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123,125대 영의정 이시백

Mintaka5 2025. 11. 1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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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대, 125대 영의정 이시백(李時白, 1581~1660)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 122대 123대 124대
이름 정태화(鄭太和) 이시백(李時白) 김육(金堉)
가문 동래 정씨(東來 鄭氏) 연안 이씨(延安 李氏) 청풍 김씨(淸風 金氏)
당파
(붕당)
서인(西人)
생몰년도 1602.02.12 ~ 1673.11.16
[선조36년~현종15년]
1581.11.15 ~ 1660.06.09
[선조15년~현종2년]
1580.08.23 ~ 1658.10.01
[선조14년~효종10년]
재임기간 1652.01.17 ~ 1654.10.15 1654.10.15 ~ 1655.07.21 1655.08.15 ~ 1655.08.25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 124대 125대 126대
이름 김육(金堉) 이시백(李時白) 정태화(鄭太和)
가문 청풍 김씨(淸風 金氏) 연안 이씨(延安 李氏) 동래 정씨(東來 鄭氏)
당파
(붕당)
서인(西人)
생몰년도 1580.08.23 ~ 1658.10.01
[선조14년~효종10년]
1581.11.15 ~ 1660.06.09
[선조15년~현종2년]
1602.02.12 ~ 1673.11.16
[선조36년~현종15년]
재임기간 1655.08.15 ~ 1655.08.25 1655.08.25 ~ 1656.08.01  1656.08.01 ~ 1658.07.16

영의정 이시백 초상화
이시백,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581년 11월 15일, 조선 황해도 연안(현 북한 황해도 연안군)에서 아버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 1557~1633)와 어머니 인동 장씨(장민[張旻]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어릴 적 오성부원군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고, 성균관 유생 시절이였던 인조반정(1623)때 능양군(인조)을 도와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능양군을 즉위시킨 연평부원군 이귀(李貴, 1557~1633)의 아들이다. 유생 신분으로 인조반정 정사공신 2등에 책록된다. 이는 아버지가 인조반정 1등공신으로 연평부원군으로 봉해질때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정에출사해 여러 요직들을 거치고 병자호란(1636)때 남한산성 수어사로 인조를 호위하고 이후 판서(1638)와 우의정(1650), 좌의정(1652)을 거쳐 1654년 영의정에 오른다. 호남 지방에 대동법을 실시하게끔 건의하고 실행한 인물로 유명하다. 

 

인조반정

1623년, 42세의 나이무렵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1608~1623)의 폭정에 맞서 능양군(인조)을 중심으로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된다. 당시 이시백은 성균관 유생이였고 아버지 이귀가 인조반정의 1등공신으로 책록되면서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지면서 이시백 역시 인조반정 정사공신 2등으로 책록되며 연양군(延陽君)에 봉해진다. 이 이후 곧바로 조정에 출사하여 업무에 열중인 도중 1624년 이괄의 난(李适之亂)이 일어나게 되면서 이를 토벌하기위한 총 책임자인 협수사(協守使)에 임명되어 난을 척결하면서 진무공신(振武功臣,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리는 칭호)에 책록되기까지 한다. 

 

2차례의 호란

I. 정묘호란

1627년(인조5년), 후금 칸 홍타이지(숭덕제[崇德帝], 1592~1643, 후금재위1626~1636, 청재위1636~1643)가 군대를 이끌고 조선에 침입한다. 친명(親明)정책을 추진하던 조선을 못마땅하게 여긴 홍타이지가 폐위된 후 유배된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1608~1623)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3만의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여 의주, 정주등을 점령하고 발발 10일만에 평양성에까지 닿는다. 이에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이시백은 이 때 수원 방어사로서 인조를 무사히 강화도로 피난시키는 임무를 맡았고 성공적으로 피난시킨다. 이에 조선 각지에서 의병들이 들고일어나 후금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며 안그래도 명나라와 전쟁중이던 후금이 명나라의 후방공격을 두려워하여 강화를 제시하게 되면서 발발 2개월만에 조선과 후금은 형제관계가 된다.  

 

II. 병자호란

1637년 1월, 청나라가 조선을 재차 침공한다. 후금 칸이였던 홍타이지가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황제 숭덕제가 되었는데, 만리장성 일대를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에 있던 조선을 경계하여 배후를 안전하게 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게 된 것이다. 10만이라는 대군을 직접 이끌고 쳐들어온 숭덕제는 조용히 조선의 심장부 한양으로 남하한다.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는 청나라 군대가 국경을 넘고 5일이 지나도록 청군이 들어온지도 모르고 있다가 청군이 국경을 넘은지 5일만에 한양근처까지 접근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강화도로 피난을 가려고 하였으나 청군이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한겨울의 추위를 버티면서 최대한 주변 지원을 기다린다. 이시백은 이 때 남한산성 수의사로서 성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40여일을 버티지만 정규군과 속오군이 대패하면서 인조는 삼전도에서 숭덕제 앞에서 삼배구고두례(세번 절하면서 아홉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항복 의식)를 행하면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관직

병자호란으로 굴욕적인 항복을 한 이후 인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 정치를 행하지만 소현세자()와의 불화와 1645년 소현세자가 의문사하면서 소현세자의 동생이자 인조의 차남이던 봉림대군(미래의 효종)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할 때, 이시백은 소현세자의 장남을 왕세손으로 세울 것을 주장하였지만 봉림대군이 세자가 된 이후 인조는 세자와 이시백을 한곳에 불러 이시백에게 세자를 잘 부탁한다고 부탁하고 세자에게도 이시백을 중용하여 이후 즉위하였을 때 수족과 같이여기라고 부탁하게 된다. 그렇게 1649년 승하한 인조를 뒤로 하고 세자가 조선 17대 임금 효종(孝宗, 1619~1659, 재위1649~1659)으로 즉위하는데 효종은 이시백을 크게 중용하여 이시백은 1649년 호조판서를 거쳐 1650년 우의정, 1652년 좌의정, 1654년 영의정에 오르게 된다. 

 

사망

1660년 6월 9일, 7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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