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인노첸시오 11세

Mintaka5 2024. 6. 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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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베네데토 오데스칼키 Benedetto Odescalchi

Innocentius PP. XI(1611~1689, 재위1676~1689)

인노첸시오1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11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코모(como)에서 귀족출신 아버지 리비오 오데스칼치(Livio Odescalchi, ?~1626)와 어머니 파올라 카스텔리 지오바넬리(Paola Castelli Giovanelli, ?~1630)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인 베네데토로 명칭하겠음.

 

이 길이 아닌 것 같아..

기업가 가문인 오데스칼키 가문에서 자란 베네데토는 삼촌들이 제노바에 은행을 설립하는것을 두눈으로 목격하고, 당시 돈을 끌어모으던 자금 대출 사업으로 크게 성장을 함(이자 놀이). 가문의 사업을 위해 베네데토는 경제공부를 해서 가업에 참여하기위해서 은행이 있는 제노바로 이주를 하게 됨. 

이후 유럽의 주요 대도시들의 큰손 고객들과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게되면서 더욱 성장하고 부를 축적하게 됨. 그런데 1626년 아버지 리비오가 사망하면서, 사업보다는 신학공부를 택하게 되면서 예수회에 들어가기전에 인문학, 철학등의 기초(당시에는)를 공부하게 되는데, 당시 아직 고치기힘든 병이였던 흑사병으로 어머니가 사망하는데 베네데토도 걸렸다가 겨우 살아남게 됨.

이후 1632년 법을 공부하기 위해 제노바에서 나폴리로 이주하게 되는데 나폴리대학에서 민법, 교회법공부를 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라 쿠에바 추기경(Alonso de la Cueva-Benavides y Mendoza-Carrillo, 1572~1655)의 추천을 받아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면서 사제에 서품이 되고,  1645년에는 교황 인노첸시오10세(Innocentius PP. X, 1574~1655, 재위1644~1655)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으로 승품됨(추기경 서열: 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추기경이 된 이후, 1600년대(소빙하기)의 특유의 이상한 기온변화로 인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근이 심했는데 이로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게 되는데 베네데토 추기경이 페라라(Ferrara)에 파견되었을 때, 최대한 몸을 아끼지 않으며 가난하고 병든사람을 구제하게 됨. 이 소식이 교황 인노첸시오10세에게까지 전해지면서, 베네데토를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라 칭했다고 한다.

이후 1656년 교황 알렉산데르7세(Alexander PP. VII, 1599~1667, 재위1655~1667)의 부름을 받아 다시 교황청으로 복귀하여 행정일에 힘을 쓰게 됨.


1670년 콘클라베

1669년 12월에 클레멘스9세(Clemens PP. IX, 1600~1669, 재위 1667~1669)가 선종하면서 콘클라베(Conclave, 교황선거)가 열리게 되는데, 이때 베네데토도 교황후보로 출마를 하지만 당시 유럽의 강력한 두 세력 스페인세력과 프랑스세력의 의견차이로인해 콘클라베가 4달이나 걸리게 되는데, 입장차이가 좁혀지지가 않아서 다들 지치는가운데 중립적인 인물을 선출하자는 여론이 나오게되어 뽑힌 교황이 클레멘스10세(Clemens PP. X, 1590~1676, 재위 1670~1676)이다

 

1676년 콘클라베

1676년 클레멘스10세가 86세로 선종하게 되면서 콘클라베가 다시열리는데 베네데토 추기경이 67표중 44표(2/3과반이상)을 얻어 240대 교황으로 등극하게 된다.

 

교황

1676년 교황이 되기 전부터 쇄신을 위해 10여개의 조항을 실천토록 요구하는데, 교회의 자유와 수호를 위한 노력3가지 트리엔트 공의회, 교회의 자유와 권리 변호, 오스만제국에 대항하는 유럽의 안전보장등 3가지 인데,

당시 유럽 깡패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의 절대왕정의 추구목적과 워낙 다른노선이라 갈등이 생기는데, 이후 루이14세가 재위한지38년이 되는 1681년, 파리에서 성직자 대회를 열어 1682년 프랑스 성직자 선언이라는 4개조항을 칙령으로 선포하게 되는데.. 교황권이 본인의 권위보다 아래에 위치한다는 내용들이라 인노첸시오11세는 반발하게 된다.

이후 이리저리 관계가 악화되어 서로 으르렁거리는 처지가 되는데,  루이14세가 1685년 퐁텐블로 칙령(L'édit de Fontainebleau, 1685)을 반포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됨. 인노첸시오11세에게 아비뇽(교황령)을 점령하고 공의회를 열겠다고 협박하는등 아주 티격태격. 

 

선종

이미 80에 가까운 고령이였던 인노첸시오11세는 선종하기 전까지 오스만제국의 위협을 막기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끝내 결과를 보지못하고 1689년 선종. 

이후 시복을 바로 받지 못한이유가 루이14세의 압박으로 인해 계속계속 연기되다가 270년정도가 지난 1956년(당시 비오12세, Pius PP. XII, 1876~1958, 재위1939~1958)에 되어서야 복자로 시복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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