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104대 영의정 오윤겸

Mintaka5 2025. 11. 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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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대 영의정 오윤겸([吳允謙], 1559~1636)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 103대 104대 105대
이름 신흠(申欽) 오윤겸(吳允謙) 윤방(尹昉)
가문 평산 신씨(平山 申氏)  해주 오씨(海州 吳氏) 해평 윤씨(海平 尹氏)
당파
(붕당)
서인(西人)
생몰년도 1566.02.27 ~ 1628.07.29
[명종22년~인조6년]
1559.11.20 ~ 1636.02.25
[명종15년~인조14년]
1563.06.22 ~ 1640.09.23
[명종19년~인조19년]
재임기간 1627.10.12 ~ 1628.07.29 1628.12.16 ~ 1631.09.22 1631.10.10 ~ 1636.07.15

 

출생

1559년(명종15년) 11월 20일, 조선 경기도에서 아버지 오희문([吳希文], 1529~1613)과 어머니 이인순*(연안 이씨, [李仁順], 1540~?)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인순([李仁順], 1540~?)은 조선 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의 9남인 익양군 이회([益陽君 李懷], 1488~1552)의 차녀이므로 오윤겸은 성종의 고손자가 된다. 

 

배경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고손자로 1582년(선조16년)에 사마시에 급제하고 1589년(선조23년) 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말단관직부터 관직에 종사하였는데 3년뒤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이 터지면서 종사관등으로 복무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북인(北人)의 정치적 공세로 관운이 좋지 못하여 좀처럼 승진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1613년 계축옥사때도 스스로 외직을 자처하며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면서 더욱 멀어진다. 대부분 기간을 외직에서 머물었으나 한치의 부정부패도 일삼지 않고 백성의 부담을 덜어준 인물로 칭송이 잦았다. 이후 1623년 인조반정때 반정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나 대사헌에 기용되고 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28년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1636년 병자호란이 터지기 직전에 사망한다. 

 

관운

서인인 성혼([成渾], 1535~1598)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82년(선조16년)사마시에 합격은 한다. 부친인 오희문([吳希文], 1529~1613)의 강력한 부탁으로 과거에 응시는 하는데 크게 관심은 없었다. 어찌저찌 1589년(선조23년) 전시 문과에 병과(갑과1~3등, 을과4~10등, 병과11~33등)로 급제하여 종9품 말단관직부터 시작하는데 3년뒤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같은 서인의 영수이자 양호체찰사 정철([鄭澈], 1536~1594)의 종사관으로 복무하고 현감을 거치고 요직인 이조좌랑([吏曺佐郞], 정6품, 2인), 부교리([副校理], 종5품, 홍문관 소속)등을 거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미 사망한 스승 성혼이 모함을 받자 스승을 변호하던 오윤겸은 북인(北人)들의 배척을 받아 외직으로 떨어져나간다. 이후로도 외직을 전전하다가 1608년 선조([宣祖], 1552~1608, 재위1567~1608)가 승하하고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1608~1623)이 즉위하고 난 뒤 1610년이 되어서야 중앙 정계로 복귀하면서 승지를 역임하게 되며 당상관(정3품 상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북인의 영수인 정인홍([鄭仁弘], 1536~1623)이 이언적([李彦迪], 1491~1553)과 이황([李滉], 1502~1571)의 문묘 종사([文廟從祀], 공자의 신위를 받드는 묘우)를 반대하면서 광해군의 눈밖에 나면서 강원도 관찰사로 좌천되며 외직으로 다시 나가게 된다. 오윤겸은 관직에 나아간 이후 외직에 있는 시간이 내직에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길었는데, 외직에 머물면서 부정부패에 엄격하고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었기에 오윤겸은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잦았다고 한다. 

 

내직

그러나 북인(北人)의 이이첨([李爾瞻], 1560~1623)을 비롯한 강경한 세력들이 계축옥사([癸丑狱事], 1613)를 일으키면서 혼란이 연속되게 되자 오윤겸은 노모의 봉양을 이유로 스스로 외직을 자원해서 나가게 된다. 이후로 다시 내직으로 복귀하지만 임진왜란때 끌려갔던 포로를 송환하는 임무를 맡아 쇄환사 정사로 임명되어 에도 막부와의 수교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낸다. 1618년엔 북인 주도로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폐모론이 제기되면서 반대하며 탄핵을 받자 다시 외직으로 물러난다. 1622년이 되어서 명나라 황제 희종 천계제([明 熹宗 天啓帝], 1605~1627, 재위1620~1627)가 즉위하게되면서 사신단 정사로 선발되면서 다녀와 우참찬([右參贊], 정2품, 1인)에 오르게 된다. 

 

인조반정 이후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능양군이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로 즉위하는데 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오윤겸은 오히려 대사헌([大司憲], 종2품, 사헌부 수장, 1인)에 기용되면서 이후 판서([判書], 정2품, 각 부서 장관, 1인)에도 오르며 여러 부서장관을 맡게 된다. 성품이 유하고 당파싸움을 하지 않던 온건파 오윤겸은 인조반정으로 북인이 몰락하고 기용된 남인과 몰락한 북인에서도 인재를 등용하려고 하는등 민심을 수습하는 차원에서의 행동을 보인다. 3년이 지나 1626년(인조4년)에 우의정에 오르고 1627년 정묘호란으로 인조의 중전인 인열왕후([仁烈王后], 1594~1636)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하고 2개월만에 정묘호란이 종료되고 수도 한양으로 복귀한 뒤에 좌의정에 오르고 1628년(인조6년)에 영의정에 오른다. 

 

사망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 해인 1636년(인조14년)에 7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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