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베네딕토11세

Mintaka5 2025. 5. 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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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니콜로 보카시니(Niccolo Boccasini)

194대 교황 베네딕토11세(Benedictus PP. XI, 1240~1304, 재위1303~1304)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93대 교황 194대 교황 195대 교황
출신 교황령, 아나니 교황령, 트레비소 프랑스, 보르도
명칭 보니파시오8세
Bonifacius PP. VIII
베네딕토11세
Benedictus PP. XI
클레멘스5세
Clemens PP. V
생몰년도 1230.xx.xx ~ 1303.10.11  1240.xx.xx ~ 1304.07.07 1264.xx.xx ~ 1314.04.20
콘클라베기간 2일
(1294.12.23~1294.12.24)
2일
(1303.10.21~1303.10.22)
11개월 1일
(1304.07.10~1305.06.05)
재위 1294.12.24 ~ 1303.10.11 1303.10.22 ~ 1304.07.07 1305.06.05 ~ 1314.04.20

194대 교황 베네딕토11세 초상화
베네딕토1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240년 교황령 트레비소(Treviso)에서 아버지 보카시오 디 베르나르다(Boccassio e di Bernarda, ?~?)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94대 교황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사제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트레비소 내 수도원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수사로서 7년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 1264년 사제에 서품된다. 이후 수도원에서 강의를 하고 1286년 롬바르디아 지역 관구장, 1296년 수도원장을 거쳐 1298년 사제급 추기경, 1300년 주교급 추기경에 서임된 뒤 1303년 아나니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던 보니파시오8세 선종 이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10개월간의 짧은 재위기간동안 크게 한일은 없고, 콜론나 가문에 대한 처결을 진행하다가 가문의 불만으로 로마내에서 콜론나(Colonna)와 적대가문인 오르시니(Orsini) 가문과의 무력충돌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게되면서 페루자로 대피하지만 그곳에서 갑작스럽게 선종해버린다. 

 

성직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사제였던 삼촌으로부터 신학 기초 교육을 받고 1257년 트레비소 수도회에 들어가 수련과정을 거치고 7년 후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 이후 1286년 롬바르디아(Lombardia) 관구장, 1296년 수도원장, 1298년 교황 보니파시오8세로부터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1300년에는 주교급 추기경으로 승품된 뒤 1301년 교황 특사로서 헝가리에 파견되기도 한다. 

 

1303년 콘클라베

교황 보니파시오8세(Bonifacius PP. VIII, 1230~1303, 재위1294~1303)이 1303년 9월 7일 아나니 사건(Anagni incident, 1303.09.07)으로 프랑스 왕 필리프4세(Philippe IV le Bel, 1268~1314, 재위1285~1314)의 프랑스군에 의해 생포되어 폭행, 욕설에 심지어 뺨까지 맞고 충격을 받고 정신적인 고통을 받다가 1개월만인 1303년 10월 11일 선종해버리면서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사실상 아나니 사건 이후로 추기경들은 교황권 위에 올라선 프랑스 왕 필리프4세의 눈치를 모두가 봐야했고 콘클라베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데, 니콜로 보카시니 추기경은 1303년 9월 7일 아나니 사건 당시 보니파시오8세와 함께 있던 유일한 추기경으로 선출시킨 다음 압박하기 위한 정도로 쓰기 위한 프랑스 왕 필리프4세의 계산이 들어가있었다. 어쨌든 니콜로 보카시니 추기경은 선출이후 교황명을 베네딕토로 선택하여 베네딕토11세(Benedict PP. XI, 1240~1304, 재위1303~1304)로서 즉위하게 된다. 

 

교황

교황 베네딕토11세는 즉위 후 10개월(1303.10.22~1304.07.07)이라는 짧은 재위기간동안 고향인 트레비소를 발전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고 진행하는 도중에 선종해버려 실천되지는 못한다. 즉위한 직후 베네딕토11세는 전임 교황 보니파시오8세가 적대한 가문 콜론나 가문 출신의 파문된 추기경들을 다시 회복시켰지만 전임 교황이 빼앗은 콜론나 가문의 재산은 모른척 해버리면서 콜론나 가문 뿐만아니라 다른 가문들에게도 불만을 끼쳐버리는데 더욱이 불만차있던 콜론나 가문과 라이벌격 가문 오르시니 가문이 로마에서 격돌하면서 로마 자체가 큰 폭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교황청조차 안전을 보장못할 지경에 이르면서 베네딕토11세는 로마를 빠져나와 페루자(Perugia, 현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도시 페루자)로 도피하게 된다. 

 

선종

그러나 베네딕토11세는 페루자로 온지 수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64세로 선종해버린다. 정확한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독살되었거나 식사를 하다가 소화불량으로 인한 탈이 증폭되어 쇼크가 왔다는 설이 있다. 베네딕토11세의 후임교황을 선출할 콘클라베는 당시 혼란스러운 로마에서 치루기에는 너무 위험하여 베네딕토11세가 선종한 페루자의 페루자 대성당에서 콘클라베가 치루어지게 되나, 11개월에 달하는 콘클라베 기간을 거쳐 베르트랑 드 고트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클레멘스5세로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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