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137,141대 영의정 남구만

Mintaka5 2025. 11. 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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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41대 영의정 남구만(南九萬, 1630~1711)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 136대 137대  138대
이름 김수항(金壽恒) 남구만(南九萬) 김수흥(金壽興)
가문 안동 김씨(安東 金氏) 의령 남씨(宜寧 南氏) 안동 김씨(安東 金氏)
당파
(붕당)
서인(西人)    
생몰년도 1629.09.17 ~ 1689.05.27
[인조7년~숙종16년]
1630.01.15 ~ 1711.05.04
[인조8년~숙종38년]
1626.xx.xx ~ 1690.xx.xx
재임기간 1680.05.01 ~ 1687.09.01 1687.09.01 ~ 1688.08.09  1688.08.09 ~ 1689.02.21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정대수 140대 141대 142대
이름 권대운(權大運) 남구만(南九萬) 류상운(柳尙運)
가문 안동 권씨(安東 權氏) 의령 남씨(宜寧 南氏) 문화 류씨(文化 柳氏)
당파
(붕당)
남인(南人) 소론(少論)  
생몰년도 1613.02.10 ~ 1699.12.12
[광해군6년~숙종26년]
1630.01.15 ~ 1711.05.04
[인조8년~숙종38년]
1637.01.17 ~ 1707.12.27
[인조15년~숙종34년]
재임기간 1689.03.01 ~ 1694.04.24  1694.04.24 ~ 1696.09.06  1696.09.06 ~ 1699.12.07

영의정 남구만 초상화
남구만,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30년 1월 15일, 조선 충청도 충주목(현 대한민국 충북 충주시)에서 아버지 남일성(南一星, 1611~1665)과 어머니 안동 권씨(권엽[權曗]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숙종 치세때 영의정이자 소론의 영수로서 초년에 송준길([宋浚吉], 1606~1672)문하에서 학문을 익히고 1651년(효종3년) 진사시에 합격, 1656년(효종8년)에 열린 별시 문과에 급제해서 관직으로 나아간다. 

 

 

초년과 환국

서인 당색의 성리학의 대가인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문하에서 일찍이 수학하고 1651년(효종3년)에 진사시, 1656년(효종8년)에 별시 문과 을과 급제로 관직으로 나아가 첫 관직으로 정언(正言, 정6품)직을 맡게 된다. 이후 요직을 거치다가 1664년 명성왕후 김씨(숙종의 모후)의 백부인 김좌명(金佐明, 1616~1671)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고 수년간 외직을 돌다가 1667년(현종8년)에 당상관(정3품 상계, 빨간색 관복)에 오르고 관찰사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680년 숙종([肅宗], 1661~1720, 재위1674~1720)이 경신환국(庚申換局, 1680)을 일으키면서 집권당인 남인(南人)이 실각하게 되면서 서인이였던 남구만은 더욱 승승장구 하게되어 대제학, 대사간등 고위직으로 올라가게 된다. 1680년대 들어서 1683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될 때 소론에 속하게되면서 소론의영수가 되고 1684년 우의정(右議政, 정1품)에 오르고 좌의정(左議政, 정1품)을 거쳐 1687년 영의정(領議政, 정1품, 최고위 관직)에 오르게 된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 1689)이 일어나면서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집권하게 되면서 서인 당색인 남구만 역시 유배형에 처해지게 되면서 수년간의 유배생활을 거친다. 5년뒤인 1694년 숙종이 갑술환국(甲戌換局, 1694)을 일으키면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다시 집권하게 되면서 남구만은 다시 재차 영의정에 임명되게 된다. 

 

무고의 옥

그러나 1701년, 숙종의 후궁이였던 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1718, 영조의 생모)가 희빈 장씨가 거처인 취선당에서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를 저주했다는 것을 고변함으로서 조정이 발칵 뒤집혀진다. 그리고 당시 남인들이 서인을 완전히 몰락시키기 위해 희빈 장씨의 부친 장형([張烱], 1623~1669)의 묘를 파헤치고 비석을 훼손하는등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희빈 장씨가 사사형을 받게 된다. 남구만은 당시 희빈 장씨의 사사에 조금 가벼운 처분을 받길 주장하였으나 결국 노론의 주장대로 중형인 사사형에 처해지게 되자 남구만은 유배형에 처해지게 되고 이 이후 고향에서 은거하게 된다. 

 

사망

1711년 5월 4일,  고향땅에서 81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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