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당나라

당 태종 이세민

Mintaka5 2025. 9. 1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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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太宗 李世民, 598~649, 재위626~649)

  전임 황제 당시 재직 황제 후임 황제
직위 당나라 초대 황제, 당나라 태상황제 진왕, 당나라 황태자, 동돌궐의 가한(천가한), 당나라 2대 황제 진왕, 당나라 황태자, 동돌궐의 가한, 당나라 3대 황제
가문(황조) 당(唐)
명칭
(묘호)
고조(高祖) 태종(太宗) 고종(高宗)
출신 북주, 장안(長安) 수나라, 경조군(京兆郡) 당나라, 장안(長安)
생몰년도 566.04.07 ~ 635.06.25 598.01.28 ~ 649.07.10 628.07.21 ~ 683.12.27
재위 당나라 초대 황제
618.06.18 ~ 626.09.04
진왕(晉王)
618.06.18 ~ 626.07.05
진왕(晉王)
631.03.28 ~ 643.04.30
당나라 황태자
626.07.05 ~ 626.09.04
당나라 황태자
643.04.30 ~ 649.07.15
당나라 태상황제
626.09.04 ~ 635.06.25
동돌궐의 가한(천가한)
630.04.20 ~ 649.07.10
동돌궐의 가한, 당나라 3대 황제
649.07.15 ~ 683.12.27
당나라 2대 황제
626.09.04 ~ 649.07.10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598년 1월 28일, 수나라 경조군(京兆郡)에서 아버지 이연(미래의 당 고조 이연, 唐 高祖 李淵, 566~635, 당나라초대황제618.06.18~626.09.04)과 어머니 태목황후 두씨(太穆皇后 竇氏, 추존 황후, 569~613)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당나라 2대 황제로 중원 혼란기를 평정하고 정관의 치(貞觀之治, 627~649, 당 태종 이세민의 재위기간에 해당하는 태평성대)로 황금기를 이룩한 군주로 중국 역사상 위대한 황제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현무문의 변에서 맏형인 황태자 이건성과 막내동생 제왕 이원길을 죽이고 막내동생 이원길의 처를 후궁으로 삼는등 폐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군주로도 평이 나 있다. 고-당전쟁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이질로 649년 사망한다. 

 

초년

아버지 당국공(唐國公) 이연(李淵)은 북주 출신으로서 상당한 명문가 집안 사람이였는데, 이연은 수나라 2대 황제이자 폭군으로 유명한 수 양제 양광(隨 煬帝 楊廣, 569~618, 재위604.08.13~617.12.18)의 이종사촌이기도 했다. 이세민은 이런 아버지의 화려한 배경속에서 598년 1월 28일 경조군(京兆郡)에 있던 아버지 이연의 사저에서 태어난다. 원래 선비족 출신인 이연은 수나라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활약했기에 자연스럽게 한족으로 동화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이세민은 어릴적부터 책보다는 칼을 들고 놀기를 좋아하고 무예를 익히는 것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16세가 되던 무렵인 614년, 장손씨(장손무기의 딸)와 결혼하는데 이미 613년부터 수나라는 양현감(楊玄感, 571~613, 수나라 재상 양소의 장남)이 일으킨 반란으로 인해 혼란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이 이후로 각지에서 군웅들이 들고 일어났고, 617년엔 포산공(浦山公) 이밀(李密, 582~619)이 반란을 일으키고 618년 4월 1일 수 양제가 자신의 시위장이였던 우문화급(宇文化及, ?~619)등에 의해 시해를 당하고 우문화급이 황제를 자칭하면서 이들은 서로를 더욱 견제하고 공격하였는데 이세민은 이들이 힘이 빠질때까지 지켜보다가 왕세충을 먼저 격파하고 난 다음 이밀까지 격파한 다음 수나라 수도 장안(長安)으로 진격해 입성하게 된다. 그렇게 입성한 이연 이세민 부자는 618년 5월, 이연으로 하여금 수나라의 명목상 마지막 황제인 공제()에게 황위를 선양받으면서 황제위에 오르게 되며 이연은 당(唐)나라 초대 황제로 등극하게 되며 이세민은 부황으로부터 진왕(晉王)에 봉해진다. 진왕으로 봉해진 이후로도 반란을 일으킨 이들을 토벌하기위해 직접 출병하여 정리하기를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고 반란군을 토벌하고 주동자를 제거함에 따라 621년엔 모든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온 진왕 이세민에게 황제 이연은 '천책상장(天策上將, 뜻:하늘이 내린 장수)'이라는 별호를 받게 된다.  

 

형제의 견제

I. 시기, 질투

이렇게 당 건국 초기부터 이세민의 공적이 누가봐도 뛰어남에 따라 이세민의 친형이자 황태자인 이건성(李建成, 589~626)과 막내동생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 603~626)등이 이를 질투하고 특히 황태자인 이건성은 별다른 공 없이 장남이라는 이유로 황태자가 된 것이라는 걸 부인하긴 힘들었기에 더욱 아우 이세민을 시기, 질투하게 된다.  

