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황제/합스부르크

레오폴트1세

Mintaka5 2025. 5. 1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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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Leopold I, 1640~1705, 재위1658~1705)

  전임 황제 당시 재직 황제 후임 황제
직위 신성로마황제 신성로마황제 신성로마황제
가문 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명칭 페르디난트3세
Ferdinand III
레오폴트1세
Leopold I
요제프1세
Joseph I
생몰
년도
1608.07.13 ~ 1657.04.02 1640.07.09 ~ 1705.05.05 1678.07.26 ~ 1711.04.17
재위 로마왕(독일왕)
1636.12.22~1653.05.31
로마왕(독일왕)
1658.07.18~1690.01.23
로마왕(독일왕)
1690.01.23~1711.04.17
신성로마황제
1637.02.15~1657.04.02
신성로마황제
1658.07.18~1705.05.05
신성로마황제
1705.05.05~1711.04.17

황제 레오폴트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40년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빈에서 아버지 페르디난트3세(Ferdinand III, 1608~1657, 재위1637~1657)와 어머니 스페인의 마리아 안나(Maria Anna of Spain, 1606~1646)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배경

신성로마황제로, 친형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원래는 성직자가 되려고 했으나 갑작스레 승계받아 황제가 되는 인물로 47년간 재위하며 신성로마황제중 가장 긴 재위기간을 자랑한다.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의 라이벌로 재위기간 내내 프랑스 루이14세와 전쟁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동남쪽 오스만 제국까지 위협을 가하면서 서쪽으로는 프랑스 동쪽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2개의 전선을 관리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고 어려운 상황이였던 만큼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해 신성로마제국령들을 잘 지켜냈다는 평을 받는 인물이다.  

 

뒤바뀐 운명 

레오폴트는 황제 페르디난트3세의 둘째 아들로서 원래는 군주가 될 위치가 아니여서 성직자가 되기위한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레오폴트의 친형인 독일왕 페르디난트4세(Ferdinand IV, 1633~1654, 독일왕재위1653~1654)가 1654년 21살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해버리면서 졸지에 계승자를 잃은 페르디난트3세는 둘째 아들 레오폴트를 상속자로 격상시켜 급하게 상속자 교육을 받게 된다. 1655년 헝가리 왕 선출을 시작으로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대공, 독일왕(선제후들로부터 선출되었으나 교황의 승인을 받지않은 상태)등을 거쳐 1657년 4월, 아버지 신성로마황제 페르디난트3세가 사망하면서 빈틈이 생겼을 때 프랑스 총리대신 쥘 마자랭(Jules Mazarin, 1602~1661)이 선제후들에게 접근해 합스부르크 출신인 레오폴트를 지지하지 말라고 설득하는등 정치거래가 오고가는데, 당시 프랑스와 전쟁중이던 스페인 합스부르크에 지원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건으로 다른 경쟁자(바이에른 페르디난트 마리아등)들을 물리치고 1658년 8월, 교황 알렉산데르7세(Alexander PP. VII, 1599~1667, 재위1655~1667)가 레오폴트의 대관식을 집전하면서 정식으로 신성로마황제에 등극하게 되었으며 레오폴트1세로서 역사에 등장한다. 

 

 

프랑스 루이14세와의 대립

I. 로렌 공국

프랑스 동북부에 위치했던 로렌 공국은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가깝게 지낸 국가였는데 루이14세의 네덜란드방향 진군 정책으로 인해 그 길목에 놓여있던 로렌 공국은 당시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에 의해 점령당하고 공작 샤를5세 레오폴트(Charles V Leopold, 1643~1690, 재위1675~1690)는 공국에서 쫓겨나와 루이14세의 라이벌이자 적이였던 황제 레오폴트1세에게 찾아온다. 황제는 이들을 환영하고 뛰어난 군인이였던 샤를5세 레오폴트를 기용하여 군을 이끌게도 하였다.

