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귀족 가문 사람들 모음/에스테 가문

에르콜레1세 데스테

Mintaka5 2024. 7. 2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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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cule Ier d'Este, 1431~1505, 재위1471~1505

에르콜레1세 데스테,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31년 이탈리아 중북부 페라라(Ferrara)에서 아버지 니콜로3세 데스테(Niccolò III d'Este, 1383~1441, 재위1393~1441)와 어머니 리카르디아 드 살루초(Ricciardia de Saluces, 1410~1474)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어머니 리카르디아는 니콜로3세의 세번째 부인이다. 전임 공작 보르소 데스테(Borso d'Este, 1413~1471, 재위1450~1471, 하녀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는 이복형이다. 

에르콜레는 1433년 신성로마황제 지기스문트(Sigismund de Saint-Empire, 1368~1437, 재위1411~1437)가 페라라에 머무는동안 기사작위를 받고, 동복 동생 지기스문트 데스테(Sigismund d'Este, 1433~1507)와 함께 나폴리 왕정으로 파견되며 그곳에서 왕자 페르난도(미래 나폴리의 페르난도1세, Ferdinand Ier, 1423~1494, 재위1458~1494)와 교제하면서 인본주의적, 기사도적 교육을 받게 된다. 

 

니는 나폴리 출신이가 페라라 출신이가?

에르콜레는 나폴리에 머물면서 군 훈련도 같이 받으며 군인으로서 성장하게 되는데, 마침 1452년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3세(Frédéric III, 1415~1493, 재위1440~1493)가 이복형 보르소 데스테의 공작위를 인정해주고 나서, 나폴리에 방문했을때 열린 마상창시합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무예로는 따라올 자가 없을정도로 뛰어났다고 하여 나폴리 궁정에서 주요인물이 되면서 페라라의 공작위를 물려받을 생각도 없이 이곳에서 활약하게 된다.

1460년 에르콜레는 동생 지기스문트와함께 나폴리를 떠나면서 같이 어울렸던 페르난도1세를 배신하고 페르난도의 적이였던 장2세 드 로렌(Jean II de Lorraine, 1424~1470, 재위1453~1470)과 손을 잡으며 나폴리원정에 합류하게 되는데, 1460년에는 장2세가 승리하게되지만, 이후 점점 전세가 불리해져가면서 1463년 전투가 또 실패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봉착했을때, 이복 형 공작 보르소 데스테(Borso d'Este, 1413~1471, 재위1450~1471)가 이들을 페라라로 소환하게 되면서 목숨은 겨우 건진다.

이때부터 이복형 보르소의 신하가 되면서 메디치 가문에 맞서서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몰리넬라 전투(La bataille de Molinella, 1467)에서 발에 부상을 입게 되면서 평생동안 절뚝거리는 불구가 됨. 

 

공작

1471년 보르소 데스테가 교황 바오로2세(Paulus PP. II, 1417~1471, 재위1464~1471)로부터 정식으로 공작작위를 수여받고 페라라로 돌아온 보르소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서거하는데,  에르콜레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이복형 보르소의 죽음 이후 보르소의 형 리오넬(Lionel d'Este, 1407~1450, 재위1441~1450)의 아들 니콜로(Niccolò d'Este, 1438~1476)가 만토바에 머무르는 틈을 타 페라라 공작이 됨. 이에 빡이 제대로 친 니콜로는 군사를 이끌고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 이후 1476년에도 에르콜레의 부재를 틈타 쿠데타를 일으키려하지만 또 실패하고 체포되어 참수당하게 된다.

 

우리 화해하자 으이? 사위될께

에르콜레는 공작위에 오르고 이탈리아반도의 세력 균형이 맞춰지는 것을 고려하여, 한번 배신은 했었지만 그의 어린시절 나폴리에서 함께 교제했던 나폴리의 페르난도1세(Ferdinand Ier, 1423~1494, 재위1458~1494)의 딸인 알리오노르 드 나폴리 또는 아라곤(Éléonore de Naples ou Aragon, 1450~1493)과 혼인결혼을 하며 에스테가와 나폴리가 더욱 가까워진다.

사실상 혼인동맹으로 두 국가가 힘을 합쳐 교황과 피렌체에 맞서게 되면서 나름 성과를 얻게되지만 1480년 딸 베아트리체 데스테(1475~ )를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Maria Sforza, 1452~1508, 재위1494~1499, 1500)와 결혼시키면서 동맹이 깨어지게 된다.

 

이것들이??

1482년 소금독점권으로 교황 식스토4세(Sixtus PP. IV, 1414~1484, 재위1471~1484)와 에르콜레가 다툼이 발생하면서 교황은 조카 이몰라와 포를리 공작 지롤라모 리아리오(Girolamo Riario, 1443~1488)는 영토확장과정에서 에스테가문과 동맹관계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설득시켜 에스테 가문을 공격하도록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로인해 에르콜레는 일단 자국을위해 전쟁을 하게되는데, 단독으로 전쟁을 치루기엔 무리가 있어 나폴리, 밀라노, 피렌체(피렌체는 원래 페라라와 적대관계였으나, 식스토4세와 지롤라모 리아리오가 메디치가의 로렌초 데 메디치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살해한 사건 파치음모사건으로 인해 교황과 적대관계가 됨)의 지원을 받으며 전투를 벌이지만 식스토4세를 중심으로한 군대에 계속 패배하면서 결국 에르콜레에게 굴욕적인 조약인 바뇰로 조약(Le Traité de Bagnolo, 1484)이 체결되면서 도시 로비고를 베네치아에 내주게 되면서 에스테가문 영지가 교황령으로 흡수되는 것을 겨우 막는다.

 

또 전쟁? 중립

1494년부터 프랑스 샤를8세(Charles VIII, 1470~1498, 재위1483~1498)가 나폴리를 침공하러 오는 도중에 에스테 영지를 지나칠거라 확신한 에르콜레는 이미 전쟁으로 힘든실정에 또 전쟁을 하게되면 에스테가 전체가 날라갈 거라 생각해 중립을 선언하고 조용히 있게 된다. 

 

예술후원

에르콜레의 인생말년은 사실상 황금기라고 해도 무방할정도로 화려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을 방대하게 해온터라(물론 정치적 성향이 들어갔겠지만) 이 소문이 유럽전역에 퍼지게되면서 프랑스나 플랑드르의 음악가들이 페라라로 쏟아져 들어오게되는데, 이때 한창 유행하던 전위예술이 이곳 페라라에서 시작되면서 사실상 음악 중심도시가 됨.

에르콜레1세로부터 후원을 받거나 지원을 받은 음악가로는 다음과 같다:

  이름
음악가  알렉산더르 아흐리콜라 (Alexander Ahrikola, 1446~1506)
자콥 오브레히트 (Jacob Obrecht, 1457~1505)
하인리히 이자크 (Heinrich Isaac, 1450~1517)
아드리안 빌라르트 (Adrian Villart, 1490~1562)
조스캥 데 프레 (Josquin des Prés, 1440~1521)

에르콜레의 34년간의 통치기간(1471~1505)동안 페라라는 유럽의 중심도시가 되고 이 기간에 페라라의 유명 건축물들이 지어지게 됨.

 

서거

1505년 74세의 나이로 서거후 아들 알폰소1세 데스테(Alphonse Ier d'Este, 1476~1534, 재위1505~1534)가 공작위를 물려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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