 

II. 암살 모의 

그러나 그럼에도 가면 갈수록 이세민의 권위가 계속 커져감에 따라 황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은 결국 자신들의 힘을 모아 이세민을 암살할 계획을 모의하게 된다. 이들은 급히 자신들의 세력을 모아 매일 회합을 통해 암살을 모의하게 되는데 이미 궁 내 모든 정보를 꿰차고 있던 이세민은 이를 알아채고 도리어 역으로 공격할 방책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III. 현무문의 변 

이세민이 자신들의 모의를 눈치채지 못했을거라 인식한 황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은 계속해서 모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626년 7월 2일, 이세민은 때마침 궁에 들어올 일이 있던 형 황태자 이건성과 동생 제왕 이원길은 궁중에 들어오는데, 호위를 하던 시위군을 궁 안에까지 들일 수 없었기에 둘만 현무문을 통과하고 시위군은 현무문 바깥에서 대기하게 한다. 이세민은 이 때를 노려 형과 아우를 공격하는데 결국 황태자 이건성은 이세민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제왕 이원길은 도망치지만 추격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세민은 형과 아우를 죽이고 스스로 부황에게 찾아가 형과 아우가 반란을 일으켜 선참후보(先斬後報, 먼저 죽이고 이후에 보고함)하였고 이런 사건이 벌어진 배경엔 부황이 있다고 압박하기에 이르고, 황제 이연은 진왕 이세민에게 병권을 물려주고 별궁에 유폐당하고 이세민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황제 등극

현무문의 변이 있은 지 3일이 지난 626년 7월 5일, 진왕에 의해 권력이 축소된 황제 이연은 어쩔 수 없이 진왕 이세민을 황태자로 책봉하고 당해 9월 4일 황위 양위 선언을 함에 따라 이세민은 당나라 2대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 황제가 된 이후에도 이세민은 황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 일파를 그냥 두지 않고 처리해버리고 막내동생 제왕 이원길의 부인을 자신의 후궁으로 삼게 된다(소왕비 양씨[巢王妃 楊氏]). 

 

I. 동돌궐 정복

당 태종이 즉위한 달 말에 동북방 돌궐족 가한 돌리가한(突利可汗, 힐리가한의 조카, ?~?)과 힐리가한(일릭 카간, ?~634)이 수도 장안 근방까지 공격해오면서 비상상황이 발생한다. 즉위이후 여러 차례 돌궐의 침입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침입한 돌궐 가한들에게 따져물어 돌려보내기를 반복하면서 조용히 병력을 늘리면서 군비를 확장시키는 정책을 통해 3여년간 군을 준비하고 629년 11월에 이정(李靖, 571~649, 병서 [위공병법]과 [이위공문대]저술)과 이세적(李世勣, 594~669), 소정방(蘇定方, 592~667)등을 사령관으로 하여 돌궐로 직접 출정하게 된다. 돌궐은 당 태종의 군대와 맞붙지만 채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이듬해 630년 2월, 힐리가한(일릭 카간)이 당나라 명장 이정에게 생포되게 되면서 당 태종은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힐리가한을 엄히 꾸짖고 폐위시킨다음 점령지 동돌궐에 자신이 임명한 새로운 칸 아사나사마(阿史那思摩, ?~645)를 통해 점령지를 안정시키기에 이른다.  

 

II. 고구려 공략

당 태종은 어린 시절부터 수 양제가 고구려 정벌에 대한 야욕을 몸소 느끼고 겪었던 것과 고구려 정벌 실패로 국가가 패망하는 것까지 모두 목격하였다. 당 태종은 그리하여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황제가 되기까지 모든 과정동안 내치 안정을이루고 동돌궐까지 복속시켰지만 동방에서 지대한 영향력과 방대한 역사를 가진 고구려를 정벌하는 것을 평생의 숙원사업으로 여긴다. 그렇게 동돌궐을 정벌한 이후 이듬해인 631년, 당 태종은 공개석에서도 고구려 정벌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 고구려 세작들을 통해 정보를 입수한 고구려 정부는 고구려 서쪽 비사성 부터 서북방 지역 부여성까지 천여리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천리장성(千里長城)이다. 당나라는 이러한 고구려의 움직임을 보고 고구려와 우호를 다지는 국가들을 모략하여 고구려로부터 떨어져나가게 하고 군비확장을 10년을 거쳐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645년 2월, 당 태종은 백만에 달하는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로 진격하면서 제1차 고-당전쟁이 시작된다. 개모성(蓋牟)을 시작으로 고구려 천리장성의 요충지였던 요동성(遼東城)을 함락시켜 전진기지로 삼은 다음 백암성에 몰려가지만 백암성주 손대음(孫代音, ?~?)이 비밀리에 당 태종에항복을 청하고 손쉽게 백암성을 손에 넣은 당 태종은 천리장성의 다음 핵심 요충지가 된 안시성(安市)을 향해 간다. 그러나 안시성에 도달하고 2개월이 넘는 공략을 펼쳐도 안시성이 함락되지 않고 사상자가 수만에 육박하고 645년 9월이 되면서 혹독한 겨울이 다가올 것을 두려워한 당군은 2개월간 쌓은 토산(土山)을 통해 안시성을 공략하려고 하나, 폭우로 토산이 무너지게 되면서 관리를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토산책임자 부복애(傅伏愛, ?~645)를 참형에 처하게 한다. 이후로도 공략이 더뎌지고 시간만 가게 되면서 9월 28일, 결국 당 태종은 철수를 명하게 된다. 1개월에 걸친 당군의 퇴각은 폭풍과 추위등으로 인해 굶어 죽거나 얼어죽고, 고구려군의 추격을 받아 대다수가 사망하기에 이른다[출처:자치통감, 신당서].

 

사망

645년 고구려 원정 대실패 이후 당 태종은 이듬해 646년 견제 세력이였던 설연타()를 멸망시키게 되면서 명실상부 동부엔 고구려만이 남게 되면서 다시 재침공을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 조정의 대신들의 분위기는 달랐는데, 이미 1차 원정이 대실패로 끝난 이유를분석한 결과, 산성이 많고 고구려 백성들의 기질등을 이유로 단기간에 원정에 성공할 확률을 매우 낮게 평가하게 된다. 그리하여 당 태종은 장기적으로 고구려 국경지역을 도발하고 장기적으로 피폐하게 한 다음 침공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지만 649년 7월 10일, 이질로 인해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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