 

II. 네덜란드 전쟁(1672~1679)

1672년 프랑스 왕 루이14세가 독립한지 25년도 채 되지 않은 네덜란드를 침공한다. 프랑스는 당시 1668년에 스페인과의 상속 전쟁이 끝난지 겨우4년이 지난 시점이였는데 상속 전쟁 당시 루이14세가 네덜란드까지 침공할 계획을 세우게 되면서 네덜란드가 잉글랜드, 스웨덴과 함께 동맹을 체결하여 프랑스 루이14세를 압박하여 네덜란드 침공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이를 괴씸하게 여겼던 루이14세는 네덜란드를 침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게 되면서 네덜란드의 동맹국이였던 잉글랜드의 왕 찰스2세(Charles II, 1630~1685, 재위1660~1685)에게 자신의 처형이였던 잉글랜드의 헨리에타 스튜어트(Henrietta Stuart of England, 1644~1670)를 보내 비밀리에 도버 조약(Secret Treaty of Dover, 1670.06.01)을 체결해 불가침 약조를 받고, 1671년에는 신성로마제국 내 선제후들과 동맹을, 1672년에는 역시 네덜란드와 동맹이였던 스웨덴의 왕 칼11세(Karl XI, 1655~1697, 재위1660~1697)와도 동맹을 맺게되면서 네덜란드를 고립시키기에 이른다. 그렇게 스웨덴과의 동맹이 체결된지 불과 2개월도 안된 1672년 3월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잉글랜드가 네덜란드에 선전포고를, 4월에는 프랑스가 네덜란드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다급해진 네덜란드가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와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공작 프리드리히 빌헬름(Friedrich Wilhelm, 1620~1688, 재위1640~1688)과 급하게 동맹을 맺어 프랑스에 맞선다. 전쟁 초반에 위기를 맞은 네덜란드 연합군은 1672년 6월 서퍽 해안에서 벌어진 해상 전투였던 솔레베이 전투(The battle of Solebay, 1672.06.06)에서 프랑스-잉글랜드 연합군을 격파하여 해상에서는 승기를 잡았지만 육상 전투에서는 연전연패를 당하면서 위기를 맞는데 그리하여 네덜란드는 총 군사령관이였던 오렌지공 윌리엄(미래의 잉글랜드 왕 윌리엄3세)가 1672년 7월 네덜란드 총독으로 임명한다. 비록 프랑스와 중립관계를 약속했던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는 네덜란드가 점점 더 위기에 빠져 국가 통째로 프랑스에게 뺏길 것 같자 프랑스와의 중립을 깨고 네덜란드와동맹을 맺는다. 그렇게 강대 강 구도로 구성된 전쟁은 수년간의 전투로 소모전을 벌이면서 맞서다가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루이14세는 1678년 2월 대군을 총집결시켜 헨트(Ghent), 이프르(Ieper)등을 점령하면서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게 되면서 네덜란드 연합군측에서 루이14세에게 협상을 요구하지만 루이14세가 제2차 북방전쟁당시 스웨덴군이 독일 북부지역에서 잃어버린 영토를 요구했는데 이를 거부하게되면서 1차 협상이 결렬되고 전투가 벌어지는데, 도저히 전쟁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네덜란드 연합군 측에서는 계속해서 협상을 시도하고 1678년 8월부터 1679년 10월까지 협상과 합의를 이끈 결과1679년 10월 최종 결과를 내며 1년2개월간의 네이메헌 조약(The treaties of Nijmegen, 1678~1679)을 통해서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스에 유리한 조건의 결과로 맺게 된다.   

 

