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스튜어트 왕조

찰스1세

Mintaka5 2024. 7. 2. 16:14
반응형

Charles Ier, 1600~1649, 재위1625~1649

찰스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00년 스코틀랜드 던퍼믈린(Dunfermline)에서 아버지 제임스1세(Jacques I, 1566~1625, 스코틀랜드재위1567~1625, 잉글랜드재위1603~1625)와 어머니 안 드 덴마크(Anne de Danemark, 1574~1619)사이에서 둘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남.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고, 바로 작위를 받음. 

 

유년

연약하고, 병약하고, 소심하고, 수줍음을 많이 탔다고 함. 성격도 내성적이고 말이 적은 편이였다고..  대신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서, 궁정의 분위기자체가 수준이 달라졌다고 함. 

스코틀랜드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1세(Élisabeth I, 1533~1603, 재위1558~1603)가 후사없이 서거하면서 튜더 왕조(Royaume Tudor)가 끊기면서, 방계이자 제일 가까운 왕족인 아버지 제임스1세(Jacques I, 1566~1625, 스코틀랜드재위1567~1625, 잉글랜드재위1603~1625)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추대되면서 잉글랜드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됨(Maison de Stuart, 1603~1714).

 

행님 왜 벌써가는교..(ㅎㅎ)

아버지 제임스1세는 찰스보다 찰스위의 형 헨리-프레데릭(Henri-Frédéric, 1594~1612)를 더 총애했는데, 잉글랜드의 관례대로 찰스는 왕의 둘째아들에게 주어지는 요크 공작 작위를 받게 됨[ex, 조지5세(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역시 형 앨버트 빅터(Albert Victor, 1864~1892)의 동생으로서 왕위에 오르기 전에 요크 공작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형 헨리가 장티푸스로 1612년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찰스가 후계자가 되어버렸다. 형의 부재로 바로 왕세자에 해당하는 작위인 웨일스 왕자, 콘월 공작작위등을 받는다. 

 

아부지요..

아버지 제임스1세가 엘리자베스1세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이 되지만, 워낙 많은 업적을 남긴 엘리자베스1세의 능력에 미치지 못해서 상대적으로 무능한 군주로 평가를 받아왔는데, 실상 그렇게 무능력한 군주도 아니였고 이미 1567년부터 스코틀랜드의 군주였기에 36년간의 짬밥이 쌓여있는 상태고, 엘리자베스가 끌어올려놓은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나름 조화를 잘 맞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위해 세금을 더 걷고 군대도 키울려는 제임스1세의 독단적인 행보를 의회가 가만두지 않았는데, 사실상 숙종이 환국을 일으킨 것 처럼 아예 의회를 해산시켜버린다. 이후 30년전쟁(1618~1648)이 시작되면서, 개신교신자이며 딸의 남편이자 사위인 보헤미아 왕이자 팔츠 선제후인 프리드리히5세(Frédéric, 1596~1632, 재위1610~1623)쪽 편에 들면서 재정이 전쟁에 쓰이게 되면서, 말이 많았지만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1620년 카톨릭쪽 신성로마제국군의 승리로 프리드리히5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하게되면서 제임스1세의체면도 말이아니게 됨..당연히 의회의 압박이 들어오겠지?..

 

권리청원

30년전쟁이 시작된지 7년이 지난 1625년,  아버지 제임스1세가 서거하고, 찰스가 찰스1세로서 왕에 등극하게 되는데, 사실상 한단어로 표현가능 '부전자전'. 이미 기싸움중이던 의회와 더럽게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프랑스 개신교반란을 지원했다가 실패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의회도 이때다 싶어 왕권약화용 서류 권리청원을 내놓는다(1628년).

처음엔 수용한다고 했지만.. 계속된 의회의 압박으로 인해 빡이 친 찰스1세는 의회를 아주그냥 제대로 해산시켜버리는데(1629~1640)이 10여년간은 찰스1세가 스스로 통치하는 시기가 됨.

그러나 결국 1639년 스코틀랜드에서 반란이 일어나는데 이게 주교전쟁(L'expression de guerres des évêques, 1639)이다. 곪다곪다 터진 의회와의 싸움인데, 첨엔 독자적으로 왕의군대로 진압을 시도하지만, 의회의 도움없이는 전쟁비용충당이 되지않아 의회를 열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름(전쟁에 필요한 세금 걷을려고 열었음).

 

응 안돼

10년넘게 분노가 쌓인 의회입장에서도 찰스1세의 전쟁예산심의내용은 언급도 하지않고 다른 현안에 대해 심의하기 시작.. 이미 시작부터 정반대의 입장에 합의점이 보이지 않은 회의로 찰스1세의 발언을 무시한 의회의 끝은 결국 다시 해산..

근데 이번엔 10년전과는 다른실정이라(반란군이 오고있어 이것들아!!)급했던 찰스1세는 다시 의회를 소집하게 된다.. 이때다싶어 하고싶은말 다 쏟아넣은 의원들은 이전처럼 열고닫히는 사태를 막기위해 최소3년에 한번씩은 열려야한다고 규칙을 제정.

그리고 찰스1세의 허락도 받지않고 그냥 의회스스로 진압결의, 진압하게됨. 이 소식을 들은 찰스1세는 역대급 빡침이 전해져서 왕권에 도전한 의회놈들을 가만둘 수 없다는 명분하에 의회를 친다...(내전시작, 누가먼저 뒤지나 보자....)

 

아 끝났네..

처음에는 찰스1세의 왕당파가 유리한 싸움이였는데,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라는 신출귀몰한 군인이 등장하게되면서, 사실상 특수부대급 수준의 부대로 급상한 의회파를 아주그냥 왕당파를 눌러버린다(1차 포로)만 탈출에 성공하고 사실상 지분이 거의 없던 왕당파가 스코틀랜드의회와 손잡고 크롬웰을 치지만, 다시 눌림당함..(프레스턴 전투, 1648년, 찰스1세 왕당파 대패) 찰스1세의 처형을 건의한 의회였지만 크롬웰은 거부. 그러나 더 무서운건 크롬웰이 찰스1세 처형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모두 가둬버린다(이제 끝났네...).

결국 판결에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이 확정되는데, 마지막 연설을 하게 되는데(찰스1세의 마지막연설 검색해서 보기 바람), 이후 참수된다. 1649년 1월 30일. 49세

잉글랜드 국민뿐만아니라 유럽전체가 왕의 처형소식으로 충격을 받게되는데,, 잉글랜드는 1660년 찰스1세의 아들 찰스2세(Charles II, 1630~1685, 재위1660~1685)가 잉글랜드 왕위로 오르기까지 연방국이 되는데,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 Oliver Cromwell, 1599~1658) 의 주도로 국가가 운영되게 된다.

반응형

'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 > 스튜어트 왕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앤 여왕  (1) 2024.06.16
찰스2세  (1) 202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