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3대 황제 고종 이치(高宗 李治, 628~683, 재위649.07.15~683.12.27)
| 전임 황제 | 당시 재직 황제 | 후임 황제 | |
| 직위 | 진왕, 당나라 황태자, 동돌궐의 가한(천가한), 당나라 2대 황제 | 진왕, 당나라 황태자, 동돌궐의 가한, 당나라 3대 황제 | 주왕, 영왕, 당나라 황태자, 당나라 4대 황제, 여릉왕, 무주 황태자, 당나라 4대 황제(복위) |
| 가문(황조) | 당(唐) | ||
| 명칭(묘호) | 태종(太宗) | 고종(高宗) | 중종(中宗) |
| 출신 | 수나라, 경조군(京兆郡) | 당나라, 장안(長安) | 당나라, |
| 생몰년도 | 598.01.28 ~ 649.07.10 | 628.07.21 ~ 683.12.27 | 656.11.26 ~ 710.07.03 |
| 재위 | 진왕(晉王) 618.06.18 ~ 626.07.05 |
진왕(晉王) 631.03.28 ~ 643.04.30 |
주왕(周王) 657.03.31 ~ 677.11.03 |
| 영왕(英王) 677.11.03 ~ 680.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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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황태자 626.07.05 ~ 626.09.04 |
당나라 황태자 643.04.30 ~ 649.07.15 |
당나라 황태자 680.09.21 ~ 684.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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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릉왕 684.02.26 ~ 698.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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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돌궐의 가한(천가한) 630.04.20 ~ 649.07.10 |
동돌궐의 가한, 당나라 2대 황제 649.07.10 ~ 683.12.27 |
무주 황태자 698.10.24 ~ 70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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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2대 황제 626.09.04 ~ 649.07.10 |
당나라 4대 황제(복위) 705.02.23 ~ 710.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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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628년 7월 21일, 당나라 장안(長安)에서 아버지 당 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 598~649, 재위626~649)과 어머니 문덕황후 장손씨(文德皇后 長孫氏, 601~636)사이에서 9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당나라 3대 황제로, 당 태종 이세민의 9남으로 한국의 고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와 모두 연관되는 황제이다. 나당동맹을 통한 백제와 고구려 공략으로 두 국가를 멸망시키나, 676년 신라군에 패배하면서 사실상 신라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당 고종의 황후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측천무후이며 신라군에 패배한 이후 병으로 인해 측천무후가 당 고종을 대신하여 통치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683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초년
당 태종 이세민의 9남으로 631년 3월 28일, 진왕(晉王)에 봉해지고 황위에 먼 거리에 있던 이치(李治)였지만 큰형이자 황태자인 이승건(李承乾, 618~645)이 주색과 사냥에만 전념하고 야만스러운 행동을 함에도 모자라 643년 모반을 꾀한다는 첩보를 입수받은 당 태종 이세민은 안그래도 고구려 원정에 전념하고 있던 터에 황태자의 모반사건으로 인해 매우 분개하여 황태자를 폐위시키고 4남 이태(李태)를 황태자에 책봉하지만 이마저도 폐위당하고 9남 이치가 643년 4월30일 황태자에 책봉된다. 이후 부황 당 태종 이세민이 649년 7월 10일 51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이치(李治)가 당나라 3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황제
I. 나당 동맹, 백제 공략
649년 7월 10일 당시 황제로 즉위한 당 고종 이치는 동방의 삼국 문제(고구려, 백제, 신라)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해결해야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당시 삼국의 대립구도가 매우 복잡하게 흘러가면서 이해관계 또한 복잡해지는 상황이였는데 특히 신하국을 자청하던 신라국을 공격하던 백제국을 압박하였지만 별 신경쓰지 않던 백제는 654년 악연이 얽혀있던 신라 진골 출신 김춘추가 29대 태종 무열왕(太宗 武烈王, 603~661, 재위654~661)이 즉위하게 되면서 성골이 아닌 진골이 군주가 된 신라에 혼란이 야기될 것을 생각하고 고구려와 손잡고 신라를 공격하여 수도 금성(경주)근방까지 압박하게 되면서 신라가 당 고종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된다. 고종은 신라에 구원을 하기 이전에 백제와 고구려의 정세를 살피는데, 백제 31대 어라하 의자왕(義慈王, 599~660, 재위641~660)은 신라에 대한 지속적인 승리에 도취되어 국방을 소홀히하고 사치와 향락에 시선이 팔려 백제의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660년 3월 소정방(蘇定方, 592~667)을 총관으로 하여 군사를 보내 신라와 함께 백제를 공격하게끔 지시한다. 이 때 고구려가 함부로 백제에 군대를 보낼 수 없게끔 고구려 서북방 당 경계 지역에도 대군을 배치시켜 놓고 백제는 결국 나-제 동맹군 18만명의 공격을 받고 백제 최후의 명장 계백(階白, ?~660)또한 황산벌에서 5천 결사대가 몰살당하고 사비성(泗沘城)으로 진격하게 되면서 백제는 660년 8월 29일 의자왕이 항복함으로서 멸망하게 된다.
