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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2

회니시비

회니시비조선 제19대 임금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대에 있던 서인 내 사상분쟁. 간단하게 송시열과 윤증의 절교. 송시열은 충청도 회덕(현재의 대전)에 살았고, 윤증은 충청도 이산(현재의 논산)에 살았어서 회덕과 이산의 앞글자를 따서 회니시비라고 불려진다. 배경서인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1607~1689)과 송시열의 제자였던 윤증(1629~1714)은 1669년(현종10년) 아버지인 윤선거(1610~1669)가 사망하면서 스승 송시열에게 묘갈명(비문)을 부탁하게 되는데, 송시열은 윤선거가 사망하기전 윤증과 학문적문제 대립, 예송논쟁 당시 윤휴의 의견을 두둔하면서 이미 사이가 많이멀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송시열은 윤선거에 대한 비판적 내용(예를들면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비겁하게 살아..

기사환국(1689)

기사환국지난 글 경신환국에이어 조선 19대 임금 숙종(1661~1720)이 일으킨 환국(급격하게 정국이 바뀜, 정치적 국면 전환)중 숙종대에 2번째로 벌어진 환국. 1689년 기사년 발생. 우리에게 장희빈(1659~1701)으로 잘 알려져있는 희빈 장씨가 정2품 소의 품계를 가지고있던 1689년에 숙종과 소의 장씨사이에서 태어난 이윤(미래의 경종)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장악한 사건.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고 경신환국(1680)때처럼 보복성으로 서인에 대한 공격을 가한다.  배경I. 이전 배경1659년(1차예송),1674년(2차예송) 두차례의 예송논란으로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면서 1674년 현종(1641~1674, 재위1659~1674)이 승하하고 즉위한 13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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