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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 47

24대 진흥왕

Chinhung de Silla, 534~576, 재위540~576  출생534년 신라 금성에서 아버지 김입종(입종 갈문왕, ?~537)과 어머니 지소왕후(지소태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김삼맥종. 동생으로는 김숙흘종이 있다.  배경6세에 큰숙부인 법흥왕(?~540, 재위514~540)이 승하하면서 재위에 오르고, 어린나이로인해 태후들의 섭정기를 거쳐 551년부터 친정을 시작한다. 법흥왕대부터 닦여온 국가로서의 기틀과 제도정비등으로 내적으로 안정을 취한 베이스로, 재위기간동안 정복군주로서 영토확장을 하며 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신라가 쥐게되는 시기의 군주이다.  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외적으로도 남북조시대의 중원에 사신을 보내 조공, 책봉을 맺는다. 즉위위 배경처럼 법흥왕이 아들이 없..

23대 법흥왕

Pophung de Silla, ?~540, 재위514~540  출생신라 서라벌 탁부에서 아버지 지증왕(437~514, 재위500~514)과 어머니 연제부인 박씨(?~?)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김원종 또는 모즉지. 배경신라 중흥기가 시작되기 전 내치를 잘 수행한 군주로서 중앙집권체제,  불교공인,  율령반포, 골품제 확립등으로 강대국으로 성장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한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후임 군주인 조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정복사업을 펼칠 수 있게 국가를 제대로 정비를 해놓은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즉위514년 아버지 지증왕(437~514, 재위500~514)이 승하하면서 바로 즉위하게 된다. 연호는 건원.  중앙집권화I. 율령반포520년(법흥왕6년) 법제체계에 관한정비를 ..

30, 37대 영의정 한명회

Han Myeong-hoe, 1415~1487, 영의정 재임1466~1467, 1469  출생1415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한기(1393~1429)와 어머니 여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계유정난(1453)을 통해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를 즉위시키는 데 앞장선 킹메이커로서, 문/무에 고루 재능이 있어 권신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가져 정1품 영의정에도 오르고, 두 딸을 예종(1450~1469, 재위1468~1469)과 성종(1457~1494, 재위1469~1494)에게 시집보냄으로서 왕실의 외척세력까지 겸비하게 되면서 일인지하만인지상에도 모자라 국구(군주의 장인)의 자리까지 오르는 어마무시한 배경을 가지게 된다.그러나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권력이 크다못해 거대..

13대 근초고왕

Geunchogo de Baekje, ?~375, 재위346~375  출생300년대 초 추청 백제 위례성에서 아버지 11대 비류왕(?~344, 재위304~344)와 기록미상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부여구. 배경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로서 내치, 외치 모두 큰 성과를 거두면서 세력을 크게 확장한 시기. 백제의 정복군주로서 가야, 마한, 고구려까지 공격해서 371년에 평양성에서 고구려 대왕 고국원왕(300?~371, 재위331~371)까지 전사시키면서 그 명성이 한반도에 널리 떨쳐지게 된다. 중원의 동진, 왜나라등과도 교류해 백제의 문화를 전파시키고 불교가 중흥하는 시기로서 많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 이때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즉위12대 계왕(?~346, 재위344~346)이 승하하면서..

69대 영의정 윤원형(소윤)

Yun Won-hyung, 1503~1565, 영의정 재임1563~1565 출생1503년(연산군9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아버지 파산부원군 윤지임(1475?~1534)과 어머니 이씨(이덕숭의 딸)사이에서 태어남. 본관은 파평. 배경정치력이 매우 뛰어난 인물로, 누나 문정왕후(1501~1565)가 정현왕후(중종의 어머니, 1462~1530)에 의해 중종의 3비로 1517년 간택되면서 책봉된다. 중종의 계비였던 장경왕후 윤씨(1491~1515)가 아들 호(인종)를 낳다가 승하하면서 간택된 셈. 모두가 반긴 왕비는 아니였지만, 원자 호를 보호하는 명분과 장경왕후 윤씨와 가까운 친척인 덕에 후궁들을 자연스럽게 견제하고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이후 인종(1515~1545, 재위1544~1545)이 1년만에 승하..

