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군주/홀스타인고토로프 왕조

구스타브 3세

Mintaka5 2024. 10. 1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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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e III, 1746~1792, 재위1771~1792

구스타브3세, 알렉산드르 로슬랭* 작품, 출처-위키피디아

*Alexandre Roslin, 1718~1793, 자화상 화가

 

출생

1746년 스웨덴 왕국 스톡홀름(Stockholm)에서 아버지 아돌프-프레데리크(Adolphe-Frédéric, 1710~1771, 재위1751~1771)와 어머니 루이즈-울리케 드 프로이센(프리드리히2세의 여동생, Louise-Ulrique de Prusse, 1720~1782)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스웨덴 홀스타인고토로프 왕조 2대 군주. 쿠데타로 의원내각제에서 계몽주의에 입각한 전제군주제로 회귀시킨 장본인. 스웨덴의 중흥을 이끈 군주이지만, 가면무도회에서 전직 경호원 요한 앙카르스트룀(Johan Anckarström, 1762~1792)에게 총을 맞고 패혈증으로 승하. 

 

갑작스런 즉위

1751년 아버지 아돌프-프레데리크가 스웨덴 군주로 즉위하자마자 구스타브도 태자자리에 오르는데 저시기에 스웨덴은 의원내각제(1720~1772)로서 입헌군주제가 시행되고있었는데 입헌군주제가 끝나갈 무렵 구스타브는 1771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승하하면서 스웨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구스타브는 1772년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열고난 이후에 의원내각제에서 다시 전제군주제로 돌리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이 '1772년 혁명'으로 알려진 쿠데타이다. 기존 헌법을 바꿔서 왕실의 권력을 상승시켰고 의회를 해산함과 동시에 의원들을 포로로 잡아 가두고 사실상 전제군주제가 된다. 

전제군주가 되고난 후 진행할 계획을 보면 계몽주의에 입각한 개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내용
1772년 개혁 고문 폐지
언론의 자유
빈민 구호
종교의 자유

 기본권에 대한 계몽주의에 입각한 개혁에 국회는 거부를 하게되면서 구스타브3세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성직자, 공민, 농민계급에 접근해 특권을 부여하면서 견제케끔 한다. 

이에도 국회의 반대가 사그라들 기세가 안보이게 되면서 1788년, 이전에 러시아 제국에게 뺏겼던 카리알라(현 핀란드 동부 러시아 경계지역)지역을 수복하기위한 명분으로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2세(Catherine II, 1729~1796, 재위1762~1796)에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서 전쟁의 승리까지 거머쥐며 의회의 소리를 잠식시키는데는 성공하지만, 명분이였던 카리알라지역 수복은 실패함에도 모자라, 핀란드 출신 장교가 역모를 모의하다 적발되어 스웨덴과 핀란드가 갈라지는 명목을 제공해버리면서 초기 명분에도 못미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내 가면 폼좀 나나?

1791년, 전쟁이후 구스타브3세가 귀족의 보안법실시를 강요하게 되면서 사이가 확 틀어지게 되면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것이 악수가 되어버린다. 귀족들은 구스타브3세를 제거하기위한 음모를 기획하기에 이르는데, 그 음모가 1792년에 터지게 된다.

1792년 3월, 수도 스톡홀름 왕립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가면 무도회에 참석하게 되어있는 구스타브3세를 암살하기위한 계획이 귀족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비밀이였는데, 귀족중 한명인 한스 헨리크 폰 에센 백작이 익명의 편지들(귀족세력중 죄책감을 느껴 계획을 구스타브3세에게 토설)을 받고 가면무도회에 불참하기를 요청하지만 구스타브3세는 듣지 않는다.

그렇게 무도회에 참석해 요한 앙카르스트룀(Johan Anckarström, 1762~1792)에게 총을 맞고 왕궁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지만 13일만에 패혈증으로 승하. 

 

바로크형 군주

태자시절 프랑스에서 유학해서 그런지 프랑스 문화에 빠져들었는데, 당시 태자라는 고위신분으로서 신분을 노출해서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기 힘들어서 하가 백작이라는 가명으로 프랑스로 갔다. 당시 루이15세(Louis XV, 1710~1774, 재위1715~1774)의 궁정에서 이름을 날리는 백작으로서 명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웨덴 한림원(1786년 설립)을 설립한 군주이기도 하다. 얼마전 노벨 문학상 발표를 한 곳이 스웨덴 한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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