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의 군주/프로이센 왕국(1701~1918)

프리드리히1세(프로이센)

Mintaka5 2024. 12. 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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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édéric Ier, 1657~1713, 선제후재위1688~1713, 프로이센왕국재위1701~1713

프리드리히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57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선제후국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아버지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Frédéric-Guillaume, 1620~1688, 선제후재위1640~1688)과 어머니 루이즈-앙리에트(Louise-Henriette d'Orange, 1627~1667)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프로이센 왕국을 선포한 프로이센 초대 군주. 아버지 대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1688년 서거하면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선제후 프리드리히3세로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로서 재위를 이어가면서 황제 레오폴트1세(Léopold I, 1640~1705, 재위1658~1705)를 모신다.

잉글랜드 명예혁명(1688)에도 사촌인 윌리엄3세(William III, 1650~1702, 재위1689~1702)를 지원했고,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에도 참여하여 그의 지위와 명예를 얻고자 여러 사건에 개입하였지만 만족할만큼의 보상을 얻지못해도 계속 참여를 한 결과 1700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황제 레오폴트1세에게 군대를 보내주느 대가로 이전부터 열망했던 왕이 되게 된다. 

 

형제

프리드리히의 두 형 빌헬름 카를은 모두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1620~1688, 재위1640~1688)이 살아있을 때 사망해버려서 사실상 프리드리히가 장남이 되면서 계승을 받게 된다. 프리드리히 역시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서 고질병을 가지고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를 가졌다 한다. 특히 한쪽다리가 짧아서 기울어진 체형때문에 기울어진 프리드리히라는 별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687년엔 막내동생 루트비히마저도 사망해버리면서 사실상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유일한 자식이 된다. 

  영어 / 프랑스어 생몰년도(재위기간)
빌헬름 William / Guillaume 1648 ~ 1649
카를 Charles / Charles-Émile 1655 ~ 1674
프리드리히 Frederick / Frédéric  1657 ~ 1713(선제후재위1688~1713, 프로이센왕재위1701~1713)
하인리히 Henry / Henri 1664 ~ 1664
아멜리에 Amalie / Amélie  1664 ~ 1665
루트비히 Louis / Louis de Brandebourg 1666 ~ 1687

이후 1688년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사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선제후 프리드리히3세로 즉위하면서 자신의 이복형제들에게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동생들의 영토를 흡수시키고 선제후국을 안정화시켜 자신에게 알맞는 통치체제로 운영하게끔 베이스를 만들어놓는다. 

 

프로이센의 왕

1688년 잉글랜드 제임스2세(James II, 1633~1701, 재위1685~1689)의 전횡으로 명예혁명이 발생함에 따라 사촌 오라녜의 빌럼(미래의 윌리엄3세, William III, 1650~1702, 재위1689~1702)을 돕고 동시에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간의 9년전쟁(1688~1697)이 벌어짐에 따라 레오폴트1세 황제의 동맹(아우크스부르크 동맹)의 일원이 되어 어쨌든간에 보상을 받고자 노력하고 특히 개인적으로 왕이 되고싶어하는 열망에 많은 사건또는 전투에 참여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1700년 스페인 합스부르크 마지막 군주 카를로스2세(Chalres II, 1661~1700, 재위1665~1700)가 자식없이 승하하면서 왕위계승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프리드리히는 황제 레오폴트1세에게 군사 지원을 대가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선제후를 국왕으로 승격해달라는 협상을 하면서 이후 프리드리히가 스스로 대관식을 치르고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선제후국에서 프로이센 왕국으로 영지의 등급을 격상시켰다.

뭐 물론 프로이센 내에서는 왕으로 인정받고 바깥에서는 여전히 선제후로서 국한되었기에 신성로마황제 선거에 개입하는 선제후로서는 계속 그 지위를 유지한다.

 

승하

1701년 왕으로서 즉위한 이후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예술에 상당히 우호적이였지만 상대적으로 사치가 심해서 사치품들이 궁에 넘쳐나고 당시 문화예술의 집결지였던 프랑스의 문화를 상당히 좋아해 궁을 꾸미고 궁정생활을 즐기는 형태로 나라예산이 급격하게 소모된다. 뭐, 군주로서 첫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많은 예산을 써서 이미지에 투자했다고 치지만 1713년 승하할 당시 국가부채를 생각한다면 반반의견이 나뉠만도..

1713년 베를린에서 56세로 승하. 이후 프로이센 왕은 아들인 프리드리히 빌헬름1세(Fredrick William I, 1688~1740, 재위1713~1740)가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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