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106,115,117대 영의정 김류

Mintaka5 2025. 11. 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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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대, 115대, 117대 영의정 김류(金瑬, 1571~1648)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105대106대107대
이름윤방(尹昉)김류(金瑬)이홍주(李弘胄)
가문해평 윤씨(海平 尹氏)순천 김씨(順天 金氏)전주 이씨(全州 李氏)
당파
(붕당)
서인(西人)
생몰년도1563.06.22 ~ 1640.08.xx
[명종19년~인조18년]
1571.xx.xx ~ 1648.04.27
[선조5년~인조26년]
1563.xx.xx ~ 1638.xx.xx
[명종19년~인조16년]
재임기간1631.10.10 - 1636.07.151636.08.13 - 1637.09.211637.10.20 - 1638.08.23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114대115대116대
이름홍서봉(洪瑞鳳)김류(金瑬)홍서봉(洪瑞鳳)
가문남양 홍씨(南陽 洪氏)순천 김씨(順天 金氏)남양 홍씨(南陽 洪氏)
당파
(붕당)
서인(西人)
생몰년도1572.xx.xx ~ 1645.xx.xx
[선조6년~인조23년]
1571.xx.xx ~ 1648.04.27
[선조5년~인조26년]
1572.xx.xx ~ 1645.xx.xx
[선조6년~인조23년]
재임기간1644.04.18 - 1644.05.101644.05.10 - 1645.01.041645.01.07 - 1645.02.28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116대117대118대
이름홍서봉(洪瑞鳳)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
가문남양 홍씨(南陽 洪氏)순천 김씨(順天 金氏)안동 김씨(安東 金氏)
당파
(붕당)
서인(西人)
생몰년도1572.xx.xx ~ 1645.xx.xx
[선조6년~인조23년]
1571.xx.xx ~ 1648.04.27
[선조5년~인조26년]
1588.xxx.xx ~ 1652.01.27
[선조22년~효종4년]
재임기간1645.01.07 - 1645.02.281645.02.28 - 1646.04.191646.05.12 - 1649.07.31

 

출생

1571년, 아버지 김여물(金汝岉, 1548~1592, 문신, 탄금대전투때 전사)과 어머니 함양 박씨(박수강[朴壽岡]의 딸, ?~1593)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인조반정의 반정공신으로 어릴 적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제자로 서인의 성향을 가진다. 아버지 김여물이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 전투때 전사하여 순절자의 아들로 인정되어 참봉([參奉], 종9품)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능양군을 도와 인조반정에 기여하여 능양군을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로 즉위시키는 공로로 정사1등공신에 책록되고 인조23년인 1645년에 영의정에 이른다. 
 

초년과 관직

아버지 김여물(金汝岉, 1548~1592)은 문신으로 임진왜란(1592~1598)초기 신립(1546~1592)의 부관으로 충주 탄금대전투에 출정했다가 전사해버린다. 조정에서는 김류를 부친 김여물의 전사로 인해 순절자의 아들로 칭해져 음서로 종9품 참봉에 제수되어 관직에 나아간다. 그렇게 말단관직을 이어가다 정유재란이 터지기 1년 전인 1596년(선조30년)에 문과로 급제하면서 승진이 빨라진다. 하위, 중위관직을 거의 대부분 선조([宣祖], 1552~1608, 재위1567~1608)와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1608~1623)대에 하였으며 광해군대에 들어서는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폐비론을 두고 폐비 반대론을펼쳐 당시 집권당인 북인(北人)들로부터 탄핵받게 되자 관직을 스스로 버리고 낙향한다. 
 

인조반정

광해군의 폭정이 계속되다가 1620년대에 들어 이귀([李貴], 1557~1633)를 포함한 대신들의 거사가 점차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는데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게 된다. 김류는 이귀와 이괄([李适], 1587~1624)등과 반정에 참여하여 능양군을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로 즉위시키는데 성공한다. 김류는 남인(南人)을 정계에 참여시키면서 북인 이이첨([李爾瞻], 1560~1623), 정인홍([鄭仁弘], 1536~1623), 류희분([柳希奮], 1564~1623)등을 처단한다. 젊고 오만했던 이괄이 1624년에 난을 일으키자 연루된 북인 정치인들을 대량 처형하게 되면서 민심이 더욱 악화되자 이괄 반군이 한양까지 입성하게 되고 인성군([仁城君], 1588~1628)을 추대하려고 하는 거사가 발각되어 실패로 끝나게 된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1627년(인조5년)에 후금군이 국경을 넘어 오게 되면서 김류는 인조를 모시고 급히 강화도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다행스럽게도 2개월만에 강화가 이루어져 후금군이 다시 돌아가게 되면서 정묘호란이 끝난다. 그러나 1637년 1월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청군이 한양 근처까지 다다를 때 까지 감지하지 못했던 조선 정부는 부랴부랴 인조를 강화도로 피난시킬려고 하지만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모두 차단한 청군에 의해 남한산성에서 40여일간 농성하다가 결국 인조가 굴욕적인 항복(삼전도의 굴욕)을 당하면서 겨우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게 된다. 김류는 병자호란 당시에도 인조가 항상 곁에 두면서 조언을 구했을 정도로 최측근에 두었다고 한다. 
 

영의정

1645년 2월 28일, 영의정에 오르면서 서인과 남인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74세의 고령으로 서인의 정권유지에만 관심이 있었을 만큼 다른 일에는 무능했으나,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 사망 후 봉림대군(미래의 효종)을 세자로 옹립시키는 데는 찬성했지만 세자빈 강씨(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 1611~1646)의 사사에는 끝까지 반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사망

1648년(인조26년)에 7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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