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구/조선

사간원

Mintaka5 2025. 2. 6. 11:40
반응형

사간원(1402~1894)

 

 

 

배경

언론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중 하나로서, 사헌부와 더불어 사간원의 간원들도 대간이라 칭했다. 조선이 건국된 해에 고려시대 문하부 낭사제도를 계승하여 명목을 이어갔다가 1401년(태종1년) 문하부가 혁파되고 의정부가 설치됨에 따라 독립된 기관 사간원으로서 재탄생하게 되고 세조때와 성종때 변동을 거쳐 1485년(성종16년) 경국대전으로 직제화됨에 따라 이어져오다가 1894년(고종30년) 갑오개혁으로 관제가 개혁되어 변동이 있기까지 이어진다. 

사간원은 국왕, 신하들의 하루 일과와 간쟁, 논박등을 기록하고 사헌부와 더불어 언론의 기능을 수행한 기관으로서 현재의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 언론사등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역사

사간원의 전신은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의 낭사(982)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조선이 건국된 이후 1401년(태종1년) 태종(1367~1422, 재위1400~1418)이 문하부를 의정부에 병합할 때 문하부의 낭사를 사간원으로 분리 독립시켜 독립된 기관으로서부터 사실상 조선 사간원의 시작지점이라고 본다. 

그렇게 권한이 커진 사간원은 국왕에게 간언을 하는게 주된 일이였기 때문에 국왕또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성종(1457~1494, 재위1469~1494)때 힘이제일 강해지지만 연산군(1476~1506, 재위1494~1506)대에 잠시 폐지되었다가 1506년 일어난 중종반정으로 다시 복구된 이후 쭉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오다가 1894년(고종30년)갑오개혁으로 폐지된다.

 

역할

고려시대 문하부는 간쟁과 논박을 주 임무로 삼았는데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앞선 임무에 왕명 출납(추밀원 역할)까지 담당하였고, 1401년(태종1년) 문하부가 혁파되고 사간원이라는 이름으로 독립된 관청으로 나타나면서 왕명 출납관련 업무는 승정원(현 대통령 비서실)으로 이관된다. 

사간원은 1485년(성종16년) 경국대전으로 법제화 됨에 따라 간쟁과 논박으로 기능이 사실상 고정된다. 간쟁과 논박과 더불어 언론기능까지 담당하게 되는데, 사헌부와 더불어 불법행위를 한 관리 탄핵, 부정적으로 인사를 하는것을 막고, 정치적 기강을 바로잡아 바른 정치를 하게끔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된다. 

 

 

품계

1485년(성종16년)완성된 [경국대전]에 의해 당상관인 정3품 상계 대사간을 사간원의 책임자로서 이하의 품계로 구성되었다. 

    구성 직책 현재의 비고
정1품 당상관      
종1품      
정2품      
종2품      
정3품 상계 대사간
<기관장>
감사원장,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정원 1명, 감사원장은 현재 종1품 부총리급,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정2품 장관급.
정3품 하계 당하관      
종3품 사간 국장 정원 1명
정4품      
종4품      
정5품 헌납 부국장, 부장 정원 1명
종5품      
정6품 정언 사무, 주무관  정원 2명
종6품      
이속(말단행정직원) - 서리21인 (창도 : 14명)
반응형

'행정기구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문관  (0) 2025.02.05
사헌부  (0) 2025.02.03
비융사  (0) 2025.01.21
경국대전(1485)  (0) 2024.12.21
암행어사  (0) 202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