,
이후 미국을 거쳐 아프리카, 호주등 영연방국가를 돌고 여행을 하는 찰나 1952년 2월6일에 케냐에 체류할 당시 아버지 조지6세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현지에서 듣고, 바로 그 즉시 여왕으로서 대우를 받게 됨.
피곤하네..
엘리자베스2세로서 왕위에 오른이후, 현재도 마찬가지로 여성이 남편의 성씨를 따르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필립의 마운트배튼 성씨가 적용되어 마운트배튼 가문이 될 가능성이 존재했으나, 할머니 메리 왕비(Teck de Mary, 1867~1953)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은 윈저가문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선호하게 되며 그대로 유지하게 됨. 이때 필립은 "영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권리가 없는 유일한 남자"라는 말을하며 불평하게 됨. 그나마, 이후 메리여왕서거(1953), 처칠의 총리직 사임이후(1955), 필립을 포함한 남성 후손 계열은 마운트배튼-윈저라는 가문명을 사용하게는 된다.
대관식 생중계
1953년 6월 2일, 영국의 군주로서는 최초로 대관식을 생중계하게 됨. 왕관을 쓰는 모습, 성수의식등의 장면이 전세계 수억명의 사람들에게 중계되면서, 이전까지 상류층들만 누렸던 대관식을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볼 수 있었던 건 당시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였음. 물론 장단점이 다 존재. 왕실의 신비스러움이 깨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왕실의 이미지 역시 일반사람들과 별다를게 없구나 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면서 오히려 엘리자베스2세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고 보는게 일반적이게 됨(넷플릭스 더 크라운 참고).
왕으로서의 역할
전통적으로 하노버왕조 시작이래로 입헌군주제가 채택된 영국이기에, 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용하게 영향력을 끼친 군주로서 영국인들에게 명망높은 군주로서 남아있는 엘리자베스2세이다. 2차대전 종전(1945년)이후 인도를 포함한 식민지들이 줄줄이 독립하면서 대영제국이 몰락한다는 인식이 퍼지던 1950년대 당시, 여왕은 남은 영연방국가들만큼은 돈독한 관계를 가지며 지내야한다는 생각으로 대관식끝난지 몇달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6개월간 영연방순회를 하며 이후에도 계속 정기적인 순방을 하면서 추락하던 영국의 위상을 유지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됨.
권한 포기
제임스2세(Jacques II, 1633~1701, 재위1685~1688)를 퇴위시킨 명예혁명이후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는 원칙이 존재했지만, 총리 지명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는데(그렇다고 그냥 숙종처럼 환국을 일으켜서 싹쓸이교체가 아니라, 집권여당의 총리가 불신임되었을 때 지명하는 권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과 앤서니 이든(Robert anthony eden, 1897~1977)등 의 지명후 논란으로 1965년 스스로 이 권한을 포기하게 됨(피곤했다...).
자녀의 스캔들.. 다이애나 비
장남이자 왕위계승서열1위 찰스왕자(현재의 찰스3세, Charles III, 1948~ , 재위2022~ )가 1981년 스펜서 백작가문의 딸 다이애나와 결혼하고, 이후 윌리엄(1982년출생), 해리(1984년출생)왕자들을 낳으면서, 모든 영국인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왕실의 권위까지 회복되는데,
찰스가 다이애나비와 결혼하기전부터 사귀었던 카밀라 파커 볼스(현 왕비, Camilla Parker Bowles, 1947~ )와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면서 다이애나비와의 불화와 더불어 서로 맞지않았던 걸로 인해 공식적으로 1996년 이혼, 앤 공주(Anne, 1950~ ), 앤드루 왕자(Andrew, 1960~ )또한 이혼을 하게되면서 점점 인식이 나빠지기 시작함.
그러다가 결국 1997년 다이애나비가 파리에서 연인 도디 알파예드(Dodi Al-Fayed, 1955~1997)와 파파라치를 따돌리는 와중에 벌어진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충격을 받은 영국 국민들의 원망과 원인이 찰스에게로 향하게 되면서 난리가 난다. 꽤나 오래 지속되던 사태라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
2000년대 이후와 서거까지
2002년, 동생 마가렛 공주(Margrette, 1930~2002)가 2월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충격을 받은 어머니 엘리자베스 왕비( Élisabeth Bowes-Lyon, 1900~2002)마저도 3월말에 사망하게 됨. 사실상이제 엘리자베스2세만이 유일하게 가족중 살아남게 됨. 이후 테러를 당할뻔도 하지만, 정보국의 사전파악으로 다행이 미수로 끝나는 일도 있었다(2007년)
2012년 런던 올림픽 성공적 유치등 별 탈없이 지내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전세계적인 바이러스 코로나가 2020년부터 급속도로 퍼지면서도 희망을 잃지않게끔 더욱 절제하는 삶을 살고, 2021년 남편 필립공을 먼저 보내고(99세), 2022년 원래부터 좋아했던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휴식을 취하고있던 중 서거. 9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