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대, 105대 영의정 윤방(尹昉, 1563~1640)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정대수 | 101대 | 102대 | 103대 |
| 이름 | 이원익(李元翼) | 윤방(尹昉) | 신흠(申欽) |
| 가문 | 전주 이씨(全州 李氏) | 해평 윤씨(海平 尹氏) | 평산 신씨(平山 申氏) |
| 당파 (붕당) | 남인(南人) | 서인(西人) | |
| 생몰년도 | 1547.12.15 ~ 1634.02.26 [명종3년~인조12년] | 1563.06.22 ~ 1640.08.xx [명종19년~인조18년] | 1566.xx.xx ~ 1628.xx.xx [명종22년~인조6년] |
| 재임기간 | 1623.04.15 - 1627.01.26 | 1627.03.05 - 1627.07.02 | 1627.10.12 - 1628.07.29 |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정대수 | 104대 | 105대 | 106대 |
| 이름 | 오윤겸(吳允謙) | 윤방(尹昉) | 김류(金瑬) |
| 가문 | 해주 오씨(海州 吳氏) | 해평 윤씨(海平 尹氏) | 순천 김씨(順天 金氏) |
| 당파 (붕당) | 서인(西人) | ||
| 생몰년도 | 1559.xx.xx ~ 1636.xx.xx [명종15년~인조14년] | 1563.06.22 ~ 1640.08.xx [명종19년~인조18년] | 1571.xx.xx ~ 1648.04.27 [선조5년~인조26년] |
| 재임기간 | 1628.12.16 - 1631.09.22 | 1631.10.10 - 1636.07.15 | 1636.08.13 - 1637.09.21 |
출생
1563년 6월 22일, 조선 한성에서 아버지 윤두수([尹斗壽], 1533~1601)와 어머니 창원 황씨(황대용[黃大用]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윤두수의 장남으로서 율곡 이이([李理], 1536~1584)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582년(선조16년) 진사시에 합격한 후 1588년(선조22년)에 열린 식년시 문과 병과(갑과1~3등, 을과4~10등, 병과11~33등)로 합격하여 급제한 다음 첫 관직인 승문원 정자로 시작하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청요직으로 등용되어 두루 관직을 역임하는 와중에도 모친의 빈소에 인사를 드리는등의 효성을 보이기도한다. 왜란이 끝난 뒤 부친상과 명나라 동지사등으로 다녀와 해평부원군에 봉해지고 당해에 도승지로 제수되어 당상관에 오르게 된다. 인조반정 이후에는 판서(정2품)로 등용된 후 우참판(정2품)을 거쳐 우의정(정1품)에 오른다. 두차례의 호란(정묘호란, 병자호란)엔 인조를 모시고 피난길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피난당시 신주를 모시고 가던 윤방이 신주관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탄핵되었다가 2개월만에 유배형에서 풀려나 이듬해 사망한다.
관직
일찍이 서인이였던 아버지 윤두수의 영향으로 율곡 이이([李理], 1536~1584)의 문하에 들어가 초년에 수학하였으며 1582년(선조16년)진사시, 1588년(선조22년) 식년시 문과 병과(병과11~33등)로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한창일 때도 청요직을 거치는등 행보를 보인다. 임진왜란이 터진 당시 선조([宣祖], 1552~1608, 재위1567~1608)를 의주까지 어가 호종을 맡기도 한다. 1597년(선조31년)에 정유재란이 발발하였을 땐 군량 운반 담당을 하기도 하고 부사([府使], 종3품)로 나가서 민심을 보살피는데 앞장서 그 공을 인정받아 1598년(선조32년)에 동부승지로 발탁되어 중앙 정계로 돌아온다. 1601년(선조35년)에 아버지 윤두수가 사망하여 3년상을 치른 다음 명나라에 파견될 동지사(冬至使)로 파견되어 명나라 황제 만력제(萬曆帝], 1563~1620, 재위1572~1620)를 만나고 전후 사정에 대한 논의와 지원등을 논의하고 온 뒤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진다. 이 이후 도승지(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를 거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정2품),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1608~1623)대에 들어서 판서([判書], 정2품 각 부서 장관직)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광해군대에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폐비론에 반대하여 불참하고 스스로 사직하였다가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가 즉위한 이후에 서인(西人)이 집권하게 되면서 예조판서로 등용된다.
인조반정 이후
인조반정 직후 예조판서를 맡고 있던 윤방은 우참찬(정2품)을 거쳐 곧바로 우의정(정1품)을 거쳐 1624년(인조2년) 좌의정(정1품)에 기용된다. 이괄의 난(1624)이 일어났을 때 민심을 수습하는 데 앞장섰고 1627년(인조5년)에 영의정에 기용되었으나 정묘호란이 발발하면서 인조를 강화도까지 호종하고 2개월만에 강화로 후금군을 수습하고 곧바로 영의정직을 사임하고 영중추부사(명예직)로 물러나지만 1631년 재차 영의정에 올라 1636년까지 그 직위를 유지한다. 그러나 1634년부터 고령(70세)으로 인해 병석에 누워있었는데 1637년초 병자호란이 발발하면서 신주를 강화도에 무사히 모시지만, 인순왕후([仁順王后], 1532~1575)의 신주를 분실하였다는 명목으로 탄핵을 당해버려 1639년 유배형에 처해지게 된다. 봉림대군(미래의 효종)등이 필사적으로 변호하였지만 양사대간의 논리에 어쩔 수 없이 인조도 유배를 보내긴 하지만 2개월만에 풀려나 고향에 머물게 한다.
사망
1640년 8월 경, 7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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