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스튜어트 왕조

앤 여왕

Mintaka5 2024. 6. 1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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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1665~1714, 재위1702~1714)

앤 여왕, 출처- 위키피디아

출생

1665년 잉글랜드 런던 세인트제임스궁에서 아버지 제임스2세(Jacques II, 1633~1701, 재위1685~1688)과 안 이드(Anne Hyde, 1637~1671)사이에서 넷째로 태어남.

 

여기도 왕이될 운명은 아니였다

넷째자녀이기에(그래도 잉글랜드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다르게 딸도 승계가 가능했던 국가)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살짝 떨어져 있었으나, 8명의 형제중 언니 메리2세(Mary II, 1662~1694, 재위1689~1694)와 본인만 살아남게 되어 계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태어나고 유년기땐 계승서열이 높지않은 공주로서 제왕학같은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신교도인 언니 메리2세와 윌리엄3세(프랑스어:기욤 Guillaume III, 1650~1702, 재위1689~1702)가 의회와 손잡고 카톨릭 교도로서 잉글랜드에 혼란을 야기한 아버지 제임스2세(Jacques II, 1633~1701, 재위1685~1688)를 퇴위시킨 명예혁명(La Glorieuse Révolution,1688, 혁명과정에서 단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제임스2세를 퇴위시킴)을 일으키게 되면서, 제임스2세가 퇴위를 하고 공동군주로서 잉글랜드를 통치하게 됨. 

 

중재자로서의 역할

앤 여왕은 스스로가 크게 업적을 남긴 일은 많이 없었지만, 재위기간동안 많은 변수적인 사건들로 인해 그 진가를 발휘하여 권력을 중재하고 정도를 지켜 국가적으로 안정을 시킨 군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휘그당과 토리당의 분열을 스스로 나서 중재를 한 일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함.

 

형부 땡큐

1683년에 덴마크 왕자 조지(프랑스어: 조르주 드 덴마크, Georges de Danemark, 1653~1708)과 결혼해서 20명에 가까운 자녀를 낳았으나, 3/4가 유산, 사산, 태어난날에 사망하는등 3명만 남으나 이마저도 일찍 요절해버려서 사실상 왕위를 물려줄 자녀가 없었다. 

그리하여 앤 여왕이후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해(또 다른이유는 퇴위된 제임스2세의 장남이 다시 계승을 하는 것을 매우 우려) 형부인 윌리엄3세가 1701년 권리장전(1689)을 개정한 법안 왕위계승법(Lacte d'Établissement, 1701)을 제정하여 명목상 왕위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한다.

 

영국 탄생

재위에 오른후 큰 이변이 일어나게되는데, 사실상 동군연합관계였던 잉글랜드-스코틀랜드가 합병을 시작으로 웨일스, 아일랜드까지 합병이 일어나 그레이트 브리튼(영국)이 탄생하게 되는게 앤여왕 재위5년(1707년)에 벌어진 일이다. 이때부터 사실상 잉글랜드의 왕이아닌 영국의 왕이라는 명칭이 비로소 사용되게 된다.

 

스튜어트 왕조 끝

이후 1708년 남편이 급사하고 충격을받아 건강이 악화되면서도 국정을 돌보다가 뇌졸중으로 후대없이 1714년 서거하게되는데, 이로서 스튜어트 왕조(1603~1714)의 100년정도의 통치가 끝나고 먼~~~친척인 하노버가문에 게오르크(조지1세, George I, 1660~1727, 재위1714~1727)가 영국의 왕이되면서, 영국에서 영어를 못하는 군주가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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