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황제/합스부르크-로트링겐

레오폴트2세(신성로마황제)

Mintaka5 2024. 9. 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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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 II du Saint-Empire, 1747~1792, 재위1790~1792

레오폴트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747년 신성로마제국 빈에서 아버지 프란츠1세(프:François Ier, 영:Francis Ier, 1708~1765, 로렌재위1729~1737, 신성로마재위1745~1765)와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프:Marie-Thérèse d'Autriche, 영:Maria Theresa, 1717~1780, 재위1740~1780)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남. 

 

배경

1765년 아버지 프란츠1세가 본인의 결혼식에 축하하러갔다가 뇌졸중으로 승하하면서 형 요제프2세가 새로운 황제가되면서 아버지가 가지고있던 토스카나 대공 작위를 물려받아 통치한다.  형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서 사실상 후계자가 되어 1790년 황제로 선출된다.   

형 요제프2세가 벌여놓은 개혁들 대부분이 실패함에따라 그 뒷정리까지 레오폴트가 맡게 되면서 나름 잘 수습했다는 평을 받는다. 

 

즉위까지

1765년 토스카나 대공이되면서부터 빈에서 피렌체로 가게되는데,  형 요제프2세가 승하하기까지 약 25년간 토스카나 대공국을 직접 통치하면서 수백년간 토스카나지역에 영향력을 끼쳤던 메디치 가문에 의해 만들어진 기반들에 대한 관리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세금 개혁등으로 민심을 얻음과 동시에 토스카나 대공국을 이성적으로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레오폴트 역시 당시에 유행처럼 번지던 계몽주의 사상에 형만큼 심취하지는 않았지만, 이성적으로 득이될 것은 행하고 실이 될 것은 시작도 하지않는 냉철한 군주의 모습으로 백성들의 생활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특히 1786년에 사형제도 철폐와 더불어 카톨릭 교회와의 충돌(교회의 재산을 환수하려고..)이 있다.

토스카나 대공국을 다스린지 25년이 되던 해인 1790년 형 요제프2세(Joseph II, 1741~1790, 로마왕재위1764~1765, 신성로마재위1765~1790)가 개혁중단을 선언하고 승하해버리는데 아들이 없었기에 레오폴트가 황제로 선출 되면서 형의 자리를뒤이어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2세가 된다.

 

혼란기

I. 살려줘 오빠

형 요제프2세의 개혁으로인해 안그래도 상황이 좋지않던 신성로마제국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라 최대한 외부와의 마찰을 줄이고 중화책으로서 제국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악수를 많이 하고 안정을 찾는데 주력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789년에 서쪽 프랑스에서 터진 대혁명으로 인해 혁명의 불씨가 전 유럽에 확장되면서 레오폴트의 선택이 제국의 앞날을 결정짓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서쪽으로는 프랑스 혁명으로인해 프랑스 루이16세(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2)에게 시집간 막내동생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가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있었고 , 동쪽으로는 러시아 예카테리나2세(Catherine II, 1729~1796, 재위1762~1796)가 지속적으로 야심을 품고 주변국들을 이용해 공격위협을 해왔던 터라..  더욱 신중해야했다.

1791년 6월 20일 루이16세 일가가 파리를 탈출해 오스트리아로 망명을 시도하는데, 탈출하다 군에의해 발각되면서 다시 파리로 압송되는 사건이 벌어진다(바렌 사건, 1791). 이로인해 루이16세는 왕권이 중지되고 유폐되기에 이른다. 

II. 프리드리히 빌헬름2세

프로이센은 1786년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II, 1712~1786, 재위1740~1786)이 승하하고 조카인 프리드리히 빌헬름2세(Friedrich Wilhelm II, 1744~1797, 재위1786~1797)가 즉위하는데 전제군주제를 지지하는 프로이센의 군주로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반대적인 입장을 표명함과 동시에 프랑스 왕 루이16세를 지지하면서 레오폴트2세와의 오스트리아-프로이센 동맹이 맺어지게 되지만, 레오폴트2세가 1792년 갑자기 승하하면서 또다른 변화를 야기한다.

III. 필니츠 선언

레오폴트2세는 동생 마리앙투아네트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레오폴트2세는 바렌사건이 있은지 2주정도 뒤 파도바(Padova)에서 각국 군주들에게 프랑스 부르봉 왕가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게되는데, 거의 모든 국가들이 이를 거절했는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2세만이 이에 응해 1791년 7월말에 프랑스의 망명 왕당파를 받아들인다는 조건하에 작센 드레스덴 필니츠 궁에서 동맹을 체결한다. 

그러나 이때 필니츠에서 열린 회담은 폴란드 분할문제에 관한 협력차에서 열린 회담이였는데, 선언문을 미래의 프랑스 샤를10세(Charles X, 1757~1836, 재위1824~1830)가 되는 아르투아 백작이 프랑스를 침공해 부르봉 왕가를 살려달라고 거의 반 민폐를 끼쳐가면서 어그로를 끌다가  무력을 사용해 조취를 취하여 부르봉 왕가를 구출하겠다는 내용으로 변질되면서 프랑스 혁명파의 분노를 사게되면서 더욱이 전쟁의 불씨가 커지게되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승하

1792년 3월이 되던 첫날에 레오폴트2세가 갑자기 승하해버림으로서 이전까지의 모든 일들이 모두 끊겨버린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여러 설들이 존재하지만 밝혀진 것은 없으니 추측자제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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