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군주(1707~현재), 고위귀족/작센코부르타고타 왕조

에드워드7세

Mintaka5 2024. 6. 1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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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7세(Edward VII, 1841~1910, 재위1901~1910)

  전임 군주 당시 재직 군주 후임 군주
프로필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1819~1901
재위1837~1901
에드워드7세
Edward VII
1841~1910
재위1901~1910
조지5세
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

에드워드7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841년 런던 버킹엄 궁전(Palais de Buckingham, Londres), 작센코부르타고타의 앨버트(Albert de Saxe-Cobourg-Gotha, 1819~1861)와 빅토리아 여왕(Victoria, 1819~1901, 재위1837~1901)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고대하던 아들이 태어나서 부모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으로서는 매우 기뻐했다. 그만큼 엄하게 교육시킨건 기본으로 이러한 엄한 분위기 속에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니 성년이되고나서도 결핍이 생기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꽉 막힌 영국 왕실에서는 한계가 있어서 상당히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져서(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이러한 성격을 매우 좋아하지 않았다) 이후 결혼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빅토리아여왕과 앨버트공의 금슬이 얼마나 좋았는지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 알거라고 봄. 그런데 앨버트공이 1861년 42세의 나이로 사망해버리는데, 죽기전 에드워드7세가 프로이센 황태자비인 누나 프린세스로열 빅토리아(Princess Royal, Victoria, 1840~1901)를 만나러 프로이센에 가는데 그곳에서 누나의 주선으로 왕비가되는 덴마크 공주 알렉산드라(Alexandra, 1844~1925)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저때도 여배우와 스캔들이나고 하는 걸 아버지 앨버트 공이 자신의 병중에도 에드워드를 질책하는데, 앨버트는 병이 갑자기 악화되어 사망해버린다. 이를 계기로 빅토리아 여왕은 아들 에드워드의 탓으로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해 관계가 악화되면서 왕세자인 에드워드와 멀어지게 된다. 

 

인싸

뭐 그냥 드러내기 좋아하는 성격, 큰키에 큰덩치, 패션감각, 예술, 과학, 음악, 스포츠등 그냥 그저 엄친아의 대명사격으로 다방면의 지식이 있었는데 거기다 성격까지 인싸였었다. 1863년 알렉산드라 왕비와 결혼한 후에도 수십명의 정부를 두었을 만큼 호색한이였다(앙리4세?).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3남3녀를 낳았고 에드워드는 하도 어릴때부터 부모에게 억압을 많이당해서 그런지 자녀들에게는 그렇게 엄격하지 않고 자상했다고 한다. 

 

60세의 왕태자

1901년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서거하게되면서 왕위에 오르게되는데 이때 무려 60세..  왕태자로서만 59년을 보내고 왕이되는 케이스인데, 저당시에는 저기록을 가진 전직군주가 없어서 에드워드7세가 59년 왕태자로서의 시간을 보낸 기록이 저장이 됨. 2022년 손녀 엘리자베스2세(Élisabeth II, 1926~2022, 재위1952~2022)가 서거하면서 아들 찰스3세(Charles III, 1948~ , 재위2022~ )가 7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름에 따라서 에드워드7세의 기록을 가뿐히 깨버린다. 9년의 재위기간동안 젊은시절부터 발휘했던 인싸력으로 유럽의 모든 왕족들과 교류를 한 결과 외교적인 능력으로서는 아주 탁월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1차대전의 불씨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시기라 그 인싸력으로 인한 외교능력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겠다.

 

역시 건강은 어릴때부터

술, 담배, 여자 3관왕을 차지해온 인물로서, 하루에 담배를 10갑이상 필정도로 흡연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의료기술이 많이 발전하지는 못했던 1900년대 초반상 병에 걸리면 치료가 사실상 어려워서, 건강관리가 필수였지만 절제와는 거리가 멀었던 에드워드7세로서는 불가피한 상황이였다고 보여진다. 이후 1910년 서거하였고, 서거이후 영국 왕위는 차남 조지5세(George V, 1865~1936, 재위1910~1936)에게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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