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구/조선

내섬시[內贍寺]

Mintaka5 2026. 2. 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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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섬시[內贍寺]

 

 

 

배경

I. 역할

조선시대 육조(이조[吏曺], 호조[戶曺], 예조[禮曺], 병조[兵曺], 형조[刑曺], 공조[工曺])중 호조[戶曺]에 속한 기관으로 조선의 2품 이상의 당상관[堂上官]에게 하사하는 주류(술)와 왜인[倭人]과 야인([野人], 여진족)에게 음식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맡던 기관이다.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나고 반왜감정이 극대화됨에 따라 왜인들이 한성부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금지되고 야인들마저도 입조를 하지 않게 되면서 이후 왜인과 야인에게 음식을 공급해주는 역할은 폐지되게 된다.  궁궐 내 각 기관들과 모두 연결되어있을만큼 직접적인 생산, 공급 기관으로서 공장[工匠]이 소속되어 있었기에 생산과 직조에 관련된 장인들 또한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II. 역사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 7월, 조선 초대 임금 태조([太祖], 1335~1408, 재위1392-1398)에 의해 설치된 덕천고[德泉庫]가 1403년(태종4년), 조선 3대 임금 태종([太宗], 1367~1422, 재위1400-1418)의 관제 개혁으로 덕천고를 내섬시[內贍寺]로 개칭하고 설치되면서 내섬시가 역사속에 등장하게 된다.  1405년(태종6년), 육조 관제와 분직을 정하는 과정에서 육조 중 하나인 호조[戶曺]의 속사가 되면서 호조의 휘하 아문[衙門]으로 편입되며 1414년(태종14년), 내섬시의 직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1485년(성종16년),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명문화되면서 직제와 정원수가 규정되기까지 약간의 수치 변동이 있었다. 이후 100여년 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등으로 조선이 황폐화 됨과 동시에 재정까지 바닥을 보이게 되면서 1637년(인조15년), 병자호란이 끝나고 내자시([內資寺], 조선 왕실의 재물과 음식물, 과일, 쌀, 잔치 관장)와 병합되었다가 다시 분리되어 운영되어졌다. 1800년(정조25년), 내섬시는 의영고([義盈庫], 조선시대 기름, 꿀, 후추, 고기류등의 관리 관장)와 합병되었다가 다시 분리되지만 점차 내섬시의 역할과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점차 기관으로서의 명목이 줄어들었고 이후 1865년(고종2년), 대전회통([大典會通], 1865)에 의해 종6품 주부[注簿]가 내섬시의 장이 되는 종6품 아문으로 격하되기에 이르고 형식적인 기관으로 머물다가 1882년(고종19년), 조선 26대 임금 고종([高宗], 1852~1919, 조선재위1864-1897, 대한제국재위1897-1907)의 관제개혁으로 폐지됨으로서 사라진다. 

 

 

내섬시 관직 구성

1485년(성종16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명문화되어 규정된 직제임을 참고하길 바란다. 1865년(고종2년),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해 종6품 주부[注簿]가 장이되어 종6품 이상의 관직이였던 정[正], 부정[副正], 첨정[僉正], 판관[判官]등의 관직이 모두 폐지되면서 기존 정3품 아문이였던 내섬시가 종6품 아문으로 강등된다. 

  관직 등급 관직명 비고
정1품

   
종1품    
정2품 제조[提調] 정원 1인, 겸직
종2품
정3품 상계 정[正] 정원 1인, 내섬시 책임자
정3품 하계 



   
종3품 부정[副正] 정원 1인, 내섬시 부책임자
정4품    
종4품 첨정[僉正] 정원 1인
정5품    
종5품 판관[判官] 정원 1인
정6품    
종6품 주부[注簿] 정원 1인
1865년 대전회통[大典會通]으로
종6품 아문으로 격하될 때
수장이 됨 
정7품

   
종7품 직장[直長] 정원 1인
정8품    
종8품 봉사[奉事] 정원 1인
정9품    
종9품    
이속[吏屬] : 서원[書員] 6인 ,  군사[軍士]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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