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120대 영의정 이경여

Mintaka5 2025. 11. 1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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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대 영의정 이경여(李敬與, 1585~1657)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 119대 120대 121대
이름 이경석(李景奭) 이경여(李敬與) 김육(金㻙)
가문 전주 이씨(全州 李氏) 청풍 김씨(淸風 金氏)
당파
(붕당)
서인(西人)
생몰년도 1595.12.18 ~ 1671.10.26
[선조29년~현종13년]
1585.xx.xx ~ 1657.xx.xx 
[선조19년~효종9년]
1580.08.23 ~ 1658.10.01
[선조14년~효종10년]
재임기간 1649.09.10 ~ 1650.04.11  1650.04.11 ~ 1651.02.20 1651.03.02 ~ 1652.01.17

 

출생

1585년, 조선 에서 아버지 목사 이수록(李繡綠, 1564~1620)과 어머니 은진 송씨(송제신[宋濟臣, 1543~1590]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왕족인 전주 이씨(4대 세종 7대손)로서 1601년(선조35년)에 사마시에 합격, 1609년(광해군2년)에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아간다. 그러나 161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광해군의 폭정으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한 다음에 복직한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등 호종공신으로 이름을 올렸고 줄곧 승진해 1640년대에 들어 정승의 반열에 들어갔다가 청나라와의 관계조율 오류로 인해 여러차례 압력을 받아 관직이동이 잦았다. 

 

초기와 인조반정

16세때였던 1601년(선조35년)에 사마시에 합격한 후 1609년(광해군2년)에 증광시 문과에 을과(갑과1~3등, 을과4~10등, 병과11~33등)로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아가게 되면서 1611년 검열(檢閱, 정9품)이 된다. 그러나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1608~1623)이 여러차례 옥사를 일으키면서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1614)을 죽이고 영창대군의 모후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를 유폐한 일 등으로 임진왜란 종전 25년만에 조선에 다시 위기가 닥치자 서인(西人)을 주도로한 세력이 능양군(미래의 인조)을 중심으로 하여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유배보내게 되고 능양군이 조선 16대 임금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로 즉위하게 되면서 이경여도 다시 복직하게 된다. 

 

 병자호란 전후

인조반정 직후 일어난 이괄의 난(李适之亂, 1624)때에는 이경여가 인조와 인조의 가족들을 호종하는 임무를 맡고 성공적으로 호종하고 난 뒤에는 당시 영의정이였던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종사관을 거쳐 줄곧 승진하여 1630년대에 들어 당상관(정3품 상계, 빨간색 관복)에 이르고 1635년 종2품 전라도 관찰사에 이른다. 그러나 1637년 1월, 청나라 황제 숭덕제(홍타이지, 1592~1643, 후금재위1626~1636, 청재위1636~1643)가 만리장성일대에서 명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후방에 조선이 걸렸고 후방에서 공격이 들어올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12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온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청군이 압록강을 넘은지 5일이 지나도 감지를 못하다가 청군이 한양근처에까지 다달았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가는데 이미 청군이강화도로 피난갈 수 있는 길목을 차단해버려 남한산성에 피란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경여는 이 때도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무사히 당도하게 하는데 결국 40여일만에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면서 항복을 하게 된다. 

병자호란 이후에 이경여는 참판, 대사성을 거쳐 판서(정2품)에 이른다. 1644년(인조22년), 사은사로서 청나라에 갔다가 현지에서 억류당하는데 이경여는 배청친명파로서 상당히 강경하게 청나라의 예절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1645년(인조23년) 겨우 조선으로 돌아와서도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의 세자빈이였던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 1611~1646)가 사사당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형을 받고 위리안치 된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효종([孝宗], 1619~1659, 재위1649~1659)이 즉위함에 따라 풀려나와서 관직에 복직되게 되며, 1650년 4월 영의정에 오른다. 

 

사망

1657년(효종9년)에 7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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