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Mérovingienne, 메로빙거 왕조

킬데리크3세

Mintaka5 2024. 10. 1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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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éric III le Fainâeant, 714~754, 재위743~751

킬데리크3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714년에 태어남. 혈통이 불확실해서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유력한 아버지 후보로는 킬페리크2세(Chilpéric II, 672~721, 재위718~721)와 티에4세(Thierry IV, 713~737, 재위721~737)가 있다.

 

배경

메로빙거(Les Mérovingiens)왕조 최후의 군주. 사실상 모든 권력은 궁재(총리) 피핀3세()에게 있었고 허수아비 군주로 지내다가 피핀에 의해 폐위되고 메로빙거 왕조가 끝나고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된다. 국가는 바뀌지 않는다 프랑크 왕국 내 왕조만 바뀐 것. 

 

난 허수아비..

킬페리크2세와 테오데리크4세와 둘다 상관없이 다고베르1세(Dagobert Ier, 600~639, 재위629~639)의 증손자로서 메로빙거 왕조 창업군주 클로비스1세(Clovis Ier, )의 6대손(킬페리크2세) 또는 8대손(티에리4세)이 된다.

737년 테오데리크4세가 승하하고 당시 프랑크 왕국 궁재 카를 마르텔(Charles Martel, 688~741, 궁재재임717~741)이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다가 741년 카를 마르텔이 사망하고 세습은 아니지만 마르텔의 두 아들 카를로만(Carloman, 710~754, 궁재재임741~747)과 피핀(Pépin III le Bref, 714~768, 재위751~768)이 궁재직을 세습하게 됨. 

이 둘은 737년부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군주를 옹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을 부리다가 이복 형제의 반란으로 인해 더이상은 군주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어서 743년 킬데리크를 킬데리크3세로 즉위시킨다. 

 

아무것도 못하는 재위기간

743년부터 751년까지 8년간 재위하지만, 궁재 피핀과 카를로만에 의해 재산도 통제당하고 행동도 통제당하면서 군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743년부터 747년까지 두 궁재(피핀, 카를로만)이 공동으로 통치를 하지만 두 형제의 권력경쟁이 시작점부터 꼬여 747년 절정에 달하지만 카를로만이 아들 드로고(Drogon, 730~753, 궁재재임747~753)에게 물려주고 수도원에 들어가버리면서 조카를 유폐시키고 궁재 피핀의 1인 치하의 정치가 펼쳐지게 된다. 

더이상 견제세력이 없던 피핀은 다른생각을 품게 되는데.. 자기가 군주가 못 될 이유가 어딧느냐 이거.

그래서 피핀은 지지기반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당시 로마 교황 자카리아(Zacharias PP.  679~752, 재위741~752)에게 서신을 보내 교황으로부터 프랑크의 왕으로 인정한다는 답장을 받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폐위

킬데리크3세는 쿠데타가 터져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상 실권은 피핀에게 있던 터라(747년 공동 궁재였던 형 카를로만이 수도원에 들어감, 물론 강제) 허수아비 군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는데, 결국 751년 피핀에 의해 폐위당하고 피핀은 피핀3세(Pépin III le Bref, 714~768, 재위751~768)가 되면서 카롤링거 왕조(Les Carolingiens)를 열고, 킬데리크3세는 폐위 후 생베르탱 수도원에 유폐되어 754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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