II. 고구려 공략
660년 8월 29일, 백제가 멸망하고 고구려는 위아래로 두개의 전선을 가지는 형태로 압박받게 되는 상태가 되어버리면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고구려는 당시 대막리지 연개소문(淵蓋蘇文, ?~665, 대막리지재임642~666)의 막부 정치로 고구려 태왕 보장왕(寶臧王, ?~682, 재위642~668)은 허수아비 군주 신세였지만 강력한 막부 정치로 인해 내부적으로는 안정을 다져 공략하기가 쉽진 않았다. 그러나 백제 멸망 이후 남부 전선이 신라로 단일화되면서 당 고종은 이전 수나라부터 부황 당 태종까지 공략하지 못한 고구려를 공격할 최적기로 생각하여 661년,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고구려 천리장성에 고루 분포시킨다. 수십만의 병력을 보유한 당나라 였지만 고구려의 산성과 더불어 수도 평양성은 3중으로 구성된 천혜의 요지로서 함락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면서 장기전으로 발달하게 된다. 특히 혹독한 고구려의 겨울은 당군과 신라군 모두에게도 혹독하게 적용되면서 지속적으로 공략에 실패하다가 662년 사수전투에서 방효태(龐孝泰, 601~662)가 이끄는 4만 군대가 몰살당하면서 퇴각해버린다. 그러나 665년 고구려를 이끌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사망한다. 고구려를 이끌던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지게 되면서 연개소문의 장남인 연남생(淵男生, 634~679)이 대막리지 지위를 얻게 되나 동생 연남건(淵男建, 635~?)과 연남산(淵男産, 639~701)은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淵淨土, ?~?)가 자기에게 막리지좌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불만에 남생, 남건, 남산 3형제를 이간질 시켜 고구려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연남생은 정권 다툼 중 위협을 받고 당나라로 투항을 해버리면서 고종은 때를 지켜보다가 666년 6월, 50만 군대로 하여금 연남생도 배속시켜 고구려 공략을 다시 벌이게 된다. 고구려 내정에 통달했던 연남생을 필두로 한 당군은 파죽지세로 공략하여 천리장성에 배속된 대부분의 성을 함락시키고 668년 8월경엔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포위해버리면서 압박하다가 1개월만인 668년 10월, 보장왕이 항복함으로서 고구려가 멸망하게 된다.
III. 나당전쟁
668년 10월에 고구려까지 멸망하게 되면서 신라는 명실상부 통일 국가를 이룩하게 된다.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들이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신라는 당나라가 다음 공격을 자신들에게 해올 것을 알고 선제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고구려 왕족 출신 안승(安勝, ?~?, 재위674~683)을 보덕국 왕으로 옹립하고 고구려 부흥군의 구심점이 되게끔 하고 670년 3월, 신라군과 고구려 부흥군이 합세하여 당나라를 선제공격함과 동시에 백제 웅진도독부를 공격하면서 나당전쟁이 시작되게 된다. 웅진도독부의 본진인 사비성이 단숨에 함락되고 북방 당나라 전선은 수년간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신라의 공격으로 분개한 당 고종 이치는 신라 30대왕 문무왕 김법민(文武王 金法敏, 626~681, 재위661~681)의 관직을 삭탈하고 문무왕의 동복동생 김인문(金仁問, 629~694)을 신라왕으로 책봉시키고 침공하게끔 하지만 676년 11월 기벌포에서 신라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당나라는 신라에 대한 영향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측천무후
당 고종 이치는 부황 당 태종 이세민의 후궁이였던 무조(미래의 측천무후)를 황태자시절부터 눈에 들었는데, 649년 7월에 당 태종이 사망하면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더욱 총애를 받고 655년 무조를 통해 황후를 견제하고자 했던 폐황후 왕씨(廢皇后 王氏, ?~655)는 숙비 소씨(淑妃 蕭氏, ?~655)와 함께 무조에 의해 숙청당하면서 무조가 황후로 등극하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 폐황후 왕씨를 지지했던 모든 이들을 가차없이 숙청해버리고 관료들이 새로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지만 일찍이 고종이 병에 걸려 황후 무측천이 고종을 대신하여 통치를 수행하게 된다.
사망
683년 12월 27일, 당 고종 이치는 55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