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대 영의정 조석문([曺錫文], 1413~1477)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정대수 | 33대 | 34대 | 35대 |
| 이름 | 최항(崔恒) | 조석문(曺錫文) | 이준(李俊)* |
| 가문 | 삭녕 최씨(朔寧 崔氏) | 창녕 조씨(昌寧 曺氏) | 전주 이씨(全州 李氏) |
| 당파 (붕당) |
훈구파(勳舊派) | 왕실 종친(王室宗親) | |
| 생몰년도 | 1409.xx.xx ~ 1474.05.22 [태종10년~성종5년] |
1413.09.08 ~ 1477.08.05 [태종14년~성종8년] |
1441.01.20 ~ 1479.01.28 [세종24년~성종10년] |
| 재임기간 | 1467.10.17 ~ 1468.01.07 | 1468.01.07 ~ 1468.08.04 | 1468.08.04 ~ 1469.01.03 |
*조선 4대 임금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의 손자이자 세종4남 임영대군 이구([臨瀛大君 李璆], 1420~1469)의 차남이다.
출생
1413년(태종14년) 9월 8일, 조선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에서 아버지 전라도 관찰사 조항([曺沆], ?~?)과 어머니 여흥 민씨(민설[閔渫]의 딸,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1434년(세종17년)에 알성시 문과 을과로 급제하고 관직생활을 시작했으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청요직을 거치나 노모를 봉양하기위해 사직하고도 능력을 탐냈던 조정에 의해 다시 복직하고 승진한다. 수양대군의 측근이였으며 계유정난에도 관여하였으며 이후 도승지로 승차하고 계속 세조의 총애를 받아 1468년 영의정에 이른다.
관직
1432년(세종15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년뒤인 1434년(세종17년)에 열린 알성시 문과 을과(갑과1~3등, 을과4~10등, 병과11~33등)로 급제하면서 관리가 되고 첫 보직으로 세자좌정자([世子左正字], 정9품)에 보임되면서 임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종6품), 사간원 정언([正言], 정6품)을 거쳐 청요직인 이조정랑([吏曺正郞], 정5품)을 역임한다. 그러나 이조정랑을 역임하고 있을 때 홀로 계신 노모 여흥 민씨를 봉양하기 위해서 정랑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가있게 되는데, 특출한 능력을 아까워하던 정인지([鄭麟趾], 1396~1478)가 수양대군에게 조석문을 소개해 조정에서 다시 조석문을 불러들어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로 삼는다. 이후 외직인 홍주목사(정3품 상계 당상관직)에 오르고도 능력을 인정받아 충청도 관찰사의 추천을 받아 중앙정계로 복귀하고 동부승지(정3품 상계 당상관직)에 임명된다.
수양대군
1453년 11월 10일, 수양대군(미래의 세조)을 포함한 측근(한명회, 신숙주등)들이 계유정난([癸酉靖亂], 1453.11.10)을 일으킨다. 단종([端宗], 1441~1457, 재위1452~1455)을 지키던 3정승(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을 죽이고 수양대군이 영의정에 오르면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하고 단종을 몰아세운 수양대군과 측근들은 1455년 강맹경([姜孟卿], 1410~1461)을 통해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하는 형식으로 세조가 즉위하게 되게 만든다. 조석문은 세조가 즉위한 이후 1년이 지난 1456년(세조2년)에 도승지(승지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오르고 1459년(세조5년)에 명나라 황제 천순제([天順帝], 1427~1464, 재위1435~1449, 1457~1464)가 조선이 야인 여진에 관직을 내렸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고 압박을 하게 되면서 조정에서는 조석문을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내고 조석문은 위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조선으로 돌아오고 문제를 해결한 공으로 참판([參判], 종2품)에 오르고 창녕군(昌寧君)에 봉해지고 곧바로 부서 장관직인 판서([判書], 정2품)에 오른다. 세조는 이후로도 조석문을 총애해 1466년(세조12년)에 우찬성([右찬성], 종1품)에 승진시키고 1467년(세조13년)에 영의정에 오른다.
영의정
그러나 1467년 당시 말년의 세조는 세자(미래의 예종)를 대신들로부터 보호하고 믿을만한 가까운 왕실쪽 인물을 물색하다가 자신의 조카인 귀성군 이준([李俊], 1441~1479)을 대신들의 협의없이 영의정으로 발탁해버린다. 조석문은 영의정에 오른지 7개월만에 사실상 해고(?)통지를 받고 순리에 어긋난다는 인사를 행한 세조에게 대신들의 반대상소가 빗발치지만 세조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조석문은 정계에서 물러난다. 조용하게 지내던 조석문은 1476년(성종7년)에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에 의해 재기용되어 좌의정과 호조판서를 동시에 겸직하게 된다.
사망
그러나 다시 관직을 맡은지 1년만인 1477년 8월 5일, 64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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