19대 광개토대왕

Kwanggaet'o de Goguryo, 374~413, 재위391~413  출생374년 고구려 국내성에서 아버지 고이련(고국양왕, ?~391, 재위384~391)과 기록미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고담덕.  배경한국 역사 통틀어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만들어 놓은 정복군주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고구려의 위상이 오르며 중원의 맹주였던 후연, 한반도 내 백제, 신라(당시 동맹), 왜나라, 거란국등을 물리치며 영토를 확장한 인물이다. 한국사에서 2명의 대왕이 있는데, 세종대왕과 광개토대왕이다.  원래는 군주와 거리가 멈원래 담덕은 군주가 되기 어려운 쪽이였던게, 아버지 고국양왕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그 인물이 17대 소수림왕(?~384, 재위371~384)이다...

필리프4세 미남왕

Philippe IV le bel, 1268~1314, 재위1285~1314출생1268년 프랑스 퐁텐블로(Fontainbleau)d에서 아버지 필리프3세(Philippe III, 1245~1285, 재위1270~1285)와 어머니 이사벨 다라곤(Isabelle d'Aragon, 1247~1271)사이에서 태어남. 배경카페왕조 말기의 프랑스 왕. 사실상 카페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왕권을 강화시켜 휘어잡은 마지막군주라고 봐도 무방. 삼부회 설치라는 카드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면서 왕권을 강력하게 만들었고,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김으로서 교황권을약화시킴과 동시에 프랑스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재정확충 과정에서 템플 기사단을 해체시켜 재산을 몰수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해결하려했고, 당시 교황 보니파시..

페르디난트1세(신성로마황제)

Ferdinand Ier du Saint-Empire, 1503~1564, 로마왕재위1531~1558, 신성로마황제재위1556~1564)출생1503년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에서 아버지 펠리페1세(Felipe Ier, 1478~1506, 부르고뉴재위1482~1506, 카스티야재위1506)와 어머니 후아나(Jeanne Ier, 1479~1555, 재위1504~1555)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남. 배경1500년대 유럽을 휩쓴 신성로마황제 카를5세(Charles Quint, 1500~1558, 1519~1556)의 친동생이다. 형 카를5세와는 다르게 신중하고 카를5세의 강한 성격으로 사이가 틀어진 귀족과 제국관료들의 가교역할을 하며 중재자 역할을 했던 중심격 ..

마티아스(신성로마황제)

Matthias, 1557~1619, 재위1612~1619출생155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아버지 막시밀리안2세(Maximilian II, 1527~1576, 재위1564~1576)와 어머니 마리 도트리슈(Marie d'Autriche, 1528~1603)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남. 배경무능했던 형 루돌프2세(Rodolphe II, 1552~1612, 재위1576~1612)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세력을 점차 확대해나가기 시작하는데, 1608년엔 헝가리, 오스트리아등의 통치권을 받고, 1611년엔 핵심 요직인 보헤미아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사실상 제국 내 모든 권력을 틀어지게 되면서 루돌프2세는 사실상 허수아비 황제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황제로 즉위하는데 이미 수십년간 종교갈등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25대 평원왕

Pyeongwon de Goguryeo, ?~590, 재위559~590  출생아버지 양원왕(?~559, 재위545~559)과 기록미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고양성. 평강공주의 아버지이자 온달(?~590)장군은 평원왕의 사위이다. 배경할아버지 안원왕(?~545, 재위531~545)부터 흔들리던 왕권이 평원왕에 와서도 흔들리는데, 귀족연립정권의 설립 이후로 왕권이 더 떨어졌고 귀족들의 권한과 영향력이 상당히 커지던시기였어서 중앙집권을 추구하던 평원왕에게 있어서는 부담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양원왕 치세때와마찬가지로 북쪽으로는 돌궐, 말갈이 남쪽으로는 백제, 신라가 시시때때로 고구려 변경을 치려고하면서 외교적으로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였던 것은 확실하다.   즉위아버지 양원왕이 5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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