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랭커스터 왕조

헨리5세

Mintaka5 2025. 5. 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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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 헨리5세(Henry V, 1386~1422, 재위1413~1422)

  전임 군주 당시 재직 군주 후임 군주
직위 잉글랜드 왕,  아키텐 공작, 잉글랜드 왕 아키텐 공작, 잉글랜드 왕, 프랑스 왕
가문 랭커스터 랭커스터 랭커스터
명칭 헨리4세
Henry IV
헨리5세
Henry V
헨리6세
Henry VI
생몰년도 1367.04.15 ~ 1413.03.20 1386.09.16 ~ 1422.08.31 1421.12.06 ~ 1471.05.21
재위 랭커스터 공작
1399.02.03 ~ 1399.09.30
아키텐 공작
1399.10.15 ~ 1422.08.31
아키텐 공작
1422.08.31 ~ 1453.10.19
아키텐 공작
1399.02.03 ~ 1399.10.15
랭커스터 공작
1399.11.10 ~ 1413.03.20
프랑스 왕
1422.10.21 ~ 1453.10.19
잉글랜드 왕
1399.09.30 ~ 1413.03.20
잉글랜드 왕
1413.03.21 ~ 1422.08.31
잉글랜드 왕
I:1422.08.31~1461.03.04
II:1470.10.03~1471.04.11

잉글랜드 왕 헨리5세 초상화
헨리5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386년 9월 16일, 잉글랜드 왕국 웨일스 몬머스(Monmouth)에서 아버지 헨리4세(Henry IV, 1367~1413, 재위1399~1413)와 어머니 메리 드 보운(Mary de Bohun, 1369~1394)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잉글랜드 왕으로, 1413년부터 1422년까지 9년간 재위하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간 백년전쟁(1337~1453)에서 큰 승리를 거듭하여 잉글랜드를 단숨에 유럽 맹주로 올린 군주이다. 중세의 기사로 표현되기도 하는 인물로서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하여 광인왕으로 불리는 프랑스 왕 샤를6세(Charles VI, 1368~1422, 재위1380~1422)를 궁지에 몰아놓는다. 

 

초년

잉글랜드 몬머스셔(Monmouthshire) 몬머스 성 탑에서 태어닌 배경으로 어린시절 몬머스의 헨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태어날 당시 잉글랜드 왕은 큰삼촌 리처드2세(Richard II, 1367~1400, 재위1377~1399)였는데 헨리는 당시 왕위 계승서열에서 멀었기에 딱히 제왕교육을 받지않고 평범한 귀족으로서 자라나게 되는데, 1398년 아버지 헨리 볼링브로크가 큰삼촌 리처드2세로부터 10년간 추방을 명받고 잉글랜드를 떠나게 되면서 홀로 남게되는데 헨리는 큰삼촌 리처드2세로부터 보호를 받는 상황으로 궁에서 자라게 된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곤트의 존(John of Gont, 1340~1399)이 1399년 사망하면서 아버지 헨리 볼링브로크에게 당연히 돌아갈 작위와 유산이 리처드2세가 아버지에게 10년형을 받은 망명기간을 종신형으로 늘리고 곤트의 재산을 모두 왕실에 몰수하고 작위까지 반납시키는 행동을 취하게 되면서 분노한 헨리 볼링브로크는 프랑스 섭정이던 루이 도를레앙(Louis Ier d'Orleans, 1372~1407)의 지원을 받아 잉글랜드 내 귀족들과 연합하여 런던 왕궁으로 쳐들어간다. 이미 큰삼촌 리처드2세는 1390년대 말엽부터 폭정을 거듭해 귀족들을 압박하고 있던 터라 헨리 볼링브로크를 막아서는 귀족이 없을 정도였고, 리처드2세는 1399년 8월 19일 플린트 성(현 영국 플린트셔 주 플린트)에서 항복하고 9월 30일 귀족-평민 연합회의에서 리처드2세가 폐위되고 아버지 헨리 볼링브로크가 헨리4세(Henry IV, 1367~1413, 재위1399~1413)로 즉위하게 된다. 

