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명나라

명 무종 정덕제

Mintaka5 2025. 9. 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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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10대 황제 무종 정덕제 주후조(武宗 正德帝 朱厚照, 1491~1521, 재위1505~1521)

  전임 황제  당시 재직 황제 후임 황제
직위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9대 황제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10대 황제  흥왕(興王), 명나라 11대 황제
가문
(황조)
명(明)
명칭 홍치제(弘治帝) 정덕제(正德帝) 가정제(嘉靖帝)
묘호 효종(孝宗) 무종(武宗) 세종(世宗)

(이름)
주우탱(朱祐樘) 주후조(朱厚照) 주후총(朱厚憁)
출신 명나라, 북경(北京) 명나라, 안륙주(安陸州)
생몰년도 1470.07.30 ~ 1505.06.08 1491.10.26 ~ 1521.04.20 1507.09.16 ~ 1567.01.23
재위 명나라 황태자
1475.12.05 ~ 1487.09.22
명나라 황태자
1491.10.26 ~ 1505.06.19
흥왕(興王)
1521.04.15 ~ 1521.05.27
명나라 9대 황제
1487.09.22 ~ 1505.06.08 
명나라 10대 황제
1505.06.19 ~ 1521.04.20
명나라 11대 황제
1521.05.27 ~ 1567.01.23

명나라 10대 황제 무종 정덕제
명 무종 정덕제,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91년 10월 26일, 명나라 북경(北京)에서 아버지 명나라 9대 황제 효종 홍치제 주우탱(孝宗 弘治帝 朱祐樘, 1470~1505, 재위1487~1505)과 어머니 효성경황후 장씨(孝成敬皇后 張氏, 1471~1541)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명나라 10대 황제로 명나라의 중흥을 이끈 부황 홍치제와는 다르게 암군()으로 평가되는 황제이며, 재위기간 거의 다 자신의 별궁인 표방(杓房)에 머무르면서 국정은 환관들이 주도해 운영하게 되면서 부정부패가 기승을 하고 황제 자신은 사치와 향락에만 관심을 두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몽골족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백성들에게 주기적으로 구휼을 하는등 아예 국정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였다. 1521년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혼수상태에 빠진 뒤 그해 사망한다.   

 

초년

'홍치중흥(弘治中興)'으로 명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부황 홍치제(弘治帝)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총명함으로 소문났을 정도로 학문에도 뛰어나고 무술에도 일가견이 있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다. 이렇게 문, 무에 모두 능통한 황태자를 바라보는 홍치제는 명나라 초기 조상황제들처럼 성군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으나, 황태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학문과 거리를 두고 점차 향락에만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를 하게 된다. 특히 홍치제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였고 이러한 이유로 폐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1505년 6월 8일 부황 홍치제가 35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해버린다. 

 

즉위

부황 홍치제가 사망한 1505년 6월 8일 당시 황태자 주후조(정덕제)의 나이는 불과 15세였는데, 즉위한 이후 정덕제는 향락에 빠지고 하고싶은 것만 하는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는데 이것이 주변 환관들도 황제의 방탕함을 꿰뚫어보고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덕제만을 위한 별궁을 짓게 하기 위해 황제를 꼬드겨 큰 돈을 들여 짓게끔 한다. 그렇게 1508년 완공된 정덕제의 별궁을 '표방(豹房)'이라고 했는데 정덕제는 표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데에만 집중하고 국정운영은 방치해둔다. 이렇게 방치된 국정 운영은 환관들이 모두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면서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제아무리 신하들이라도 환관들을 막을 수없는 지경에 이르다 못해 하급 관리들과 좌천된 관리들도 돈만 주면 승진할 수 있게끔 하는 부패가 판을 치게 될 정도로 명나라가 썩어들어간다. 특히 환관 중 유근()이라는 환관을 가까이하고 국교와 다른 종교를 황제가 직접 광신하는등 부조화가 이어지고 국정 공백과 부패로 인한 피해는 백성들이 지게 됨에따라 반란이 점점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를 한참 넘은 환관 유근을 직접 처단하고 몽골족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함과 동시에 백성들에게도 구휼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민심을 돌보고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때인만큼 포르투갈의 상선들도 받아들이면서 유럽과도 무역이 시작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말년과 사망

그러나 1521년, 청강포(淸江浦, 황하와 회수가 만나는 지점)에서 물놀이를 하던 정덕제는 물놀이를 하던 도중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혼수상태에 빠지는데, 자신의 별궁인 표방(杓房)에서 30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정덕제는 홍희제의 외동아들이였고 또한 자식도 없었고 형제도 없었기에 다음 황제위는 사촌동생인 주후총(朱厚憁, 미래의 가정제)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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