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명나라

명 신종 만력제

Mintaka5 2025. 9. 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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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13대 황제 신종 만력제 주익균(神宗 萬歷帝 朱翊鈞, 1563~1620, 재위1572~1620)

  전임 황제 당시 재직 황제 후임 황제
직위 유왕(裕王), 명나라 12대 황제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13대 황제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14대 황제 
가문
(황조)
명(明)
명칭 융경제(隆慶帝) 만력제(萬曆帝) 태창제(泰昌帝)
묘호 목종(穆宗) 신종(神宗) 광종(光宗)

(이름)
주재기(朱載坖) 주익균(朱翊鈞) 주상락(朱常洛)
출신 명나라, 북경(北京)
생몰
년도
1537.03.04 ~ 1572.07.05  1563.09.04 ~ 1620.08.18 1582.08.11 ~ 1620.09.26
재위 유왕(裕王)
1539.02.19 ~ 1567.02.04
명나라 황태자
1568.04.08 ~ 1572.07.19 
명나라 황태자
1601.11.09 ~ 1620.08.28
명나라 12대 황제
1567.02.04 ~ 1572.07.05 
명나라 13대 황제
1572.07.19 ~ 1620.08.18
명나라 14대 황제
1620.08.28 ~ 1620.09.26

명나라 13대 황제 신종 만력제 주익균
명 신종 만력제,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563년 9월 4일, 명나라 북경(北京) 자금성에서 아버지 명나라 12대 황제 목종 융경제 주재후(穆宗 隆慶帝 朱垕, 1537~1572, 재위1567~1572)와 어머니 효정황후 이씨(孝定皇后 李氏, 1546~1614)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명나라 13대 황제로, 48년 치세 중 80%정도인 38년의 시간동안 정사는 내팽겨치고 자신의 개인 재물 착복에만 관심가지고 하고싶은 걸 하고 산 황제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있다.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1592년 신하국 조선이 왜국에 의해공격받고 국가가 멸망할 위기에 놓이자 적극적으로 도운 황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상당히 알려진 중원의 황제이다.    

 

초년과 즉위

목종 융경제의 3남으로 황위계승과 거리가 어느정도 있었지만, 목종의 장남 황태자 주익익(朱翊釴, 1555~1559)과 차남 정왕 주익령(朱翊鈴, 1556~1558)이 모두 요절하는 바람에 3남 주익균(만력제)이 황태자가 될 수 있었다. 주익균의 부황 목종 융경제는 1572년 7월 5일 즉위한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사망해버리면서 다음 황위는 황태자 주익균이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로 즉위하면서 명목이 이어지게 된다. 황태자 시절 교육은 재상이였던 장거정(張居正, 1525~1582)이 담당했었는데 철통같이 엄격하게 교육했던 장거정의 교육방식과 일처리방식을 잘 알고있던 만력제는 즉위 이후 어린나이로 인한 통치력 미숙으로 인해 즉위 초기에는 장거정에게 모든 일을 맡기기도 하였다. 10년간 장거정이 국정을 주도하고 이끌어나가고 1582년 7월 9일 장거정이 사망함에 따라 만력제가 통치를 이어가는데 신하들의 주장으로 재상 장거정이 축적한 재산이 만력제 자신보다도 많다는 소문으로 만력제는 장거정의 재산을 모두 국고로 몰수하게 된다. 

 

정사에 손을 놓은 황제

이렇게 장거정이 사망하고 재산을 몰수한 이후부터 만력제는 정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만력제 즉위 이전부터 재상을 중심으로 한 내각으로 국정이 이루어지던 명나라가 만력제 즉위 초기 장거정은 여러 개혁을 통해 명나라의 내치를 크게 발전, 안정화시키고 할아버지 가정제부터 쇠퇴하던 명나라를 중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였는데, 어릴적 자신을 학대에 가깝게 교육한 장거정이 신하들의 눈에는 자칫 황제를 업신여기는 태도로 비춰질 수도 있을만한 충분한 상황이 되었기에 신하들의 견제대상이였고, 상대적으로 귀가 얇던 만력제에게 부정축재등을 일삼은 장거정 일파들을 가만두지 않게끔 귀뜀하는식으로 이야기하였다. 만력제는 1582년부터 사망하는 1620년까지 무려 38년이라는 기간동안 정사에 관심을 귀기울이지 않고 개인 재산 착복과 하고싶은 일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조정 내 분위기역시 매관매직, 부패등으로 얼룩져가면서 자신의 말만 잘 듣는 신하를 기용시켜 더욱이 명나라의 국운이 기울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조선

만력20년인 1592년 5월, 신하국이였던 조선에서 변란이 일어난다.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의 왜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豊臣秀吉],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부산진쪽으로 수십만 대군을 보내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발발 후 1개월여도 채 되지 않아 수도인 한양(현재의 서울)까지 위협받게 되면서 조선 14대 국왕 선조 이연(宣祖 李 , 1552~1608, 재위1567~1608)이 의주로 파천가는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만력제는 모든이의 예상을 깨고 조선을 돕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게 된다. 조선에 명나라 군대를 파견시키고 재물을 보내 충당케끔 한다. 더욱이 조선에서 보내준 군비까지 부족하다고 하면 자신의 내탕금까지 지원해줄 정도로 적극적이였던 만력제였기에 더욱이 신하들은 아리송할 수 밖에없었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만력제가 조선이 왜국의 수중에 떨어지면 그다음 공격대상은 자연스럽게 명나라가 될 수 밖에 없었기에 이후 전후사정 변동에 의한 국익차이를 모두 계산하여도 조선을 도와야했고 더욱이 신하국이였던 조선을 도와야한다는 명분까지 겹쳐 파병을 한 것이라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지만 평소에 정사에 손 놓던 황제가 이 문제만큼은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것이 아직 의문이긴 하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에는 이전과 같이 다시 정사에 손을 놓고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명나라의 국운은 점점 더 기울어 가고 민심은 더욱 요동치게 된다. 

 

승하

만력제는 1620년 8월 18일, 북경 자금성에서 48년의 재위 끝에 5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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