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조선의 군주

18대 현종

Mintaka5 2024. 8. 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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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onjong, 1641~1674, 재위1659~1674

 

 

출생

1641년 청나라 심양 질관에서 아버지 봉림대군(효종, 1619~1659, 재위1649~1659)과 어머니 인선왕후 장씨(1619~1674)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이연

 

배경

청나라에서 태어난 이유는, 할아버지 인조(1595~1649, 재위1623~1649)때 일어난 병자호란(1636)으로 인해 삼전도의 굴욕으로 굴욕적인 항복 후 청나라의 신하국이 되면서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아버지 봉림대군과 백부 소현세자(1612~1645)가 볼모로 청나라로 끌려가 있을때이기 때문. 조선의 역대 군주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군주이고, 왕비 외에 후궁을 두지 않은 유일한 군주.

청나라에서 태어나 아버지 봉림대군의 풍채를 빼닮아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어나면서부터 기질이 특이하고 용모가 장대하였다고 한다. 백부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있을 시 천주교 선교사 요한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1591~1666)을 만나 서구문명을 접하면서 실용주의 노선을 탐으로서 조선에 카톨릭과 서양과학을 들어여와 발전시키려던 것에 반해 청나라에 대한 원한으로 인한 반청사상을 고수하던 인조와 갈등하던 중 의문의 죽음으로 인해 아버지 봉림대군이 1645년 세자로 책봉이 된다.

 

아부지 아.. 아니 즌하

1649년 할아버지 인조로부터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책봉된지 두달만에 할아버지가 서거하면서 아버지 봉림대군이 효종(1619~1659, 재위1649~1659)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왕세자로 책봉이 된다.

 

예송논쟁

한국사에서도 핫한 부분인 예송논쟁이 바로 이때 일어난것. 예송논쟁은 간단하게 풀면 예절에 관한 논란으로서,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인조의 계비, 1624~1688)의 복상기간을 둘러싼 서인과 남인간의 논쟁이다. 아들인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때까지 이어지게 되며 장기화됨.

일단 다시돌아와서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장남이 아닌 현종이기에 기년복(1년)으로할 것인가, 이미 죽은 현종의 형을 대신해 장남의 예로서 참최복(3년)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첫 논쟁이 1659년 현종 즉위원년에 터지는데 이것이 1차 예송논쟁인 기해예송(1659)이다.

이후 1674년 어머니 인선왕후가 서거하면서 당시 인조의 계비로서 살아있던 자의대비가 며느리의 상중에 얼마동안 상복을 입을것인가를 두고 또 논쟁이 일어나는데, 서인과 남인의 기간차이로 인해 서로 주장을 하는데 현종이 남인의 주장을 택하면서 남인이 실권을 잡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이것이 2차 예송논쟁인 갑인예송(1674)이다.

 

군 정비

아버지 효종이 추진하려던 북벌론(중원, 만주, 여진쪽의 영토를 복속시키겠다는 작전)을 중단하고 내부적으로 군사를 강화하기위해 병제를 개혁해 불랑기, 정찰자포등을 만들어 배치. 이 또한 청나라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청나라측의 관리가 감시를 받게되면서 이또한 외교문제로 퍼질것을 염려해 조심스럽게 정비를 하게 된다.

 

서거

1674년 현종은 갑자기 열병이 발병하게되면서 발병10일만에 33세로 서거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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