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클레멘스 10세

Mintaka5 2024. 6. 18. 09:12
반응형

본명 : 에밀리오 보나벤투라 알티에리 Emilio Bonaventura Altieri

Clemens PP. X, 1590~1676, 재위1670~1676

클레멘스 10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590년 로마에서 아버지 로렌조 알티에리Lorenzo Altieri 와 어머니 빅토리아 돌핀Victoria Dolfin 사이에서 태어남.

편의상 에밀리오로 부르겠다.

 

가문

알티에리 가문(Maison d'Altieri)은 고대 로마 귀족가문이라서, 늘 로마에서 다른 가문들의 관심을 받아온 가문임. 그래서 교황청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던 가문이라고 한다.

 

사제의 길로

에밀리오는 로마에서 자라나면서, 활동적인 일보다는 책을 가까이 하면서 법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함. 1611년 로마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뒤에 관직에 살짝 몸담았다가, 1624년 34세의 나이로 사제로 서품됨. 

이후 카메리노(Camerino)의 주교, 교황청의 명령으로 지방 총독직등을 맡게 됨. 이런 임무들을 잘 수행해내자,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 1568~1644, 재위1623~1644)는 그에게 포 강의 홍수로부터 라벤나 영토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김. 

종교재판 판사, 사절단, 교황청대사, 재정 감독관등 주요 요직들을 거치면서 입지를 쌓아오다가 그 노고를 인정해서 1669년 당시 교황 클레멘스9세(Clemens PP. IX, 1600~1669, 재위1667~1669)로부터 추기경으로 승품됨.

 


루이14세와 1670년 콘클라베

1669년 추기경승품을 받고 한달만에 클레멘스9세가 선종해버려서 갑자기 공석이생긴 교황자리를 채우기 위해 콘클라베(Conclave, 교황선거)가 열리게 되는데, 

당시 강대국들인 스페인파와 프랑스파의 경쟁으로 콘클라베가 3달넘게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루이14세의 압력이 특히 거셌는데, 교황권과 루이14세의 절대왕권의 불일치로 인해 상당히 거친 대립을 이후에도 계속 하게 된다(후임교황 인노첸시오11세때도 계속 진행).

여튼, 콘클라베로 돌아와서 총62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했는데, 2/3과반이상이되려면 42표가 필요했는데, 지오반니콜로 콘티(Giannicolò Conti, 1617~1698) 추기경, 클레멘스9세의 조카인 자코모 로스필리오시(Giacomo Rospigliosi, 1628~1684)추기경, 카를로 세리(Carlo Cerri, 1610~1690)추기경들과 경쟁하게 되는데, 에밀리오 추기경이 44표를 득표하게 되면서 239대 교황으로 즉위하게 됨.

 

나이도 많은 날 왜시켜..

콘클라베당시 80세의 고령으로서, 교황직을 수행하기엔 나이가 너무많아 “이런 부담을 지기엔 너무 늙었다”고 말하며 프란체스코 마리아 브란카치오(Francesco Maria Brancaccio, 1592~1675)추기경을 가리키며 저런분이 해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결국 할사람이 딱히 없어서.. 결국 교황직을 수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교황직을 수행하게 되는데, 특히 오스만제국의 위협으로부터 폴란드를 지원하는데 많이 노력했었다. 이 지원은 친척이자 후임교황인 인노첸시오11세(Innocentius PP. XI, 1611~1689, 재위1676~1689(때에도 계속 진행이 된다.

 

선종

이후 1676년 86세라는 고령에다가 통풍이 너무 심해져서 선종.

반응형

'로마 교황 > 201대~현직 교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렉산데르7세  (1) 2024.06.19
클레멘스 9세  (0) 2024.06.18
인노첸시오 11세  (0) 2024.06.17
그레고리오13세  (0) 2024.06.17
레오13세  (1) 202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