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스튜어트 왕조

찰스2세

Mintaka5 2024. 6. 1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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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II(1630~1685, 재위1660~1685)

찰스3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60년 런던 세인트 제임스궁( Palais St. JamesLondres)에서 아버지 찰스1세(Charles I, 1600~1649, 재위1625~1649)와 앙리에트 마리(Henriette-Marie de France, 1609~1669)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남. 바로위의 형이 일찍 죽어버리는 바람에 사실상 장남.

 

내전속의 유년기

1642년부터 아버지 찰스1세와 의회와의 대립이 극에 달하게 되면서, 의회가 런던을 장악하면서 런던을 떠나서 생활하면서 계속해서 대립을 이어나가는데, 찰스2세가 포로로잡히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찰스1세가 해외로 보냄. 이리저리 돌다가 어머니의 국가 프랑스(앙리에트 왕비는 프랑스의 공주, 앙리4세의 딸)에 가게되는데, 당시 프랑스는 루이14세로서 찰스2세의 사촌이였다(루이14세의 아버지 루이13세와 찰스2세의 어머니 앙리에트 마리는 남매관계). 이후 찰스는 1646년 의회파에 붙잡히게 됨. 

이후 권위를 되찾고자 다시 내전을 일으키는데, 타국의 후원을 받으면서까지 의회파를 상대로 싸우지만, 의회파가 승리하게 되면서 찰스2세또한 잉글랜드로 돌아갈 날이 더 멀어지게 됨. 이후 의회파에 의해 재판에 넘겨져 결국 1649년 군주역사상 왕이 처형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찰스1세가 처형된 후 의회는 공화제를 선언해서 통치를 이어나가게 되는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찰스2세를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선언하게되는데,  궁까지 제공받아 살다가보니 잉글랜드에서는 찰스2세의 인기가 추락하게 됨. 

 

크롬웰

1650년부터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 스코틀랜드를 공격하고, 1651년 스코틀랜드에서 찰스2세가 대관식을 하면서 잉글랜드에서는 찰스에대한 여론이 더욱 나빠지게되면서 의회에서는 찰스2세에 대한 현상금까지 제시하면서 죽이라고 할 정도가 됨. 그래서 찰스는 변장을 하면서까지 도망을 치게 돼 겨우겨우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하게 된다(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판 아님.).

이후 1653년 모든내전을 종결짓고 잉글랜드 의회가 크롬웰을 호국경(lord-protecteur)으로 추대하는데, 이와동시에 찰스는 사촌 루이14세가 지급하는 생활비를 받으면서 생활하는데, 이후 루이14세의 스페인대항정책으로 잉글랜드와 손을 잡게되면서, 프랑스에도 못있게되어 남부로 또 피신을 하게됨.

이후 찰스가 스페인쪽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왕권을 되찾겠다는 찰스2세의 계획이 프랑스+잉글랜드 연합군에 의해 깨지며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크롬웰이 다 똑같은 건 아니지..

원리주의의 대명사  올리버크롬웰이 1658년 사망하고, 아들이 호국경을 계승(계승직이 아님..)하게 되는데.. 당연히 낙하산식 인사에 반발해서 1년만에 물러나는데, 사실상 실세권력에 공백이 생겨서 다시 혼란이 반복되다가 찰스2세가 타이밍을 노리고 잉글랜드 국민에 대해 한 약속과 같은 선언문인 브레다 선언(La Déclaration de Bréda, 1660)을 하면서 사실상 인정을 받아 의회의 승인을 받아 잉글랜드의 왕으로 인정하게 되면서 공화정에서 다시 왕정으로 복고가 된다.

 

피의복수? 휴..

1660년 즉위후 1661년 아버지 찰스1세(Charles I, 1600~1649, 재위1625~1649)의 처형 12주년이 되던 해, 아버지를 그리 만들었던 올리버 크롬웰을 부관참시하게 되는데, 찰스1세의 처형에 가담했던 신하와 의회관련자들은 혹시나 자기에게도 해가 미치지않을까하는 불안함에 난리가 나지만, 안그래도 한번 휩쓸렸던 잉글랜드의 상황을 그대로 지켜본 찰스2세이기에 직접가담자들을 추방시키거나 감방에 보내는 차원에서 끝내고 별일없었다고 한다(살았네..).

이후 그래도 찰스2세는 아버지의 전처를 밟지 않기위해 최대한 의회와의 마찰을 줄이며 본인 스스로 검소하게 생활하고, 국민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일들을 그냥 지나치치않고 해결하기위해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저 xx가...

이후 사촌 루이14세와 손잡고 네덜란드 공략전을 시도하며 입지를 굳혀나가게 되는데, 의회는 못마땅해서 예산을 지원해줄 수 없다라며 찰스2세와 대립을 하게되는데, 성과도 크게 나지도 않긴했다. 

그런데 친동생 제임스2세(Jacques II, 1633~1701, 재위1685~1688)이 카톨릭을 지지한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음모꾼들이 찰스를 몰아내고 제임스를 왕으로 세울 계획이 들통이나게 되버려 난리가 나게된다.

배후는 프랑스였고, 책임질사람이 필요했는데, 결국은 찰스2세가 뒤집어 씌울 공작을 잘 보호하게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그냥 넘어가게는 되는데, 의회측에서는 찰스2세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나게 됨. 이후 계속해서 대립과 번복을 반복하게 되면서 시간이 지나가는데 찰스도 나이가 꽤들었음..

 

서거

평소 과학, 예술등에 관심이 많던 찰스인데, 실험실에서 다루던 독성 화학물질이 원인이 되었는지, 요독증(만성신부전증의 증상, 독소가 쌓이는 것)이 걸려 합병증으로 인해 1685년 서거를 하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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