III. 아우크스부르크 대동맹 전쟁(1688~1697)과 레이스베이크 조약

1685년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가 할아버지인 앙리4세(Henri IV, 1553~1610, 나바라재위1572~1610, 프랑스재위1589~1610)가 재위중 종교자유를 인정한다는 칙령인 '낭트칙령(1598)'을 철회한다는 칙령인 '퐁텐블로 칙령(1685)'을 발표하면서 프랑스의 위그노가 프랑스에서 추방되거나 처벌받게되는데, 이들은 숙련된 기술공 또는 부르주아같은 사회핵심 계층이였기에 프랑스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1686년 6월부터 유럽의 국가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프랑스가 쇠퇴하는 틈을 타 유럽 국가들의 연합을 형성해 프랑스에 대항하고자 하는 동맹을 결의하기로 한다. 1688년 11월 잉글랜드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프랑스에 대항하는 동맹국중 주체 국가중 하나인 네덜란드 총독 오렌지공 윌리엄(미래의 잉글랜드 왕 윌리엄3세)은 잉글랜드 정치인들의 요청을 받아 당시 폭정을 이끌던 잉글랜드 왕 제임스2세(James II, 1633~1701, 재위1685~1688)를 폐위시키고 아내 메리(메리2세)와 함께 잉글랜드의 공동 군주로 추대받고 즉위하게 된다. 그렇게 잉글랜드-네덜란드 연합으로 거대해진 반 프랑스세력은 1689년 5월 잉글랜드 왕 윌리엄3세(William III, 1650~1702, 네덜란드총독재임1672~1702, 잉글랜드재위1689~1702)와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로 하여금 1648년 30년전쟁(1618~1648)을 마무리짓는 조약이였던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정해진 국경을 프랑스 이전 국경으로 회복시키려는 명분으로 대동맹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첫 공격은 팔츠 공국이 프랑스 국경을 공격하는 것이였고 이후 사보이 공국등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동맹에 참여하는 국가가 많아짐에 따라 프랑스와의 전투가 벌어지는데, 당시 대동맹 국가 모두를 합쳐도 프랑스 군 숫자보다 적은 수준이였던 터라 전쟁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695년부터 프랑스에서부터 경제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하면서 군수지원에 문제가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프랑스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밀리다가 프랑스가 전쟁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하게 되면서 대동맹측에 협상을 시도하여 1697년 9월 20일 레이스베이크 조약(The peace of Ryswick, 1697.10.30)을 체결하여 1679년 네이메헌 조약으로 프랑스에게 유리한 조건을 취했던 것을 다시 되돌려 프랑스령으로 속해져버렸던 로렌 공국을 신성로마제국으로 반환하고, 명예혁명으로 잉글랜드 왕이 된 윌리엄3세를 인정함과 동시에 명예혁명으로 폐위되어 프랑스로 쫓겨나 프랑스편에 섰던 제임스2세를 지지하던 자코바이트(Jacobite)를 지원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서 마무리 된다.  

 

IV.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아우크스부르크 대동맹 전쟁이 끝난지 겨우 3년이 지난 시점, 대동맹 전쟁당시 신성로마제국측에 섰던 스페인 왕 카를로스2세(Carlos II, 1661~1700, 재위1665~1700)가 후사없이 급사해버리면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혈통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카를로스2세와 같은 합스부르크 가문 친척으로 가까웠던 레오폴트1세(카를로스2세의 아버지 펠리페4세와 레오폴트1세의 어머니 마리아 안나는 친남매 사이, 거기다가 루이14세의 어머니 안 도트리슈 역시 펠리페4세와 마리아 안나와 친남매 사이이므로 카를로스2세, 레오폴트1세, 루이14세는 모두 사촌지간이다)  이미 건강이 좋지않던 카를로스2세가 승하하기 전부터 유럽 국가들은 스페인 분할에 관해 논의하기위해 모여서 협상을 거치지만 사실상 같은 가문이였고 레오폴트1세의 현조인 신성로마황제 카를5세(Charles Quint, 1500~1558, 재위1519~1556)대에 스페인과 독일지역 모두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터라 굳이 협상에 응할 필요없이 자기가받을 명분이 충분했기에 협상을 거절한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고 더욱이 프랑스 루이14세 역시 어머니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 1601~1666)를 명분으로 스페인 왕위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해 손자들 중 둘째인 앙주공작 필리프(미래의 스페인 왕 펠리페5세)를 내세운다. 결국 1700년 카를로스2세가 승하하면서 루이14세의 손자 앙주공작 필리프가 펠리페5세(Felipe V, 1683~1746, 재위1700~1724,1724~1746)가 즉위하게 되면서 불만을 품은 유럽국가들은 프랑스를 상대로 다시 대 프랑스 동맹을 결성한다. 레오폴트1세 역시 이 대동맹 전쟁에 참여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인 카를(미래의 신성로마황제 카를6세)을 스페인 왕위 요구자로 내세워 전투에 임하게 된다. 이번 전쟁역시 대 프랑스 동맹군 모두 다 합쳐서 23만의 군대로 프랑스의 40만 군대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점점 동맹국들에게 유리한 전황이 벌어지지만 1705년 5월 5일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가 승하해버리면서 왕위계승전쟁은 레오폴트1세를 이어 새 황제로 선출된 요제프1세(Joseph I, 1678~1711, 독일왕재위1690~1711, 신성로마재위1705~1711)가 이끌게 된다. 

