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대 영의정 최규서(崔圭瑞, 1650~1735)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정대수 | 154대 | 155대 | 156대 |
| 이름 | 조태구(趙泰耉) | 최규서(崔圭瑞) | 이광좌(李光佐) |
| 가문 | 양주 조씨(楊州 趙氏) | 해주 최씨(海州 崔氏) | 경주 이씨(慶州 李氏) |
| 당파 (붕당) |
소론(少論) | ||
| 생몰년도 | 1660.xx.xx ~ 1723.xx.xx [현종2년~경종4년] |
1650.xx.xx ~ 1735.xx.xx [효종2년~영조12년] |
1674.xx.xx ~ 1740.06.19 [숙종원년~영조17년] |
| 재임기간 | 1722.02.04 ~ 1723.07.07 | 1723.09.16 ~ 1724.11.08 | 1724.11.18 ~ 1725.03.21 |
출생
1650년에 조선 경기도 광주목(廣州牧) 아버지 최석영(崔碩英, 1622~1689)과 어머니(미상)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20대 임금 경종(景宗, 1688~1724, 재위1720~1724)치세때의 영의정으로 소론(少論)의 당색을 가진 정치인이다. 1680년(숙종7년)에 별시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숙종(肅宗, 1661~1720, 재위1674~1720)치세 중기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1701, 장희빈)의 배경이였던 남인(南人)에 맞서 희빈 장씨의 책봉을 반대한 인물로도 알려져있다. 숙종 승하후 경종이 즉위한 이후 세제 연잉군(미래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막는 입장으로 맞섰다. 경종 사후 낙향해 영조의 소론 탄압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조용히 사망한다.
관직
1650년 경기도 광주목에서 태어나 일찍이 학문을 닦아 1669년(현종11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70년 서인 당색의 박세채(朴世采, 1631~1695)를 찾아가 수년간 가르침을 받고, 1680년(숙종7년)에 별시 문과 병과(갑과1~3등, 을과4~10등, 병과11~33등)로 급제해 관직을 얻게 된다. 정치적으론 서인(西人)당색을 가졌으며 상당한 논객으로서 숙종의 주장에도 굽히지 않는 논리로 맞서며 서인 내에서도 유명했다. 1685년 요직인 지평([持平], 정5품)에 올랐으며 청요직으로 유명한 이조좌랑([吏曺佐郞], 정6품)도 역임하는등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후 대사성([大司成], 정3품)과 대사간([大司諫], 정3품), 관찰사([觀察使], 종2품)등 내직, 외직을 모두 경험하고 참판([參判], 종2품), 부제학([副提學], 정3품), 도승지([都承旨], 정3품 상계 당상관직)등을 역임하고 부서 장관인 판서([判書], 정2품 부서 장관직)에 오른다. 이후 판서와 참찬등을 거치면서 좌의정([左議政], 정1품)에 이르고 1723년(경종4년)엔 영의정([領議政], 정1품 조선 최고위 관직)에 오른다. 1724년 9월 경종(景宗, 1688~1724, 재위1720~1724)이 승하하고 영조(英祖, 1694~1776, 재위1724~1776)가 즉위한 이후 2개월여만에 사직하고 낙향하여 독서와 저술활동에 매진한다.
이인좌의 난
최규서는 고향인 광주에 낙향한 지 3년여가 지난 1727년 말에 소론 당색인 이인좌(李麟佐, 1695~1728)를 포함한 정희량(鄭希亮, ?~1728), 박필현(朴弼顯, ?~1728)등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조기에 감지하고 정보를 수집해 이 사태가 번질 시 소론이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이를 막기위해 반대파인 노론(老論)에게 이를 고변해 소론이 이인좌의 난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리고 소론을 보호한다.
사망
1735년, 85세의 나이로 고향 광주에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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