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명나라

명 광종 태창제

Mintaka5 2025. 9. 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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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14대 황제 광종 태창제 주상락(光宗 泰昌帝 朱常洛, 1582~1620, 재위1620)

  전임 황제 당시 재직 황제 후임 황제
직위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13대 황제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14대 황제 명나라 15대 황제
가문(황조) 명(明)
명칭 만력제(萬歷帝) 태창제(泰昌帝) 천계제(天啓帝)
묘호 신종(神宗) 광종(光宗) 희종(熹宗)
휘(이름) 주익균(朱翊鈞) 주상락(朱常洛) 주유교(朱由校)
출신 명나라, 북경(北京)
생몰년도 1563.09.04 ~ 1620.08.18 1582.08.11 ~ 1620.09.26 1605.12.23 ~ 1627.09.30
재위 명나라 황태자
1568.04.08 ~ 1572.07.19
명나라 황태자
1601.11.09 ~ 1620.08.28 
명나라 15대 황제
1620.10.01 ~ 1627.09.30
명나라 13대 황제
1572.07.19 ~ 1620.08.18
명나라 14대 황제
1620.08.28 ~ 1620.09.26

명나라 14대 황제 광종 태창제 주상락
명 광종 태창제,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582년 8월 11일, 명나라 북경(北京) 자금성에서 아버지 명나라 13대 황제 신종 만력제 주익균(神宗 萬歷帝 朱翊鈞, 1563~1620, 재위1572~1620)과 어머니 효정황후 왕씨(孝靖皇后 王氏, 1565~1611)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명나라 14대 황제로, 모략으로 황태자 지위를 어렵게얻고 만력제 사후 황제로 즉위하나, 정귀비 측근의 환관으로부터 처방받은 설사약과 홍환으로 인해 즉위한지 겨우 29일만에 사망해버리면서 명나라(남명포함)황제 중 역대 최단 재위기간을 가진 황제가 된다. 즉위 초반 여러 개혁들을 실행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고 국경 수비에 열을 올리는등 활발하게 활동하고자 하였으나 즉위 1개월도 채 되지 않아 사망해버리면서 모두 무위로 돌아가버리고 다음 황제가 되는 천계제때는 더욱 명나라의 국운이 기울게 된다.        

 

초년

만력제의 장남으로 황태자는 응당 주상락에게 가는 것이 유교 국가에서 옳은 이치였으나 상락은 모친의 신분이 미천하였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였다. 만력제는 상락의 이복동생이자 만력제의 3남인 복왕 주상순(朱常洵, 1586~1641)을 총애해 장남보다 먼저 황태자로 책봉하고 싶어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자 명나라 조정 내 신하들이 두개의 파로 나뉘어서 정쟁을 이어나가는데 장남 주상락을 지지하는 비동림당과 복왕 주상순을 지지하는 동림당 이렇게 두개의 파로 나뉘며 이러한 당쟁을 동림당쟁(東林黨爭)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1601년 황태자로 책봉되고도 당쟁은 계속되었으나 1615년 5월, 황태자궁인 자경궁에 침입한 장차(張差)라는 인물이 수문감을 폭행한 사건인 '정격안(梃擊案)'이 벌어지면서 복왕 주상순의 어머니인 정귀비(鄭貴妃, 1565~1630)가 정격안 혐의를 받고 이후 만력제까지 공개석상에서 주상순의 황태자 거론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복왕 주상순의 황태자 거론문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즉위와 사망

1620년 8월 18일, 부황 만력제가 57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면서 황태자 주상락이 명나라 14대 황제 태창제(泰昌帝)로 즉위하게된다. 태창제는 즉위한 이후 자신을 견제하던 정귀비를 황후로 책봉하는데 신하들이 자신을 해하려고 했던 세력의 우두머리를 황후로 책봉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신하들이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태창제는 황후 책봉을 철회하고 이러한 신하들의 반응을 본 정귀비는 이후 조용히 지내게 된다. 태창제는 이후 후술할 짧은 재위기간(단 29일)동안 수많은 정책을 시행하는데,  특히 만력제 때부터 백성들의 원성을 샀던 광산세를 폐지하는 칙령을 반포하고 세금을 완화하고 국경 방어를 위해 투자를 하는등 나름의 개혁을 시작함과 동시에 신호를 터뜨려 진행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1620년 황제로 즉위하기 전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던 태창제는 이전 황제들처럼 여색을 밝히기로 유명했는데 정귀비는 태창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녀들을 황제에게 직접 바치고 태창제는 이에 밤마다 미녀들과 즐겼으나 에너지를 견디기 힘들었던 태창제가 결국 몸져눕게 되면서 궁중 어의가 아닌 환관인 사례병필태감 최문승(崔文昇)이 설사약을 처방하여 황제께 올리는데, 복통이 더욱 심해진 태창제는 더욱 병세가 악화되어져가다가 홍환을 복용하고 완화가 되어 홍환 한알을 더 복용하였다가 갑작스럽게 급사한다. 즉위한 지 겨우 29일만에 일로 명나라(남명 포함)황제중 역대 최단 재위기간을 보유하게된 황제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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