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귀족 가문 사람들 모음/스칼라 가문

칸그란데 1세 델라 스칼라

Mintaka5 2024. 6. 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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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o Canfrancesco della Scala, 1291~1329, 공동재위 1308~1311, 단독재위 1311~1329

칸그란데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291년 베로나(Vérone)에서 베로나의 통치자인 아버지 알베르토1세 델라 스칼라(Alberto I della Scala, ?~1301, 재위1277~1301)와 어머니 베르데 다 살리지올레(Verde da salizzole, 1241~1306)사이에서 태어남.

 

이름의 의미

칸그란데는 스칼라 왕조 창시자이기도 한 삼촌 마스티노1세 델라 스칼라(Mastino della Scala, ?~1277, 재위1262~1277)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위대한 개'(욕 아님)라는 의미의 칸그란데라는 이름을 얻게 됨.

1301년 아버지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자마자 사망하면서(칸그란데는 당시 10살), 군주로 오른 친형 바르톨로메오1세 델라 스칼라(Bartolomeo I della Scala, 1277~1304, 재위1301~1304)의 후견인이 되면서, 형이 하는 통치를 보고 배우고, 형이 1304년 서거하면서 그다음 형 알보이노1세 델라 스칼라(Alboino I della Scala, 1284~1311, 재위1304~1311)이 즉위하게 됨.

 

전투

1304년 알보이노1세가 즉위하면서, 에스테 가문이 통치하던 페라라의 아초8세 데스테(Azzo VIII d'Este, 1263~1308, 재위1293~1308)와 전투를 벌이고, 칸그란데역시 형과같이 전투에 참여하게 됨. 여러 전투가 더 있다가, 1308년부터 형과같이 공동군주로서 재위를 시작하게 됨. 

이후 1311년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7세(Henri VII de Saint-empire,1273~1313, 재위1308~1313)로부터 형과 함께 황실 대리자로 임명되면서 제국군을 공동으로 이끌게 되는데, 베로나와 이웃해있던 비첸차(Vicenza)를 파도바(Padova)로부터 해방을 시키고, 그 뒤로도 군대를 이끌면서 베로나 근방의 도시를 해방시킨다.

 

재위

1311년 한창 전투 후 형 알보이노1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베로나로 오는데 형이 결국 사망하면서 칸그란데가 베로나의 단독통치자로서 재위가 시작됨. 

이전에 형과함께 파도바로부터 해방시킨 비첸차의 통치자가 되는데, 이후에도 파도바와의 관계가 안좋은 상태에서 된 통치자였고 더욱이 기회를 틈타서 된 통치자의 자리라, 파도바가 칸그란데를 가만둘리가 없었다. 몇달도 안있어서 바로 파도바가 칸그란데의 베로나와 비첸차를 약탈하기 시작하면서 1년이 넘는기간동안 방어의 어려움을 겪게되는데, 방어하는 기간에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7세(Henri VII de Saint-empire,1273~1313, 재위1308~1313)가 서거하면서 조공을 바치지 않아야할 명분이 생김과 동시에, 비첸차를 얻음으로서 군대를 모을 시간을 벌게 됨과 동시에 전쟁물자를 비축할 시간또한 벌게 된다. 이후 몇년간 파도바와 1, 2, 3차전을 펼치게 된다.

 

통치방식

기회주의자적으로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충성, 제국의 대리자로서 정당성을 이끌어내는데 여러 지방을 합병하면서 세력을 키워 롬바르디아, 제노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됨. 황제 하인리히7세가 서거한후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를 지지한다는 말을했다가 교황에게도 미움을 사게되면서 여러 정치권력의 힘을 잘 파악하고, 균형을 맞추며 이용을 잘 한 것 같다.

그리고 피치못할 상황에도 전투를 안하는데도 영토를 확장하는등 정치적인 수완도 아주 가공할만했다.

 
실패한 반역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던 중인 1325년, 행군도중 병에걸려 다시 베로나로 돌아가게되는데 그때 마침 사촌 페데리코 델라 스칼라(Federico della Scala, 1288~1349)가 권력을 장악하려하여 위협을 당하지만, 다행히 칸그란데의 용병들이 사태를 막고, 이후 칸그란데가 회복된 후 베로나에서 추방.

 

단테

피렌체 출신인 단테(Dante, 1265~1321)가 피렌체와 피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정쟁에 교황의 세력에 피렌체가 들어가지 않기위해 신성로마황제를 옹호하는 구엘프당을 지지하면서 기벨리니당과 적대관계가 되는데, 이후 구엘프당이 승리하지만 흑당 백당으로 나뉘면서 다시 전쟁이 벌어지는데, 승리한 흑당이 단테를 추방시키게 됨.

이 정쟁에 휘말려 추방된 후 베로나로 피신을 오는데(1312~1318)이때 마침 베로나를 통치하고있던 칸그란데1세와 만나게 되어 단테를 지원하게 되면서, 단테는 이 때 신곡의 '천국'편을 피렌체어로 집필하게 된다.

 

서거

이후 베네치아근처 트레비소(Treviso)에서 공략을 진행하면서 오염된 물을 섭취하여 갑자기 사망하게 됨. 이후 베로나는 아들이 없던 칸그란데는 조카 알베르토2세(Alberto II, 1306~1352, 재위1329~1352)와 마스티노2세(Mastino II, 1308~1351, 재위1329~1351)에게 베로나의 통치권이 넘어가게 된다(공동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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