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hony van Dyck (1599~1641)
영국의 초상화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장본인..
출생
1599년 스페인령 플랑드르 안트베르펜 'Anvers' (현재 벨기에 북부)출생.
지도교수가 대가?
유럽 바로크시대 대표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조수로도 일했었던 경력이 있었고, 1620년(영국 제임스1세, 재위17년) 에 영국으로 가서 만반의 준비를 거쳐 영국에서의 활동을 하지만, 당시 국왕 제임스1세(1566~1625)의 눈에 띄는데 실패를 하고,, 이듬해(1621년) 이탈리아로 넘어가게된다.
티치아노(1488~1576)와 베로네세(1528~1588)와 같은 거장들을 학습하여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전반을 익혀나갔고,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머무는 동안(1624~1625) 당시 90세였던 소포니스바 안귀솔라를 만나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하여 초상화에대한 능력이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이 작품이후로 전신 초상화기법을 개발해서 그리게 되는 시발점이 된 듯 하다.
영국으로
이제, 그의 성공이 시작된 시기인 1632년(영국 찰스1세, 재위7년) 영국으로의 재복귀 이후인데
당시 영국 국왕 찰스1세(1600~1649)의 열폭적인 지지로 왕의 주요 최측근 화가로 지명된이후 찰스1세의 왕비이자 프랑스 앙리4세의 막내딸 앙리에트 마리(1609~1669)등 왕실주요인물들과 귀족을의 초상화를 그리게되면서, 상승기도를 달리게되는데 찰스1세와 앙리에트 마리 두명의 초상화 수만 70점이 넘으니 말다했다.

결론적으로, 영국 회화의 불모지 영국에서, 후대의 영국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자
당시 동시대에 스페인 펠리페3,4세 왕정의 초상화가이자 다이크와 동갑내기인 벨라스케스(1599~1660)와도 비교가 되며, 둘의 초상화 스타일은 살짝 차이가 나나 왕실일원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비슷한점이 많은 두명이다.
1641년 병에걸려 42세의 나이로 죽지만, 죽을때까지 220여점에 달하는 초상화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