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명나라

명 선종 주첨기

Mintaka5 2025. 9.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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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5대 황제 선종 선덕제 주첨기(宣宗 宣德帝 朱瞻基, 1399~1435, 재위1425~1435)

  전임 황제 당시 재직 황제 후임 황제
직위 연왕세자,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4대황제  명나라 황태손,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5대 황제 명나라 황태자, 명나라 6대 황제, 명나라 태상황제, 명나라 6대 황제(복위)
가문
(황조)
명(明)
명칭
(묘호)
인종(仁宗) 선종(宣宗) 영종(英宗)

(이름)
주고치(朱高熾) 주첨기(朱瞻基) 주기진(朱祁鎭)
출신 명나라, 봉양부(鳳陽府) 명나라, 북경(北京)
생몰
년도
1378.08.16 ~ 1425.05.29 1399.02.25 ~ 1435.01.31 1427.11.29 ~ 1464.02.23
재위 연왕세자
1395.11.04 ~ 1404.05.12
명나라 황태손
1411.11.25 ~ 1424.11.01
명나라 황태자
1428.02.20 ~ 1435.02.07
명나라 황태자
1404.05.12 ~ 1424.09.07 
명나라 황태자
1424.11.01 ~ 1425.06.27
명나라 6대황제(정통제) 
1435.02.07 ~ 1449.09.22
명나라 4대 황제
1424.09.07 ~ 1425.05.29
명나라 5대 황제
1425.06.27 ~ 1435.01.31
명나라 태상황제
1449.09.22 ~ 1457.02.11
명나라 6대황제(복위, 천순제)
1457.02.11 ~ 1464.02.23

명나라 5대 황제 선종 선덕제 주첨기
명 선종 선덕제,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399년 2월 25일, 명나라 북경(北京)에서 아버지 명나라 4대 황제 인종 홍희제 주고치(仁宗 洪熙帝 朱高熾, 1378~1425, 재위1424~1425)와 어머니 성효소황후 장씨(誠孝昭皇后 張氏, 1379~1442)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명나라 5대 황제로 4대 황제 인종 홍희제 주고치의 장남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할아버지 명나라 3대 황제 성조 영락제 주체로부터 총애를 받아 부황이였던 인종보다도 더 앞서 황위계승을 언급받을 정도였다. 부황이 1425년 사망한 후 황위를 물려받지만 이듬해 숙부인 한왕 주고후가 난을 일으키자 황제 스스로 직접 반란군을 토벌하고 일벌백계한다. 부황보다도 더 강력한 정치력으로 백성들을 구휼하고 통치를 안정화하는데 노력하여 부황과 더불어 재위기간동안 인선의치라는 전성기를 이룩한 황제로 남아 있다.     

 

초년

어릴적부터 무인의 강인함을 가졌던 할아버지 영락제 주체(永樂帝 朱棣, 1360~1424, 재위1402~1424)의 총애를 받을 만큼 영리하고 총명하였다. 황태자였던 아버지 주고치(미래의 명 인종 홍희제)가 비만으로 인한 건강문제가 자꾸 대두되어 영락제가 황태자 자리를 두고 고민할 때 우선순위로 거론되던 인물이 바로 주첨기(미래의 명 선종 선덕제)였다. 주첨기는 이러한 배경 덕분에 어릴적부터 제왕학에 대한 강의를 받고 군주로서의 덕목을 일찍 쌓게 된다. 

 

즉위

1425년 5월 29일, 부황 인종 홍희제가 건강악화로 4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부황 사망 직전 당시 명나라 초기 수도였던 남경(南京)에 머물러있던 황태자 주첨기는 황급히 수도 북경(北京)으로 가게 되는데, 도착했을 땐 부황이 이미 붕어한 상태였다. 이후 주첨기는 선덕제(宣德帝)로서 명나라 5대 황제로 즉위하게 되는데 즉위한지 1년이 겨우 지난 1426년 8월, 자신의 숙부이자 부황의 동생인 한왕 주고후(漢王 朱高喣, 1380~1426)가 자신의 휘하 장수들을 모아 선덕제를 없애고 황제가 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할아버지 영락제가 일으켰었던 정난의 변 당시 황제 건문제의 행동을 통해 황위가 찬탈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선덕제는 황제 자신 스스로 직접 반란을 진압시키고 숙부 한왕 주고후와 반란을 함께한 일당들을 모두 잡아들이게 된다. 유교 국가에서 선덕제는 유폐시킨 숙부 한왕 주고후를 어떻게든 설득하여 죄를 고백하여 살리려고 하지만 도리어 한왕 주고후는 황제의 호의를 무시하고 무례한 행태를 보이게 되면서 선덕제를 더욱 자극시켜 결국 선덕제는 숙부를 죽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즉위한지 1년이 겨우 지난시점에 이런 큰 반란이 터지게 되면서 선덕제는 유화정책을 폐지하고 과감하게 통치하게 되는데 특히 황족에서 이러한 반란이 터진 것에 대해 상당한 경계를 보이게 되면서 황족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권한을 대폭 축소시켜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지 않게끔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환관을 교육시키는 정책을 펴(내서당[ ] 설치) 환관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결과를 낳게 됨에 따라 점차 환관들이 명나라 조정의 요직과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면서 후기로 갈수록 정치가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행태를 낳게 된다. 그럼에도 선덕제 시기 때도 황제 스스로 부지런하게 백성들을 보살피고 부패한 관리들을 직접 일벌백계하고 중앙, 지방관료체제를 정비하는 등 올바른 통치를 행하여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끊이지 않았는데, 후대에 선덕제의 부황 홍희제와 선덕제 치세 시기를 '인선의 치(仁宣之治)'라고 부른다. 

 

사망

1435년 1월 31일, 3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후 묘호는 선종(宣宗)으로 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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