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신라의 군주

27대 선덕여왕

Mintaka5 2024. 9. 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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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deok de Silla, ?~647, 재위632~647

 

 

출생

출생년도는 미상, 아버지 진평왕(567~632, 재위579~632)과 어머니 마야부인 김씨(?~?)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김덕만. 동생으로는 천명공주(김춘추의 어머니)가 있었다.

 

배경

한국사 최초의 여왕. 아버지 진평왕(567~632, 재위579~632)이 아들 없이 승하하면서 화백회의에서 군주로 추대되었음. 600년대 중반 삼국의 혼란시기때 즉위해서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을 받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김유신(595~673)같은 명장을 적극 활용,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는 등 신라를 방비하며 불교를 기반으로한 정치이념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시도한 군주. 말년에 귀족의 반란으로 인해 더욱 혼란이 야기되지만 김춘추와 김유신이 이를 제압한 뒤 승하한다. 

 

즉위

632년 아버지 진평왕이 승하하면서 화백회의의 화백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는데, 한국사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여왕이다. 선덕여왕이 즉위하게 된 이유는 아직까지도 이유가 분분하지만 그나마 설득력 있는 스토리는  당시 진평왕의 두 동생 김백반(?~?)과 김국반(국반 갈문왕,?~?)이 632년전에 이미 사망해버렸었고 남은 계승자가 덕만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 그리하여 성골출신의 남성이 부재했던 탓에 성골이였던 덕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삼국유사 '왕력'편, 1281].

 

여왕으로서 일정

I. 그래서 불만?

여왕이라고 다를 것 없이 여느 군주들과 비슷하게 즉위 초기부터 백성들을 진휼하고 각 부에 속한 주와 군의 세금을 1년간 면제시켜주는 등 민심을 다스리는 행보로 업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고조 할아버지인 법흥왕(?~540, 재위514~540)때 설치된 상대등(신라의 총리격 인사)이 선덕여왕때는 을제(?~?, 재임기간632~636)에게 국정을 총괄케끔 한다. 

그러나 군주는 남성이 맡는다는 보통의 통념을 깨고 즉위한 여성이라 당시 신라 내에서는 말들이 많았다고 전하는데, 군주로서의 권위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II. 불교

즉위원년부터 민심의 안정을 꾀하면서 노력하지만, 원래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즉위당시 나이는 태어난 시기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지만, 조카인 김춘추(미래의 태종무열왕, 603~661, 재위654~661)가 603년생이므로 최소 600년이전에 태어났다는 것만 추측가능해진다. 이미 재위시에도 나이가 40대에 육박한 것으로 추측. 선덕여왕은 불교를 본인의 통치근간이자 왕권강화의 기본으로서 그 틀을 곤고히 했는데, 

대표적으로 사찰 창건으로, 634년 분황사, 636년 영묘사, 646년에 황룡사 9층 목탑등을 지으면서 불교를 통해 본인의 병을 치유하고자 했는데 차도가 없어 황룡사에서 백고자회(고승들을 청해 강설하는 법회)를 열면서 승려들을 모아 후원과 더불어 유학보내는 등 불교후원을 통해서도 본인의 병을 치유코자 했다[삼국사기 '선덕여왕'편, 1281]

 

백제침입

선덕여왕 재위기간동안 신라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온 고구려와 백제로 인해 상당히 골머리를 썩혔는데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최대한 전쟁을 안하려고 하는 주의라서 2~3번 침입정도로 그쳤지만, 서쪽경계에 맞닿아있던 백제가 상당히 많이 공격해왔는데 선덕여왕의 재위기간 내내 신라를 공격해왔다고봐도 무방할 정도.

  침입경로 결과
633년(백제 무왕33년, 선덕여왕1년) 서곡성(경남 거창군 일대) 13일만에 함락
636년(백제 무왕36년, 선덕여왕4년) 신라 서쪽 국경침입 김유신의 활약으로 방어 성공
642년(백제 의자왕1년, 선덕여왕10년) 대야성(현재 경남 합천) 김품석의 실책과 백제 장수 윤충에 의해 함락

642년 전략적 요충지인 대야성이 백제의 손에 넘어가면서 위기를 느낀 선덕여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김춘추 고구려 파견.. 어..? 구하러 가야겠네

642년 선덕여왕은 조카 김춘추를 파견해 백제를 칠 수 있게끔 군사를 빌려달라고 요청하는데, 당시 고구려 보장왕(?~682, 재위642~668)과 대막리지 연개소문(?~666, 대막리지재임642~666)은 진흥왕(534~576, 재위540~576)대에 뺏겼던 한강 유역을 돌려달라 요구하는데 김춘추가 이를 거절하면서 고구려 정부에서 사신으로 온 김춘추를 유폐시키기에 이른다.

이에 선덕여왕은 김유신에게 명해 김춘추를 구출해오라고 지시하게되면서 병력을 이끌고 고구려 남쪽변경에서 무력시위를 하게 되면서 시간을 끄는데, 똑똑했던 김춘추는 한강유역을 돌려주겠다고 구라(?)를 치고 고구려를 빠져나온다.  

 

상대등 비담

혼란스러운 정국에 645년(선덕여왕13년)에 상대등에 오르게 된 비담(?~647)이 염종(?~647)과 함께 여자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라는 명분의 뜻인 '여주불능선'을 내세우면서 군사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이 난은 허무하게도 당대의 명장 김유신(595~673)에 의해 너무 쉽게 토벌되고 말고, 비담은 도망치다가 647년암살당한다. 

 

승하

비담이 암살당하기 10일전에 선덕여왕은 승하한다. 선덕여왕역시 자녀가 없었기에 다음 신라왕위는 사촌동생이였던 승만(국반 갈문왕의 딸)이 진덕여왕(?~654, 재위647~654)으로 즉위해 그 명목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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