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베르트랑 드 고트(Bertrand de Goth)
195대 교황 클레멘스5세(Clemens PP. V, 1264~1314, 재위1305~1314)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직위 | 194대 교황 | 195대 교황 | 196대 교황 |
출신 | 교황령, 트레비소 | 프랑스, 보르도 | 프랑스, 까오르 |
명칭 | 베네딕토11세 Benedictus PP. XI |
클레멘스5세 Clemens PP. V |
요한22세 Ioannes PP. XXII |
생몰년도 | 1240.xx.xx ~ 1304.07.07 | 1264.xx.xx ~ 1314.04.20 | 1244.xx.xx ~ 1334.12.04 |
콘클라베기간 | 2일 (1303.10.21~1303.10.22) |
11개월 1일 (1304.07.10~1305.06.05) |
2년 3개월 7일 (1314.05.01~1316.08.07) |
재위 | 1303.10.22 ~ 1304.07.07 | 1305.06.05 ~ 1314.04.20 | 1316.08.07 ~ 1334.12.04 |
출생
1264년,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아버지 베라르 드 고트(Béraud de Goth, 1250?~1297)와 어머니 이다 드 블랑크포르(Ida de Blanquefort, 123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95대 교황으로, 볼로냐와 오를레앙에서 교회법을 공부한 뒤 사제가 되고 이후 교황 보니파시오8세로부터 주교(1295년), 추기경(1299년)을 거쳐 1304년 교황 베네딕토11세 선종 후 열린 콘클라베에서 11개월간의 투표기간을 거쳐 선출되어 클레멘스5세로 즉위하는 인물이다. 콘클라베 동안 프랑스 왕 필리프4세의 강력한 영향으로 선출된 만큼 사실상 재위기간동안 필리프4세의 꼭두각시 교황이나 다름없었고, 여러 정책들 역시 프랑스에 이익쪽인 정책들이 나오고 그 끝은 아비뇽 유수(1309~1378)라는 사상 초유의 교황청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성직
오를레앙과 볼로냐에서 교회법을 공부한 뒤 사제 서품을 받고, 1295년 교황 보니파시오8세(Bonifacius PP. VIII, 1230~1303, 재위1294~1303)로부터 주교에 서임되고 1299년 역시 보니파시오8세로부터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1304~1305년 콘클라베
1304년 7월 7일, 교황 베네딕토11세(Benedictus PP. XI, 1204~1304, 재위1303~1304)가 선종한 후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소집일은 1304년 7월 10일로 정해져 추기경들이 교황 베네딕토11세가 선종한 페루자 대성당에서 열리게 된다. 총19명의 추기경 선거인단 중 15명이 참석하고 4명이 불참한 콘클라베는 당시 프랑스 왕 필리프4세의 간섭으로 이탈리아 출신 추기경들과 프랑스 추기경들간의 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1304년 7월 10일부터 1305년 6월 5일까지 11개월의 기간동안 진행되었으며 당시 콜론나 가문과 오르시니 가문과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로마를 바로잡아줄 중립적 인물을 원했던 추기경들은 프랑스 왕 필리프4세(Philippe IV le Bel, 1268~1314, 재위1285~1314)와 친분이 있던 대주교 베르트랑 드 고트에게 표를 몰아주어 1305년 6월 5일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명은 클레멘스(Clemens)로 명명되었고 클레멘스5세로서 즉위하게 된다.
교황
I. 교황이 되자마자
클레멘스5세는 즉위하고 난 뒤 프랑스 왕 필리프4세와 극렬하게 대립하던 교황 보니파시오8세(Bonifacius PP. VIII, 1230~1303, 재위1294~1303)가 행했던 정책들을 폐지하고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고 교류하던 필리프4세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II. 아비뇽 유수
1303년 9월 7일, 프랑스 왕 필리프4세와 극렬하게 대립하던 교황 보니파시오8세의 관계는 프랑스군이 아나니에 머무르던 교황 보니파시오8세를 습격하여 생포한다음 뺨을 때리며 구타를하고 욕설을 거듭하고 이후 교황이 정신적 고통으로 1개월만에 선종하고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5세는 사실상 필리프4세가 선출한 교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클레멘스5세는 필리프4세의 요청으로 1308년 로마 교황청을 프랑스 남부로 이주시키게 하고 1309년 아비뇽에 교황청을 정식으로 두면서 7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지속되는 아비뇽 유수(1309~1378)가 시작된다. 필리프4세는 교황 클레멘스5세를 통해 아비뇽 유수와 더불어 당시 부정적으로 재물을 축적하고 권위를 휘두르던 성전 기사단의 해체를 요구하기까지 이른다.
III. 외교
1310년대에 들어서도 1311년 빈 공의회를 공식 주최하지만, 사실상 프랑스 왕 필리프4세의 꼭두각시였던 교황은 공의회에서도 프랑스 왕의 주장을 대변하는 정도로 진행하면서 공의회가 사실상 프랑스를 위한 공의회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재위기간동안 이탈리아 반도 내 콜론나 가문과 오르시니 가문의 전쟁터로 전락한 로마는 여전히 무법지대 상태였기에 이 때를 틈타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7세(Heinrich VII, 1277~1313, 로마왕재위1308~1313, 신성로마재위1312~1313)가 로마에 입성해 이들 가문으로부터 황제 대관식을 치루게 하여 황제로 즉위한다. 특히 클레멘스5세는 당시 동아시아를 제패한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에 프란치스코회 선교사 조반니 다 몬테코르비노(Giovanni da Montecorvino, 1247~1328)를 원나라 수도 대도(현 베이징)에 보내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서로 연계해 이슬람 국가인 맘루크 왕조 세력에 맞서기 위한 외교적 행태를 취한다. 그렇게 1308년 맘루크 왕조를 몰아내기 위한 십자군을 선포하고 군사들이 모이지만 1310년 출정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나버린다.
선종
1314년 4월 20일, 50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로마 교황 > 101대~200대 교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첼레스티노5세 (0) | 2025.05.31 |
---|---|
베네딕토11세 (0) | 2025.05.30 |
요한22세 (0) | 2025.05.28 |
베네딕토12세 (0) | 2025.05.27 |
101대~200대 교황 목록 (0) | 2025.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