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대 영의정 홍명하([洪命夏], 1608~1668)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정대수 | 128대 | 129대 | 130대 |
| 이름 | 정태화(鄭太和) | 홍명하(洪命夏) | 정태화(鄭太和) |
| 가문 | 동래 정씨(東來 鄭氏) | 남양 홍씨(南陽 洪氏) | 동래 정씨(東來 鄭氏) |
| 당파 (붕당) |
서인(西人) | ||
| 생몰년도 | 1602.02.12 ~ 1673.11.16 | 1607.xx.xx ~ 1668.xx.xx | 1602.02.12 ~ 1673.11.16 |
| 재임기간 | 1659.04.16 ~ 1667.06.18 | 1667.06.18 ~ 1668.02.09 | 1668.02.13 ~ 1670.12.28 |
출생
1607년(선조41년), 아버지 병조참의 홍서익(洪瑞翼, 1572~1623)과 어머니(심종민[沈宗敏]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홍춘경([洪春卿], 1497~1548)의 증손자이자 이조판서 홍성민([洪聖民], 1536~1594)의 손자이자 병조참의 홍서익([洪瑞翼], 1572~1623)의 아들로서 1630년(인조8년) 생원시 합격, 1644년(인조22년)에 열린 별시 문과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정9품)이 된다.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타협없는 공정한 태도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모습등으로 이름을 떨친 홍명하는 이후 줄곧 승진하면서 청나라 사은사로도다녀오고 1665년 영의정에 이른다.
관직
1630년(인조8년), 23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쌓고 37세때인 1644년(인조22년), 별시 문과 을과(갑과1~3등, 을과4~10등, 병과11~33등)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정9품)직에 오르면서 관직생활이 시작된다. 2년뒤인 1646년(인조24년)엔 재차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정6품), 헌납([獻納], 정5품)등을 지낸다. 1649년(인조27년)에 정6품 이조좌랑에 있던 시절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로부터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각지의 부정부패를 적발함에 있어 한치의 실수없이 임무를 수행함에 따라 명어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함에 따라 다음 임금으로 즉위한 효종([孝宗], 1619~1659, 재위1649~1659)때에도 요직에 계속 발탁되며 1652년(효종4년)에 동부승지(정3품 상계)로 발탁되면서 당상관에 제수되게 된다. 대사간([大司諫], 정3품 상계 당상관직) 재직 시절 사은부사(사은사 보조)에 임명되면서 청나라 황제 순치제([順治帝], 1638~1661, 재위1643~1661)를 알현하고 돌아와 효종 승하전까지 판서([判書], 정2품 부서 장관직)에 이르게 된다. 특히 효종이 추진한 주요 정책인 북벌정책에 찬성하여 적극 참여하여 추진하게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의정과 말년
1659년 효종이 승하함에 따라 관직이 삭직되지만 다음 임금으로 즉위한 현종([顯宗], 1641~1674, 재위1659~1674)에 의해 다시 재등용되며 여러 판서직을 거쳐 1663년(현종5년)에 우의정, 1665년(현종7년)에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게 된다. 영의정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청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관리가 현종을 책망하는 언사를 펼칠 때 영의정 홍명하는 이를 반박하는 논리를 펼쳐 사신의 입을 막아 다시돌려보내 조선의 체면을 살리게 되면서 현종이 홍명하를 더욱 아끼게 된다.
사망
1668년, 영의정으로 역임한 다음 얼마 있지않아 6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고위급 귀족 & 관리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6대 영의정 강맹경 (0) | 2025.11.18 |
|---|---|
| 104대 영의정 오윤겸 (0) | 2025.11.16 |
| 120대 영의정 이경여 (0) | 2025.11.12 |
| 123,125대 영의정 이시백 (0) | 2025.11.11 |
| 155대 영의정 최규서 (0) | 202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