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귀족 가문 사람들 모음/스칼라 가문

칸시뇨리오 델라 스칼라

Mintaka5 2024. 7. 30. 20:52
반응형

Cansignorio della Scala, 1340~1375, 재위1359~1375

칸시뇨리오 델라 스칼라,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340년 베로나(Vérone)에서 아버지 마스티노2세(Mastino II della Scala, 1308~1351, 재위1329~1351)와 어머니 타데아 데 카라라(Taddea de Carrara, 1304~1351)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1351년 아버지 마스티노2세가 서거하면서 형 칸그란데2세(Cangrande II, 1332~1359, 재위1351~1359), 칸시뇨리오 본인, 동생 파올로 알보이노(Paolo Alboino della Scala, 1344~1375, 공동재위1359~1365) 3명이 모두 공동으로 통치하지만 형 칸그란데가 동생들의 권력을 거둬들이면서 사실상 혼자 독점통치를 하게 된다. 

이전 게시물에 칸그란데2세에 대해서 썼지만, 폭군으로 유명했고 '미친개(Can Rabbiso)'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포악했던 형에의해 칸시뇨리오는 동생과 함께 실각하게 된다.   

 

행님 이제 죽어줘야겠소? 어? 

사적 재산을 축적하질 않나, 사실상 절대적인 통치자로서 사람을 막 대하는 등 베로나 시민들이 내적으로 분노가 쌓이게 되는데, 1359년 형의 폭정을 그대로 두고볼수 없던 칸시뇨리오는 형의 지지를 반대하는 음모를 꾸며 형 칸그란데2세를 암살하게 된다. 자기가 타고있던 말 때문에 형과 다투던 칸시뇨리오는 형을 말위에서 끌어내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게 되는데, 순간적인 행동과 예상치못한 상황에 당황한 칸시뇨리오는 파도바로 일단 튄다.

그러나 베로나 시민들은 폭정을 일삼던 칸그란데2세가 죽자마자 부르짖으며 환호를 외쳤다고한다(얼마나 쌓였으면..). 그래서 갑작스레 피신했던 칸시뇨리오는 베로나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데, 돌아와서 동생 파올로 알보이노와 함께 공동재위를 선포하게 된다.  칸그란데2세는 혹시나 반란이 일어나서 독일방향으로 튀기위해 카스텔베키오성, 카스텔베키오다리를 건설하기에 이른다(이거 완전?)

그러나 통치한지 6년만인 1365년 동생 파올로 알보이노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음모를 진행중이라는 것을 알아낸 칸시뇨리오는 동생도 폐위시켜 페스키에라 델 가르다(Peschiera del garda)에있는 요새에 가둔다.

 

거 좀만 기다리봐라 먹고살게 해줄게

칸시뇨리오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한피에 강한 성격까지 물려받아 사람들은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온건한 방식으로 베로나를 통치해서 지지층이 그래도 꽤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1369~1371년까지의 기근, 지진, 역병등으로 온 도시에 비상이 걸려버릴때도 세금을 올리지 않고(이게 젤 핵심이지..) 칸시뇨리오 스스로가 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광장, 정원, 수로, 분수, 시계탑, 수녀원등의 건축물을 지으라고 명하며(도시정비겸) 이곳에 인력을 투입시켜 먹고살수 있게끔 한다.

이때 만들어진 유명한 건축물들은 1368년 베로나 수로 건설, 1370년 이탈리아 최초의 시계탑(Torre delle Ore, 1370), 에르베 광장에 베로나 마돈나 분수(1370), 카르멜회 수녀원(1373)등이 있다.

 

내 나이가 몇인데..벌써죽네

1375년 35세의 한창이던 칸시뇨리오는 중병에 걸리게되면서 이대로 회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자신의 두 사생아인 바르톨로메오(Bartolomeo, 1358~1381, 재위1375~1381)와 안토니오(Antonio, 1364~1388, 재위1375~1388)의 후를 잘 마련해주기위해 자기를 죽이려고했던 동생 파올로 알보이노를 처형시킨다. 

이로서 두 사생아에게 승계의 정통성을 가지게 해줌으로서 베로나, 비첸차등에서 큰 반대없이 승계가 이루어졌다.

죽기 며칠전까지도 세금을 낮추고 죄수들을 석방하는등 민심을 최대한 유화시켜보려고 노력하다가 1375년 10월19일 서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