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제조[都提調]
배경
I. 직책과 역할
조선시대 때 중앙 정부 소속 정1품 겸임 관직으로 주로 의정부 3정승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과 영사[領事]등이 임명되었다. 무반(서반)계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국가 주요 기관의 최고 자문 위원이자 관리 감독 역할을 맡은 벼슬이라고 보면 되며 실무를 직접 맡은 직책은 아니다. 아래 표에 도제조 직책이 둬 졌던 관서를 정리해 두었다.
| 부서 | 종류 | |
| 도제조[都提調] 소속 관서 |
사[司] | 비변사[備邊司], 제언사[提堰司], 주교사[舟橋司],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 전함사[典艦司], 준천사[濬川司] |
| 청[廳] | 선혜청[宣惠廳], 양향청[糧餉廳], 어영청[御營廳], 경리청[經理廳] | |
| 원[院] | 승문원[承文院], 사옹원[司饔院], 내의원[內醫院], 사역원[司譯院] | |
| 영[營] | 금위영[禁衛營] | |
| 서[署] | 종묘서[宗廟署], 사직서[社稷署] | |
| 전[殿] | 문소전[文昭殿], 영희전[永禧殿], 장생전[長生殿] | |
| 감[監] | 훈련도감[訓鍊都監], 군자감[軍資監] | |
| 시[寺] | 군기시[軍器寺], 종부시[宗簿寺], 봉상시[奉常寺] | |
| 궁[宮] | 경모궁[景募宮] |
위 표의 도제조들은 경국대전([經國大典], 1485)에 규정된 13개 관서(승문원, 봉상시, 종부시, 사옹원, 내의원, 군기시, 군자감, 사역원, 수성금화사, 전함사, 종묘서, 사직서, 문소전)를 제외하고도 도감[都監]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때 설치된 비상기구 비변사[備邊司]같은 기구까지 포함한 목록이다. 위 표와같이 각 부서에 도제조가 겸임직으로 제수되어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II. 역사
고려 중후반기인 원나라 간섭기(1270-1368)에 도입되었던 도제조[都提調]는 고려 34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였던 공양왕([恭양왕], 1345~1394, 재위1389-1392)때 정도전([鄭道전], 1342~1398)이 십학도제조[十學都提調]를 역임한 사례로 확인이 가능하고, 조선이 건국된 이후 얼마 되지 않았던 1395년(태조4년), 이색([李穡], 1328~1396)이 오고도제조[五庫都提調]에 제수되었던 기록으로도 나타난다. 조선 초기 도제조의 경우엔 소수의 도제조가 여러 관서를 감독/자문하는 성격이 짙었는데, 이후 시간이 갈수록 한 기관의 여러 제조들을 총괄하는 성격으로 바뀌게 된다. 1414년(태종15년), 도제조가 정1품 관원으로 기준되어지고 이후로 줄곧 유지하며 지켜지게 되며 1485년(성종16년),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총 13개 관서에 17명의 도제조가 규정되면서 법제화, 조선 후기까지 줄곧 이어지게 된다.
조선 10대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대에 비융사[備戎司]가 설치되면서 도제조를 두게되었지만 재위말기 연산군에 의해 혁파되면서 사라졌고 이후 1715년(숙종42년) 군영 소속 도제조가 전업을 주관하기도 하는등 기능의 변화가 있기도 하였다. 이후 1800년대에 들어도 추가적으로 기관이 설치되며 도제조역시 설치되어 운영되고 1894년(고종31년),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관제가 근대화식으로 개편됨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정원이 추가되어 설치되기도 하였다.
도제조 위치
20여개가 넘는 관서에 설치된 도제조[都提調]들은 모두 정1품이 겸하던 관직으로서 배경 차트 표에 나와있듯이 여러 기관에 배치되어 역할을 수행해 나갔는데, 주로 의정부 3정승(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영사[領事]등이 겸임하였고 보통 아래로는 제조([提調], 종1품~종2품)가 위치하며 관서를 관리/감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