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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3

제암리 학살 사건

제암리 학살 사건, 1919  배경1919년 4월 15일,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 위치한 제암리 감리교회에서 일제의 만행으로 수십명의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다. 기독교, 천도교 신자 30여명과 민가들이 불태워져버린 사건으로 주동자이자 지휘책임자인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인 아리타 도시오 중위(?~?)는 부하들을 이끌고 지난달 3월 1일에 발생한 만세운동의 주동자를 찾으려고하는 토벌작전을 펼치는데, 3월 31일에 제암리에서 수천명의 조선인이 만세운동을 벌이는데 이 때 일제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가 발생함에 따라 만세운동이 격해지면서 흥분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이 사는 가옥과 학교에 불을지르는 일이 벌어진다. 토벌대는 지난일을 사과하기위해 교회(제암리 감리교회)에 모이라고 하면서 예배당안으로 모..

강우규

강우규, 1855~1920출생1855년 조선 평안도 덕천 제남에서 아버지 강재장과 어머니  배경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 어려서부터 한의학을 공부해서 한의사로서 어려운사람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봐주고 한편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는 등 기부하는 삶을 살아온 학자이다. 1905년(광무8년, 고종41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면서 점차 국운이 기울어감을 느끼던 강우규는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조선의 독립을 도모했지만,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조선의 국권이 일제로 넘어감에 따라 식민지가 되어버리면서 크게 분노하여 국권을 회복시킬 명분으로 만주로 가서 한약방을 경영하는 한편에 조선인들의 마을을 건설하게끔 해 독립군들의 주요 거점지역이 되게끔 성장시킨다..

독립운동가 2024.12.25

3.1운동

3.1운동(1919)기미년 1919년 3월 1일, 전국적 범위에서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전개된 비폭력 독립 만세 운동. 전국적 운동으로 일제의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꾸게 한 역사적 사건. 배경I. 발단1916년 조선총독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 총독재임1910~1916)에서 하세가와 요시미치(1850~1924, 총독재임1916~1919)로 계승이 된다.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동화시켜 식민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고자 학교를 설립하고, 일본군 헌병이 경찰의 역할을 겸임하는 헌병 경찰 제도를 창시함으로서 조선의 치안을 유지함과 동시에 불량선인을 단속, 집회와 단체운동을 일절 막고자 했다. 1918년 일본에 큰 흉년이 들면서 쌀가격이 폭등하는등 소동이 나면서 수습책으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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