 

레오폴트1세의 전쟁

I. 포메라니아 침공과 올리바 조약

30년전쟁(1618~1648)이 끝난지 불과7년이 지난해인 1655년, 스웨덴 왕 칼10세 구스타프(Karl X Gustav, 1622~1660, 재위1654~1660)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침공하게 되면서 제2차 북방 전쟁(1655~1660)이 벌어지게 된다. 서부지역을 선제공격하여 파죽지세로 밀고들어간 결과 폴란드 왕 얀2세 카지미에시 바사()는 합스부르크 신성로마제국으로 도망쳐서 이곳에서 다시 군대를 모아서 1656년 군대를 이끌고 폴란드로 가서 스웨덴군을 몰아내고 영지를 겨우 되찾는데, 스웨덴군이 밀어나는 틈을 타 폴란드 동부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러시아 차르국이 스웨덴에 선전포고를 하고 스웨덴령을 침공한다. 다급해진 스웨덴은 동맹국이였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 공작 프리드리히 빌헬름(Friedrich Wilhelm, 1620~1688, 재위1640~1688)에게 군사를 지원받는데 그 조건으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의 주권을 어느정도 인정해주고, 동시에 폴란드 변경에 있던 트란실바니아 공국 게오르기2세 라코치()와 동맹을 맺게 되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쳐들어간다. 그러나 이 전쟁은 갑자기 여러 국가들이 개입하게되며 국제전양상을 뛰게 되는데, 1657년 덴마크 왕 프리드리히3세()가 앙숙이였던 스웨덴 본토를 공격하여 오래전부터의 갈등을 청산하고자 하는데, 이 때를 틈타서 폴란드 왕은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작 프리드리히 빌헬름에게 완전한 주권을부여한다는 조건과 함께 스웨덴과의 동맹 탈퇴를 요구하여 프리드리히 빌헬름은이를 수락하여 베흘라우 조약(The treaty of Wehlau, 1657)을 체결하여 스웨덴과 동맹관계를 끊고 주권을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 스웨덴군의 공격을 받고 도망쳐 의탁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1세와도 동맹을 맺게 된다. 레오폴트1세는 그렇게 폴란드를 포함한 동맹국들과 함께 스웨덴군을 공격하기위해 스웨덴령이였던 포메라니아(현재 발트해 남쪽 독일과 폴란드 국경 해안지역)를침공하기에 이른다. 스웨덴이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까지 공격하여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1660년 2월 스웨덴 왕 칼10세 구스타프가 사망하면서 구심점이 없어지게되면서 전투의지를 상실하고 협상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는 1660년 5월 3일 올리바 조약(The treaty of Oliva, 1660.05.03)을 통해 제2차 북방 전쟁이 끝나게 된다. 

 

II. 헝가리와 오스만 제국

레오폴트1세의 세습령중 하나였던 헝가리 왕국은 레오폴트1세가 상당히 골머리 썩혔었던 국가중 하나인데, 카톨릭 신봉자였던 레오폴트1세는 헝가리에 퍼진 개신교집단을 상당히 못마땅해 했었는데, 마침 1671년 사건이 터져버린다. 1671년 봉기를 레오폴트는 개신교를 탄압하려는 정치적 계산 하에 강경진압시키고, 이후로도 계속 일어난 봉기를 진압하는데 자비가 없었다. 그러나 1683년 혼란스러운 틈을 타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트4세(Mehmed IV, 1642~1693, 재위1648~1687)가 레오폴트1세에게 불만이 많았던 상헝가리 공작 퇴쾨이 임레(Thököly Imre, 1657~1705, 상헝가리재위1682~1685, 트란실바니아재위1690)의 요청을 받아 신성로마제국 수도 빈을 공격한다. 그렇게 빈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빈이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레오폴트1세는 빈을 빠져나와 파사우로 피난가게 될 정도로 위기를 겪는데 신하이자 프랑스 출신의 유능한 장군 사부아 공자 외젠(Prince Eugene Francis of Savoy-Carignano, 1663~1736)의 활약으로 오스만제국군을 대파하여 빈에서부터 몰아내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유리한 조건을 취득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겼던 헝가리와 공작령등을 되찾아낸다.  

 

승하

위에서도 언급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한창이던 1705년 5월 5일 65세의 나이로 승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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