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7대 황제 숙종 이형(肅宗 李亨, 711~762, 재위756~762)
| 전임 황제 | 당시 재직 황제 | 후임 황제 | |
| 직위 | 초왕(楚王), 임치군왕(臨淄郡王), 평왕(平王), 당나라 황태자, 당나라 6대 황제, 당나라 태상황제 | 섬왕(陝王), 충왕(忠王), 당나라 황태자, 당나라 7대 황제 | 광평군왕(廣平郡王), 초왕(楚王), 성왕(成王), 당나라 황태자, 당나라 8대 황제 |
| 가문(황조) | 당(唐) | ||
| 명칭(묘호) | 현종(玄宗) | 숙종(肅宗) | 대종(代宗) |
| 휘 (이름) |
이융기(李隆基) | 이여(李與) → 이형(李亨) | 이예(李豫) |
| 출신 | 당나라, 낙양(洛阳) | 당나라, 장안 | 당나라, 낙양(洛阳) |
| 생몰년도 | 685.09.08 ~ 762.05.03 | 711.10.19 ~ 762.05.16 | 726.11.11 ~ 779.06.10 |
| 재위 | 초왕(楚王) 687.02.19 ~ 693.01.14 |
섬왕(陝王) 712.11.01 ~ 725.04.27 |
광평군왕(廣平郡王) 740.xx.xx ~ 758.01.28 |
| 임치군왕(臨淄郡王) 693.01.14 ~ 710.07.22 |
충왕(忠王) 725.04.27 ~ 738.06.24 |
초왕(楚王) 758.01.28 ~ 758.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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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왕(平王) 710.07.22 ~ 710.07.28 |
당나라 황태자 738.06.24 ~ 756.08.12 |
성왕(成王) 758.04.14 ~ 758.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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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황태자 710.07.28 ~ 712.09.08 |
당나라 황태자 758.11.10 ~ 762.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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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6대 황제 712.09.08 ~ 756.08.12 |
당나라 7대 황제 756.08.12 ~ 762.05.16 |
당나라 8대 황제 762.05.18 ~ 779.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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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태상황제 756.08.12 ~ 762.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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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711년 10월 19일, 당나라 장안(長安) 황궁에서 아버지 당 현종 이융기(唐 玄宗 李隆基, 685~762, 재위712~756, 태상황재위756~762)와 어머니 원헌황후 양씨(귀빈 양씨, 元獻皇后 楊氏, ?~729)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당나라 7대 황제로, 현종 이융기의 3남이다. 어릴적부터 태자비 왕씨에게 양자로 입적되어 사랑을 받지만 이후 황후로 즉위한 왕씨가 폐위되고 조용히 지내다가 이후 형들이 권신 이임보에 의해 죽임, 숙청을 당하고 황태자의 자리에 겨우 오르지만 계속해서 이임보의 견제속에서 숨죽이며 살다가 756년 안사의 난이 한창이던 도중 군의 추대로 황제위에 올라 기울어가던 당나라를 살려보려고 노력하지만 762년 부황 현종과 13일 간격차이로 사망하고 이후 당나라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된다.
초년
3남으로서 황제위와는 거리가 살짝 있었고, 어머니는 부황의 첩실이였기에 계승순위에서 더욱 밀려나있었다. 당 현종의 정실부인이자 당시 태자비였던 왕씨는 어린 이형을 양자로 들여 직접 키우고 황후가 되어서도 친아들처럼 정성스럽게 키운다. 그러나 724년, 황후 왕씨는 후궁들간의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폐위되면서 사실상 어머니나 다름없던 왕씨를 잃은 이형의 나이는 당시 불과 13세였다. 그렇게 이형은 조용히 사가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730년대 들어 당시 재상 이임보(李林甫, ?~753, 재상재임734~752)는 약삭빠르고 아첨하는 태도로 관직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는데, 재상이 되기 전 이임보는 현종의 태자 이영(李瑛, ?~737)의 참모진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아첨등으로 734년 재상에 추천되어 오르고 현종을 더욱 아첨해 총애를 얻게 되는 이임보는 잠재적으로 걸림돌이 되는 세력은 그떄그때 바로 처리하고 아래직급 관리들을 직접 임명함으로서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세력을 확장시킨다. 그러다가 결국 737년 현종의 세 황자 이영, 이요(李瑤, ?~737), 이거(李琚, ?~737)가 궁궐에서 무장한 채로 현종에 의해 직접 목격되면서 세 황자 모두 서인으로 강등당하고 자진을 강요받게 된다. 이후로도 이임보의 농단은 더욱 기승함과 동시에 현종에 아첨하여 직위가 진공(晉公)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임보는 게다가 무혜비의 자식을 황태자로 세우고자 모략을 꾸미지만 현종의 최측근 고력사(高力士, 684~762)가 이형을 황태자로 강력하게 밀면서 세황자 사건 이듬해인 738년 6월 24일, 이형은 황태자로 책봉되게 된다.
지속적 음모
이형은 황태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궁 내부의 실권은 이임보가 가지고있던 것이나 다름없었고 자신이 밀고자 한 무혜비의 자식이 황태자가 되지 못한것을 포기하지 않고 748년에 황태자 이형을 폐위시키기 위한 음모를 꾸미게 된다. 이임보는 황태자의 최측근이자 군부의 수장격 인물이였던 왕충사(王忠嗣, 705~749)를 통해 황태자를 옭아매려고 토번의 전략적 요충지 석보성을 통해 음모를 실행하고자 하였으나 왕충사가 석보성 탈환을 반대하고 이후로도 음모를 지속적으로 꾸미나 번번히 실패한다.
안사의 난과 즉위
755년 12월 16일, 범양절도사(范陽節度使) 안록산(安祿山, 703~757, 재위756~757)이 당나라 북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당나라 중기 중흥기 '개원의 치(開元之治, 713~741)'를 이룬 황제인 당 현종은 말년에 절세 미인 양귀비(楊貴妃, 719~756)에 빠지게 되면서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게 된다. 현종은 정치를 손에서 놓고 외척, 환관들에게 일임하게 되면서 특히 재상 이임보는 정치권력을 손에 넣고 양귀비를 조종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하게 된다. 현종 치세 말기 당나라는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전횡속에서 점차 쇠락해가고 있었는데, 그 정점이 755년에 안사의 난으로 비로소 터지게 된 것으로 안록산은 756년 2월 5일, 국호를 '호연(胡燕)'으로 하고 스스로 황제위에 오른다. 756년, 수도 동부가 함락됨에 따라 현종 또한 장안을 빠져나와 피난가게 되고 이 때 황태자 이형이 부황을 수행하게 된다. 쓰촨성으로 피난간 현종은 고령으로 직접 군대를 이끌지 못하여 황태자 이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토벌길에 오르게 되고 군의 추대로 당나라 7대 황제 숙종(肅宗)으로 황제위에 오르게 된다. 안록산은 757년 1월 30일, 아들 안경서(安庚绪, 723~759)에게 살해당하게 되면서 반란군의 구심력이 약해지게 되고 위협이 크게 되지 않을 만큼 약해지고 태상황까지 수도 장안으로 복귀하지만 당나라의 국운은 이미 기울어가고 있었다. 숙종은 이러한 혼란스러운상황에서 황제로 추대되어 노력을 기울여 국운을 살려보고자 하지만 크게 효과가 없을 정도로 당나라는 내부적으로부터 문제가 많았다.
사망
762년 5월 3일, 숙종의 부황이자 태상황제인 현종 이융기가 77세의 나이로 사망하는데, 숙종 이형 역시 부황이 사망한지 13일밖에 되지 않은 762년 5월 16일,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