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8세(Edward VIII, 1894~1972, 재위1936)
전임 군주 | 당시 재직 군주 | 후임 군주 | |
프로필 | 조지5세 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 |
에드워드8세 Edward VIII 1894~1972 재위1936 |
조지6세 George VI 1895~1952 재위1936~1952 |

출생
1894년 런던에서 조지5세(당시 요크공작, 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과 테크의 메리(Mary de Teck, 1867~1953)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지6세(George VI, 1895~1952, 재위1936~1952)의 친형이다.
왕수저
아버지도 장남 본인도 장남, 이미 태어날때부터 왕위 계승 서열3위로 다들 왕이 될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진 인물로, 어릴때부터 타고난 인싸력으로 인기는 타고났다고 함. 왕수저의 재목으로서, 교육도 철저히 받게되는데 프랑스어, 독일어, 제왕학등.. 이후 영국왕실남자의 전통이그랬듯 해군으로 입대할 예정이였는데, 1910년 할아버지 에드워드7세(Édouard VII, 1841~1910, 재위1901~1910)이 서거하게되면서 아버지 조지5세(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이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자동으로 다양한 작위들을 받게되는데, 영국에서 왕태자가 받게되는 작위인 웨일스 공에도 바로 서임이 됨(왕위 계승 서열1위). 이후 바로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컬리지에 들어가서 학업을 이어나가는데, 학위는 받지못한다.
1차대전
1914년 1차대전이 발발하게되면서, 아우 앨버트(조지6세)를 포함한 남자형제들 모두 영국군에 입대를 하게되는데, 왕위를 이어야하는 신분상 참전은 허락받지 못해 전방부대에 방문을 하는 차원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인싸력
1920년대부터 아버지 조지5세의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를 대신해 에드워드가 공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일단 외모 받쳐줘, 말빨 돼, 미혼에다가 왕수저라 가는곳마다 인기가 장난이 아니였다. 사실상 연예인이였는데 매춘부에 유부녀에 아주 아버지속을 제대로 속일데로 속였다고 하니 왕자의 이러한 행태에 아버지 조지5세도 많이 속상했는듯 하다.
심프슨 부인
에드워드8세하면 꼭 빠지지않는 키워드 심프슨 부인(Wallis Simpson, 1896~1986)이 드디어 1930년에 등장하게 된다. 계속해서 에드워드는 아버지가 임대해준 공간에서 유부녀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이때 심프슨 부인을 만나게 되면서 연인이 되는데, 현재도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영국왕실에서 둘의 관계를 인정해줄지 모르는데 당시에 아버지 조지5세와 안그래도 사이가 그다지 좋진 않았는데 이 계기로 더 나빠지고 물론 심프슨부인도 정식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즉위
1936년 초 아버지 조지5세(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이 서거하게되면서 에드워드도 에드워드8세(Édouard VIII(1894~1972, 재위1936)로서 즉위를 하게되는데, 점점 상황이 복잡해진다. 내각과 안그래도 마찰이 살짝살짝 있었는데, 정부문서를 왕비도아닌 심프슨부인과 같이 보게되면서 기밀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게 되어버린 것인데 더욱이 에드워드8세는 관례를 깨는 군주로도 유명했는데, 전통적으로 이어져내려오던 방식을 하지말자 이런식으로 마찰이 점점 늘어간다.
사랑을 위한 퇴위
1936년 후반, 심프슨부인과 결혼하고싶다는 뜻을 내각에 표시하는데, 모두 반대한다. 에드워드8세가 명목상 영국국교인 성공회의 수장격인 인사라 교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것(켄터베리 대주교까지 반대)이였기 때문이였다. 이러한 발표에 영연방국가의 총리들도 한목소리로 "이혼을 2번이나 한 이혼녀와 결혼하면서 왕위를 이어나갈 수 있는가?"라며 거의 협박을 하기에 이른다. 이도저도 안되자 결국 퇴위를 결정하고 1936년 12월 10일 퇴위 문서에 서명 한다.
동생 조지6세
갑작스런 퇴위로 앨버트(조지6세)가 후임 왕이 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며 어머니에게 달려가 펑펑울고 위로를 받고 결국 상황을 받아들이지만, 앨버트의 아내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Elizabeth Bowes-Lyon, 1900~2002)이 안그래도 자기를 업신여겨보던 에드워드8세 부부를 더욱 싫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무책임한 퇴위로 인한 남편 조지6세의 죽음으로 원수지간까지 되어버린다.
퇴위 이후
이후에도 에드워드를 정치참여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기위해서 영국추밀원이 윈저공작을 수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후 심프슨부인과 결혼은 했지만 전하의 칭호를 받지는 못한다(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강력한 반대의사).
나치
심프슨부인이 나치의 스파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만났던 남자들중에 나치인물들이 있었고 에드워드8세또한 2차대전때 연락장교 임무를 수행하는데 독일측에 전략을 누출하는등 이후 두 부부가 여행간다는 목적으로 스페인(당시 나치에 협력적이였음)에 도망치는걸 처칠이 잡아온다. 이후 쇄기를 제대로 박는데, 나치를 지지한다고 기자들앞에서 당당히 선언해버린다. 에드워드8세가 나치독일과 히틀러와 자주만나면서 시간을 보낸것이 확인되는데, 거기다가 인종차별까지 한다. 이에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일본 쇼와 천황(Hirohito, 1901~1989,재위1926~1989)에게 고급원숭이라 한 것을 찾아보길 바란다.
사망
이후 해외에서 관직을 받아 일하면서 지내다가 무병장수한다(1972년 78세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