 

왕세자

아버지 헨리4세가 즉위한 이후 헨리는 순식간에 왕세자가 되며 웨일스 공작(사실상 왕세자 작위), 랭커스터 공작, 콘월 공작, 아키텐 공작등 다양한 작위를 받고 이후 제왕교육을 받으면서 자라게 된다. 군사 교육도 받으면서 군 지휘 교육을 받고 지휘관이 되어 당시 웨일스 지역에서 10년넘게 반군을 이끌었던 지도자 오웨인 글린두르(Owain Glyndwr, 1354~1415)를 상대로 지휘관으로 출정하게 된다. 거의 1408년까지 오웨인 반군과 맞서 작전을 수행하던 헨리는 아버지 헨리4세가 1410년대 들어 건강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정계전반에서 수많이 등장하게 되고, 사실상 1410년대부터는 잉글랜드 정부를 이끄는 수반으로서 통치를 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즉위

1413년 3월 20일, 아버지 헨리4세(Henry IV, 1367~1413, 재위1399~1413)가 사망하면서 헨리가 왕위를 계승하여 헨리5세(Henry V, 1386~1422, 재위1413~1422)로 즉위하게 된다.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시점 즉위한만큼 국내 정책을 단순화시켜 효율을 상승시킨 다음 외부(전쟁)정책을 구축하면서 국가를 운영하게 만든다. 리처드2세때 영지를 빼앗기고 재산을 몰수당했던 귀족들의 지위와 재산등을 회복시켜 안정을 이뤄내고 프랑스와의 전투에 만전을 기하게 한다. 특히 헨리5세 치세때 처음으로 당시 잉글랜드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평민층이 영어를 사용하였는데, 헨리5세는 귀족-평민 할 것 없이 모두 영어 사용을 장려하면서 헨리5세 스스로도 모든 서신들을 영어로 작성하는 의지를 보인다.

 

아쟁쿠르 전투

1415년 8월 12일, 헨리5세는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에 상륙하여 여러 공략을 진행한 뒤 칼레로 가서 잉글랜드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는데 칼레로 가던 중 아쟁쿠르 지역에 다달했을 때 이곳에서 프랑스군과 마주하게 된다. 프랑스군과의 병력차이가 3배가까이 나는 상황에서 잉글랜드군은 좁은 협곡에서 높은 습도와 함께 진흙탕이 된 수풀이 우거진 지형을 활용하여 중무장한 프랑스 기사들이 진흙탕에 빠져 죽으면서 기동성이 떨어짐과 동시에 잉글랜드 보병 뒤에 위치했던 장궁병들과 궁병들이 화살을 퍼부으면서 프랑스군을 혼란에 빠뜨림과 동시에 백병전을 번갈아가면서 전투를 벌인 결과, 잉글랜드군이 프랑스군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이 때 프랑스는 총사령관 샤를 달브레 백작(Charles I d'Albret, 1368~1415)이 전사하고 프랑스 왕 샤를6세(Charles VI, 1368~1422, 재위1380~1422)의 조카인 샤를 도를레앙(Charles d'Orléans, 1394~1465)이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간다. 

 

지기스문트

아쟁쿠르 전투(1415) 승리 이후 당시 로마왕(신성로마황제 대관식 전 작위)이였던 지기스문트(Sigismund, 1368~1437, 로마왕재위1410~1437, 신성로마재위1433~1437)는 백년전쟁으로 불구의 원수가 된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헨리5세를 만나기위해 잉글랜드에 방문한다. 헨리5세는 지기스문트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서로간의 호의를 전달함과 동시에 두 국가간의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메시지와 함께 종전 후 다같이 십자군 원정을 떠나자고 제안하기까지 하는 노력을 보이는데, 프랑스는 이에 협조하지 않게 되면서 사실상 프랑스를 버리고 잉글랜드를 지지하게되면서 지기스문트는 잉글랜드와의 켄터베리 조약(1416.08.15)으로 하여금 전쟁기간 동안 잉글랜드가 프랑스로부터 빼앗긴 영토를 되찾게 하게끔 군사 지원을 약속하는 약조를 하고잉글랜드-신성로마제국간 무역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일종의 FTA체결) 전쟁 시 동맹국으로 서로 돕기로 한다. 

 

승하

1422년 8월 31일, 프랑스 뱅센(Vincennes)에서 36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승하해버린다. 헨리5세 이후 후임 잉글랜드 왕은 헨리6세(Henry VI, 1421~1471, 재위1422~1461, 1470~1471)가 된다. 더욱이 1420년 헨리5세가 프랑스 왕 샤를6세의 딸 카트린 드 발루아(Catherine de Valois, 1401~1437)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헨리(미래의 헨리6세)가 샤를6세 승하 뒤 왕위 요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리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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