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sco I Sforza, 1401~1466, 재위1450~1466
출생
1401년 토스카나 산미니아토(San Miniato) 아버지 자코모 아텐돌로 스포르차(Giacomo Attendolo Sforza, 1369~1424)와 어머니 루치아 테르자니 데 마르시아노(Lucia Terzani de Marsciano)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아버지는 페스카라 출신의 용병으로서 이탈리아 내 가문들 피렌체, 나폴리, 비스콘티가문등에서 복무했는데 이런 아버지를 따라 프란체스코 역시 1419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용병으로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424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프란체스코가 아버지 뒤를 이어 용병단을 맡게되면서 경력시작.
이렇게 용병으로서 첫 경력은 나폴리로 나폴리 여왕 조반나2세(Giovanna II di Napoli, 1373~1435, 재위1414~1435)의 곁에서 섬기는 일, 1430년 교황 에우제니오4세(Eugenius PP. IV, 1383~1447, 재위1431~1447)에 맞서 밀라노 비스콘티가문에 복무, 1438년 베네치아 총독등을 맡게된다.
사위좀 처리해주실분?
1438년으로 돌아가서, 프란체스코는 밀라노 비스콘티가문을 위해 베로나를 공격한 니콜로 피치 니노(Niccolò Piccinino, 1386~1444)와 2000여명의 병사를 포로로 사로잡으면서 피치에게 관용을 베풀어 풀어주는데, 가만두고못보던 피치는 한해가 가기도전에 다시 토스카나를 침공하지만 또 깨지는데, 저번보다 더 크게 깨진다(비스콘티+피렌체+베네치아 연합군 상대로 크게 박살냄).
이로인해 밀라노 공작 필리프 마리 비스콘티(Philippe Marie Visconti, 1392~1447, 재위1412~1447)는 1441년 크레모나에서 조약에 서명. 프란체스코는 필리프의 사생아인 딸 블랑쉬 마리 비스콘티(Blanche Marie Visconti)와 결혼하게 된다.
물론 의심이 많던 필리프는 사위와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죽기전 수년동안에 걸쳐서 사위를 끌어내리기 위해(?)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실패.
3년천하 공화국
필리프 마리 비스콘티가 1447년에 사망하면서 여러 후계자들이 입밖으로 오르락내리락 거리지만 정작 밀라노 시민들은 언급된 이들을 모두 철회하고 암브로시아 공화국(Aurea Repubblica Ambrosiana, 1447~1450)을 선포하게 되지만, 프란체스코는 이들의 도움요청을 받아 공화국을 지원하며 베네치아 공화국 군대에 맞서 저항하지만 프란체스코가 이들을 배신하고 망명한다음 군대를 이끌고와 밀라노를 봉쇄해버림으로서 배고픈 밀라노 시민들이 공화국자체를 전복시키고 프란체스코를 입성시킴으로서 스스로 밀라노 공작이 되면서 공화국은 끝이난다(교활..).
황제가 인정안해주니.. 강해져야지
밀라노 공작이 되면서 시민들에게 정의를 보장하고 권리를 보장하고 평화를 유지할 것을 맹새하면서 입성 한달만에 공작으로서 정식승계를 받지만,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3세(Frédéric III, 1415~1493, 재위1440~1493)은 프란체스코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관계가 악화되면서 여러 귀족가문 수장들과 협상을 거치며 세력을 더 키워나간다(황제가 인정을 안해주니...강해져야지).
자녀의 결혼을 통한 다른 귀족가문과의 연대를 유지하며 권력을 유지하며, 스스로는 권력을 중앙집권체제로 전환시키며 당시 이탈리아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만드는데 성공하게 됨.
서거
1466년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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