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레오13세

Mintaka5 2024. 6. 1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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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Gioacchino Vincenzo Raffaele Luigi Pecci,  조아키노 빈첸초 라파엘레 루이지 페치

Leo XIII(1810~1903, 재위1878~1903)

출생

1810년 이탈리아 카르피네토로마노(Carpineto Romano)에서 아버지 루도비코 페치 백작 (Conte Ludovico Pecci, 1767~1833)과 어머니 안나 프란체스카 프로스페리 부치(Anna Francesca Prosperi Buzzi, 1773~1824)사이에서 총 7명중 여섯째로 태어남.

 

라틴어를 사랑한 청소년

라틴어에 유달리 강한 애착이있던 어린시절부터 계속 라틴어연구를 지속하게 되는데, 1828년(18세)에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후 교황청 내 외교관 학교에서 외교공부와 법학공부를 시작하는데, 1834년 추기경들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교황의 판결에관한 주제로 발표를 실시하는데, 이때 추기경 루이지 람브루스키니(Luigi Lambruschini, 1776~1854)의 주목을 끌게되어 루이지 추기경이 당시 교황이던 그레고리오16세(Gregorius XVI, 1765~1846, 재위1831~1846)에게 그를 소개시켜준다.

 

사제서품

1837년 1월 빈첸조 페치는 드디어 사제서품을 받게되는데, 이미 추기경과 그레고리오16세의 주목을 끌은 결과, 추기경이 된지 6년만인 1843년에 그레고리오16세로부터 교황보좌관으로서, 1846년엔 로마와 피렌체 사이에 위치한 페루자(Perugia)에서 대주교로 임명됨.

 

가난한 자들에게

1846년 페루자 대주교로 가게되면서, 자선단체를 지원하면서 가난한자들 특히 취약계층을 돌보는 보호소를 설립하여 보살피고, 그때당시로는 파격적인 무료급식소를 만들어 페루자의 사람들을 돌보게 된다. 이후1853년 추기경으로 승품되면서도 자신의 승품을 축하하는 축제에 모인 재화를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자들에게 기부를 하는등 많은 자선활동을 하게 된다.

 

인 펙토레 추기경

비오9세(Pius IX, 1792~1878, 재위1846~1878)의 반복적인 교구를 가지는 추기경직을 제안하였지만, 페루자에서 계속 머물기를 원한 빈첸조 페치이기에 1853년 승낙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리게 됨. 

근데 이미, 1846년 그레고리오16세가 교황으로 있을 때 '인 펙토레 추기경'에 임명되었었지만(인 펙토레 추기경은 교황이 마음속으로 점찍은 추기경을 뜻하는데, 당연히 발표전까지는 임병받은 본인조차도 모름), 임명4달만에 그레고리오16세가 선종해버려서 사실상 무효.

 

주지주의

온건적인 성향을 가졌지만 감각과 정서보다는 지성 또는 이성을 중요시하는 주지주의적 경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데, 중도 성향의 교황으로서 계급에 상관없는 조화를 천천히 그려나갔다고 봄.


교황이 되다

이후 1878년 비오9세(Pius IX, 1792~1878, 재위1846~1878)가 선종하자, 교황을 뽑는 선거인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리게 되는데, 과반을 넘는 표를 득표(61표중 44표)하여 최종적으로 교황으로 선출이 됨.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였던 전임교황 비오9세의 영향으로 반대성향인 레오13세를 뽑은것으로 추정. 

재위 시작후 과학과 종교가 공존한다는 아퀴나스의 스콜라(Thomas d'Aquin, 1225~1274)교리에 대한 연구진행, 바티칸 천문대를 설립하면서도 과학과 종교가 공존한다는 주장을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며, 지식의 발전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창 저시기때는 유럽도 제국주의열풍이 불면서 질서가 복잡해지는데, 레오13세는 이 시기에 서로의 마찰에 해당하는 지점을 찾아주어 중재를 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보면 됨. 자본주의요소가 강해지면서 노동자계층의 보호막이 사라지게되어 불공평한 일을 당하게 되면서, 교황이 직접나서 보호를 위한 회칙을 발표하는데, 노동 헌장으로 불리는 이것이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 "노동계급의 대다수를 부당하게 압박하는 불행과 비참함을 어느 정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임.  외교능력까지 뛰어난 교황으로서 국가간 관계계선에도 앞섰다고 함.

 

선종

1899년부터 폐렴등으로 병을 앓으며(89세) 이후 몸을 아끼지 않은채로, 1903년 바티칸 정원에서 바람을 쐬고 감기에 걸리는데, 워낙고령(93세)로 폐렴증세가 더 강해지면서, 왼쪽폐까지 폐렴이 번지게 되면서 의식을 잃고, 선종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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