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자크 푸르니에(Jacques Fournier)
197대 교황 베네딕토12세(Benedictus PP. XII, 1285~1342, 재위1334~1342)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96대 교황 | 197대 교황 | 198대 교황 |
| 출신 | 프랑스, 까오르 | 프랑스, 사베르됭 | 프랑스, 리모주 |
| 명칭 | 요한22세 Ioannes XXII |
베네딕토12세 Benedictus PP. XII |
클레멘스6세 Clemens PP. VI |
| 생몰년도 | 1244.xx.xx ~1334.12.04 | 1285.xx.xx ~ 1342.04.25 | 1282.xx.xx ~1362.09.12 |
| 콘클라베기간 | 2년 3개월 7일 (1314.05.01~1316.08.07) |
8일 (1334.12.13~1334.12.20) |
3일 (1352.12.16~1352.12.18) |
| 재위 | 1316.08.07 ~ 1334.12.04 | 1334.12.20 ~ 1342.04.25 | 1352.12.18 ~ 1362.09.12 |

출생
1285년 프랑스 왕국 사베르됭(Saverdun)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97대 교황이자 아비뇽 유수(1309~1378)이후 아비뇽 교황청의 3번째 교황이다. 청빈한 삶을 추구하고 엄격함과 동시에 성직자들의 부패를 매우 경계하여 족벌주의를 엄격하게 금지한 교황이다. 전임 교황 요한22세(Ioannes PP. XXII, 1244~1334, 재위1316~1334)가 취했던 노선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취하여 전임 교황으로부터 발생했던 신학적 논란으로 인한 혼란과 신성로마황제와의 대립을 종식시키고 안정화를 꾀한 다음 수도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개혁 교황이다.
성직
프랑스 남부 사베르됭(Saverdun)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은 푸아(Foix)에서 자라나며 불본 시토회 수도원(L'abbaye de Boulbonne, 현 프랑스 옥시타니주 오뜨-갸론 신테가벨 'Cintegabelle')에서 수련과정을 거쳐 수도사가 되었고, 삼촌인 추기경 아르노 노벨(Arnaud Novel, ?~1317, 추기경서임1310년)의 추천으로 생-마리 퐁푸아드 수도원(Abbaye Sainte-Marie de Fontfroide, 현 프랑스 옥시타니주 나르본느)에 들어가서 신학 교육을 받으며 교육과정이 끝난 후 파리로 유학하여 생 베르나르 대학교(Université Saint-Bernard, 옛 파리 대학교의 시토회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석사 학위를 받고난 뒤 1311년 26세의 나이로 자신이 수련했던 생-마리 퐁푸아드 수도원 수도원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성직 생활이 시작된다. 1317년 파미에(Pamiers, 현 프랑스 옥시타니주 데빡뜨망 파미에)교구를 맡게 되면서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게된다. 이후 1326년 미르푸아(Mirepoix, 현 프랑스 아리에주 미르푸아)주교, 1327년엔 역시 교황 요한22세로부터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1334년 콘클라베
교황 요한22세(Ioannes PP. XXII, 1244~1334, 재위1316~1334)가 1334년 12월 4일 선종함에 따라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총24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으로 구성된 콘클라베는 1334년 12월 13일부터 12월 20일까지 8일간 투표가 진행되는데, 당시 아비뇽 유수(1309~1378)로 인해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에 있었을 때였고 추기경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프랑스 추기경들은 선출될 교황이 아비뇽에서 로마로 다시 반환하지 않을 조건하에 지지를 한다고 선포하였고 콘클라베가 길어지던 찰나에 자크 푸르니에 추기경이 콘클라베8일차인 1334년 12월 20일 교황으로 선출되어 베네딕토12세(Benedictus PP. XII)로 명명된다.
교황
교황 베네딕토12세는 즉위하고 나서 전임 교황 요한22세가 신성로마황제 루트비히4세(Ludwig IV, 1282~1347, 로마왕재위1314~1347, 신성로마재위1328~1347)에게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분쟁을 해결하기 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령을 내리게 되면서 둘 사이에 골이 생겨버리면서 대립관계가 된 것과 기존 카톨릭 신학적 논쟁에 반하는 사목활동과 설교를 한 결과 프란치스코회와 논하여 상당한 논란을 발생시켜 위기가 올 뻔 했는데 이 전임교황들의 정책들에 반대되는 정책으로 대립관계가 된 신성로마 황제 루트비히4세와 평화 협정을 체결시키고 프란치스코회와도 타협을 이루고 교황청 내 만연하던 족벌주의를 경계하며 안정화를 꾀하였다. 거기다 콘클라베 때 추기경단들이 조건으로 내걸었던 아비뇽 교황청을 다시 로마로 이전하기 위해 1335년 8월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 교황궁등을 수리하게 하는등 행동을 보이지만 이전에는 실패하고 아비뇽에 계속 머무르게 되면서 아비뇽에 교황궁을 건축하도록 지시하게 된다. 교황궁은 이후 후임 교황 클레멘스6세(Clemens PP. VI, 1282~1362, 재위1352~1362)대에 들어서 완공되게 된다.
선종
베네딕토12세는 재위9년차이던 1342년 4월 25일, 57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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