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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숙종 2

이인좌-정희량의 난

이인좌-정희량의 난, 1728   배경1728년(영조4년), 청주출신 이인좌(1695~1728)가 반란을 일으킨다. 남인계 인사였던 이인좌는 신임옥사(1721~1722)로 노론이 몰락하고 소론과 함께 득세하지만 1724년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가 즉위하면서 노론의 지위가 회복되고 소론계 인사 김일경(1662~1724), 목호룡(1684~1724)등이 숙청되면서 같이 실각하게 된다.이인좌는 같은 소론이자 과격파인 박필현, 이유익, 심유현등은 1694년이후 힘을 못쓰던 남인들까지 규합시켜 노론과 영조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1727년(영조3년)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하기 위해 노론을 파면하고 소론을 참여시키는 정미환국이 일어남에 따라 이들의 동조자였던 노론이 퇴출되면서 세력확대..

회니시비

회니시비조선 제19대 임금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대에 있던 서인 내 사상분쟁. 간단하게 송시열과 윤증의 절교. 송시열은 충청도 회덕(현재의 대전)에 살았고, 윤증은 충청도 이산(현재의 논산)에 살았어서 회덕과 이산의 앞글자를 따서 회니시비라고 불려진다. 배경서인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1607~1689)과 송시열의 제자였던 윤증(1629~1714)은 1669년(현종10년) 아버지인 윤선거(1610~1669)가 사망하면서 스승 송시열에게 묘갈명(비문)을 부탁하게 되는데, 송시열은 윤선거가 사망하기전 윤증과 학문적문제 대립, 예송논쟁 당시 윤휴의 의견을 두둔하면서 이미 사이가 많이멀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송시열은 윤선거에 대한 비판적 내용(예를들면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비겁하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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