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니콜라오4세

Mintaka5 2025. 5. 31. 22:20
반응형

본명 : 지롤라모 마쉬(Girolamo Masci)

191대 교황 니콜라오4세(Nicholaus PP. IV, 1227~1292, 재위1288~1292)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90대 교황 191대 교황 192대 교황
출신 교황령, 로마 교황령, 아스콜리 시칠리아, 이제르니아
명칭 호노리오4세
Honorius PP. IV
니콜라오4세
Nicholaus PP. IV
첼레스티노5세
Celestinus PP. V
생몰년도 1210.xx.xx ~ 1287.4.03 1227.09.30 ~ 1292.04.04 1215.xx.xx ~ 1296.05.19
콘클라베기간 2일
(1285.04.01~1285.04.02)
10개월 25일
(1287.04.04~1288.02.22)
2년 3개월 
(1292.04.05~1294.07.05)
재위 1285.04.02 ~ 1287.04.03 1288.02.22 ~ 1292.04.04 1294.07.05 ~ 1294.12.13

191대 교황 니콜라오4세 초상화
니콜라오4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227년 9월 30일, 교황령 아스콜리(Ascoli)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91대 교황으로, 프란치스코회 수사로서 청빈한 삶과 평화를 추구한 만큼 이단에 대해서는 상당히 강력한 반감을 가진 인물이였는데, 1273~1274년 교황 그레고리오10세가 개최한 리옹 공의회에서 뛰어난 외교력으로 동방 교회 추기경들의 참석을 이끌어내서 이후 십자군 원정을 도모하게 하고, 1287년 교황 호노리오4세가 선종하고 열린 콘클라베에서 말라리아로 인한 11개월의 콘클라베기간을 거쳐 1288년 교황으로 선출되는 인물이다.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제8차 십자군원정을 즉시 이끌어내어 유럽 카톨릭 교회를 위협하던 이슬람 맘루크 제국에 대한 십자군을 조직한 후 공격하지만, 1291년 4월 5일 사실상 명분이였던 도시 아크레(현재 이스라엘)가 함락되어버리면서 원동력을 잃고, 다시 십자군을 재조직하다가 1292년 4월 선종한다. 

 

성직

어릴적부터 프란치스코회 입회하여 수사로서 수련과정을 거쳐 사제에 서품되고, 1272년 스클라보니아 총독으로 파견되고 당해에 교황 그레고리오10세(Gregorius PP. X, 1210~1276, 재위1271~1276)에 의해 동로마 제국에 교황 대사로 파견되어 당시 동로마 황제 미하일8세 팔레올로고스(Michael VIII Palaiologos, 1224~1282, 재위1261~1282)에게 교황 그레고리오10세의 동방 교회와의 화합을 도모하는 전갈을 받들어 화친을 제안받고 1274년 5일 프랑스 왕국 리옹(Lyon)에서 개최되는 리옹 공의회에 참석할 것을 요청하였고 동방 교회 추기경들이 리옹 공의회에 참석하는 성과를 이끌어낸다. 1276년 즉위한 교황 인노첸시오5세(Innocentius PP. V, 1225~1276, 재위1276)는 이러한 동방교회의 화합을 이끌어낸 지롤라모 주교를 더욱 기용시켜 리옹 공의회를 통해 십자군 원정을 이끌어내기위한 카톨릭 군주들간의 평화 협정을 외교력으로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듭하게 된다. 그렇게 1281년 교황 마르티노4세(Martinus PP. IV, 1210~1285, 재위1281~1285)로부터 주교급 추기경으로 서임된다. 

 

1287~1288년 콘클라베

1287년 4월 3일, 교황 호노리오4세(Honorius PP. IV, 1210~1287, 재위1285~1287)가 선종하자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총16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으로 구성된 콘클라베는 1287년 4월 4일, 호노리오4세가 선종한 다음날에 바로 개최되는데, 콘클라베가 진행할 당시 로마를 휩쓴 말라리아로 인해 추기경 선거인단 16명중 6명에 달하는 추기경이 선종해버리면서 비상이 걸린 콘클라베는 1288년 2월 15일 다시 재소집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콘클라베가 중단된다. 이후 1288년 2월 15일 콘클라베가 다시 재개되고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 수는 불과 7명이였다. 이들은 지롤라모 마쉬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하지만 지롤라모 추기경이 교황 선출을 거부하여 2월 22일까지 줄곧 거부의사를 밝히다가 2월 22일 교황직을 수락하면서 니콜라오4세로 공식 즉위하게 된다. 

 

교황

말라리아로 인한 11개월간의 교황직 공석은 니콜라오4세가 선출되며 메꿔진다. 카톨릭 교회 교황선출 역사상 최초의 프란치스코회 출신 교황으로서 독실한 신앙심과 평화를 중시하고 카톨릭 교회에 이익을 가져다줄 교황으로 표현되었고 특히 독실한 신념으로 인한 이단근절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 교황이기도 하다. 이미 교황 선출이전부터 교황 대사로서 동방 교회의 동참을 이끌어내 십자군 원정을 이끌어낸 경력이 있던 만큼 이단(특히 맘루크 제국같은 이슬람 제국)들에 대한 대항을 동방 교회와 함께 이끌어내 이들을 도모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결단력과 더불어 뛰어난 외교력으로 교황령에 상당한 이득을 안겨다준 교황이라고 할 수 있다. 교황 스스로 임명하는 추기경들에게도 서임할때마다 평화를 강조함과 동시에 교회에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집단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하라 라는 권한과 함께 임무를 부여시켜 교황의 권위를 세움과 동시에 교황령의 이득을 취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프랑스 왕 필리프4세(Philippe IV, 1268~1314, 재위1285~1314)와 아라곤 왕 알폰소3세(Alfonso III, 1265~1291, 재위1285~1291)등과의 동맹을 이끌고 시칠리아 왕국을 다스리던 자코모2세(Giacomo d'Aragona, 1267~1327, 시칠리아재위1285~1295, 아라곤재위1291~1327)를 몰아내고 프랑스 샤를 당주(Charles II d'Anjou, 1254~1309, 재위1285~1309)에게 시칠리아 왕위를 넘겨주고 십자군 원정을 독려한다. 그러나 이후 십자군 원정의 재정이 부족해지면서 니콜라오4세는 군주들에게 강력하게 십자군 참여를 강제하고 병사를 뜯어내 맘루크 제국쪽으로 보내는데, 1291년 4월 5일 아크레(현재 이스라엘)는 맘루크 제국에 맞서 공방전을 벌이지만 맘루크 제국의 군사들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사실상 십자군 원정의 명분을 잃어버린 니콜라오4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십자군을 재조직하여 원정을 이끌고자 독려하지만 이미 십자군 원정에 재정을 쏟아부은 유럽 내 카톨릭 국가들은 교황의 제안을 들은체만하고 표면적으로만 호응하는것으로 사실상 8차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난다. 

 

선종

그러나 1292년 4월 4일 니콜라오4세가 65세로 선종한다. 

반응형

'로마 교황 > 101대~200대 교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티노4세  (0) 2025.06.02
호노리오4세  (0) 2025.06.01
첼레스티노5세  (0) 2025.05.31
베네딕토11세  (0) 2025.05.30
클레멘스5세  (0) 202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