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시[司導寺]
배경
I. 역할
조선시대때 궁궐 내 미([米], 쌀, 곡식등), 장([醬], 젓갈, 된장, 간장등)등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육조(이조[吏曺], 호조[戶曺], 예조[禮曺], 병조[兵曺], 형조[刑曺], 공조[工曺])중 하나인 호조[戶曺]에 소속된 정3품 아문이다. 고려시대때 비용사[備用司]를 시작으로 요물고[料物庫]등으로 개칭되었다가 조선 초기에도 요물고가 그대로 설치되었다. 미[米]류와 장[醬]류를 공급하는 일 이외에도 과거시험이 열릴 때 시관([試官], 과거시험 책임관리자)이하 관원들의 조식과 석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기도 하였다. 지방 각각에서 세금 목적으로 거둬들이는 쌀과 콩, 진상품등의 수입과 지출을 관장하는 일을 주된 업무로 삼았다.
II. 역사
고려 초, 중기무렵 설치된 왕실 미곡류를 관장하던 관서인 비용사[備用司]로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고려 후기 26대 충선왕([忠宣王], 1275~1325, 재위1298, 1308-1313)대인 1310년(충선왕 복위3년)에 요물고[料物庫]로 개칭되어 고려 말까지 운영되어지다가 1392년(조선 태조 원년), 조선 초대 임금 태조([太祖], 1335~1408, 재위1392-1398)의 관직과 직제 설정이 이루어질 때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요물고를 설치하게 된다. 1401년(태종2년), 조선 3대 임금 태종([太宗], 1367~1422, 재위1400-1418)의 관제개편으로 요물고가 공정고[供正庫]로 개칭되었다가 1422년(세종5년), 조선 4대 임금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에 의해 도관서[導官署]로 개칭, 1460년(세조6년), 7대 임금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에 의해 다시 도관서가 사선서[司膳署]에 합쳐졌다가 1467년(세조13년), 사선서를 다시 사옹원[司饔院]과 합하면서 도관서를 독립시키고 사도시[司導寺]로 개칭하였고 이는 1485년(성종16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된다. 이후 줄곧 유지되어오다가 1746년(영조23년), 조선 21대 임금 영조([英祖], 1694~1776, 재위1724-1776)가 속대전[續大典]을 반포함에 따라 정3품 하계 정[正]과 종3품 부정[副正]이 혁파되어 종4품 아문으로 격하되게 되고 이후 22대 정조([正祖], 1752~1800, 재위1776-1800)대에 대전통편[大典通編]과 26대 고종([高宗], 1852~1919, 조선재위1864-1897, 대한제국재위1897-1907)의 대전회통([大典會通], 1865년 당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섭정통치 기간으로 사실상 기반은 흥선대원군이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으로 살짝의 변화가 있었다가 1882년(고종19년), 관제 개혁으로 인해 사도시가 폐지되게 된다.
사도시 관직 직제
| 관직 등급 |
관직명 태조 원년 (1392) |
관직명 태종15년~세조12년 (1414-1466) |
관직명 경국대전 (1485) |
관직명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1746,1785,1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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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1품 | 당 상 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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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1품 | ||||||
| 정2품 | ||||||
| 종2품 | ||||||
| 정3품 상계 | ||||||
| 정3품 하계 | 당 하 관 |
참 상 관 |
사[使], 정원 1인 |
정[正], 정원 1인 |
혁파됨(1746) | |
| 종3품 | 부사[副使], 정원 2인 |
부정[副正], 정원 1인 |
혁파됨(1746) | |||
| 정4품 | ||||||
| 종4품 | 첨정[僉正], 정원 1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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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5품 | ||||||
| 종5품 | 사[使], 정원 1인 |
정3품 하계로 변경 | ||||
| 정6품 | ||||||
| 종6품 | 부사[副使], 정원 2인 |
종3품으로 변경 | 주부[主簿], 정원 1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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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7품 | 참 하 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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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7품 | 직장[直長], 정원 2인 |
직장[直長], 정원 1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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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8품 | ||||||
| 종8품 | 주부[注簿], 정원 2인 |
승[丞], 정원 2인 |
봉사[奉事], 정원 1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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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9품 | ||||||
| 종9품 | ||||||
| 이속[吏屬] : 서리[書吏] 15인(속대전[續大典]에서 서원[書員]으로 격하하고 정원 8인으로 축소 하였고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 다시 정원 5인으로 축소하였다), 옹장[瓮匠] 8인(그릇 생산 장인, 대전통편[大典通編]에서 혁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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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비[奴婢] : 차비노[差備奴] 17인, 근수노[根隨奴] 6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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